가우디 영혼의 향기

2022 유럽여행 그림일기 8

by Lara 유현정


드디어 가우디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원피스를 꺼내 들었다. 가우디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딸아이는 긴팔에 금박이 살짝 들어간 얇은 녹색 바탕의 꽃무늬 드레스, 나는 나시 끈에 푸른색의 짧은 실크 원피스를 입었다. 바르셀로나를 거닐다 옷가게에서 산 옷들이다. 가우디로 말하면 나야 진즉부터 과제를 안고 온 것이지만, 딸아이는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하도 노래를 불러서인지, 카사 바트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어제가 한낮의 땡볕에 바르셀로나의 골목을 헤매며 딸아이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오늘은 나를 위한 외출이었다.


우리는 슬슬 걸었다. 호텔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해 질 녘이 가까워 다행히 열기가 조금씩 들고 있었다. 카사 바트요 앞에는 많은 이들이 웅성거렸다. 우리도 그 속에 서서 집을 올려다보았다. 과연 이것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믿을 수 없게 황홀한 작품이었다. 나는 그냥 길거리에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렸다. 안으로 들어서기 위한 입장료는 39유로, 계산해보니 한화로 5만 원이 넘었다. 속으로는 악 소리가 났지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가우디에게 바치는 헌금이라 생각하면 너무 적은 금액인지도 몰랐다.


바트요(당시의 집주인)는 우디에게 자신의 저택을 그라시아 거리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성공이었다. 외벽을 가득 장식한 색색의 타일이 보석처럼 빛나서 어쩜 그리 곱고도 화려하고 환상적인지, 나는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또 해골을 형상화한 발코니는 오싹하면서도 아무도 넘볼 수 없게 기세 등등하고, 꼭대기 층에 귀엽게 도드라진 공주의 발코니는 용의 등을 형상화한 옥상과 투구 모양의 굴뚝 함께 진 중세의 성을 연상시켰다. 마도 거리를 지나는 사람 모두가 감탄을 자아며 부러워했을 것이. 넘사벽의 건물을 소유한 바트요는 콧대가 더욱 높아졌을 테지.


직선은 인간이 만든 선이고
곡선은 하느님이 만든 선이다.

우리는 한국어 오디오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가우디는 자연을 사랑했기에 자신의 건축에도 인체, 뼈, 바다 등 자연에서 모티브를 따와 내부를 온통 곡선으로 설계했다. 2층으로 올라서자 품격 있는 버섯 모양의 벽난로와 바트요의 무실이 우리를 맞이했다. 메인 홀로 이어지는 두 짝의 문은 역시 곡선으로 이루어진 육중한 원목에 유리를 끼우고 동글동글한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마감하였다. 거실 벽면은 전부 창으로 만들어 빛을 충분히 끌어들였고, 아름다운 조각을 곁들인 아치형의 기둥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가우디는 그렇게 전면 복원 방식으로 건물 전체를 마치 새로운 건물처럼 만들어냈다.


나는 계단을 오르며 건물 안쪽으로 낸 창을 통해 이는 의 파티오(중정)에 눈길이 쏠렸다. 옥상 천정에서 쏟아지는 빛을 층마다 균일하게 배분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갈수록 창문의 크기가 커지고, 타일의 색은 밝아졌다. 아래쪽은 흰색인데 위로 올라갈수록 청색이 짙어졌다. 마치 잠수함을 타고 거꾸로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느낌이 든다. 가우디는 채광뿐 아니라 환기에도 신경을 썼는데, 이토록 예술적인 감성과 치밀한 공학을 조화시킨 점에서 진정 천재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건축물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기능은 반드시 유지하되 그 외형과 내부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여 인간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시킬까'를 궁리하던 가우디의 학이 잘 구현되었다.


우리는 내부 구경을 끝낸 후 기념품을 사들고 밖으로 나왔다. 근처에 위치한 카사 밀라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넜다. 날이 벌써 어둑해지며 카사 바트요에 조명이 켜졌다. 외관은 더욱 화려해졌고, 마치 꿈속에서 동화 속 마법의 성채가 성큼 옮겨 와 앉은 듯하였다. 로 옆집인 카사 아마트예르도 눈길을 끌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인 호셉 푸이그 이 카다팔츠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가우디 옆에 선 까닭에 어딘지 촌스러워 보이까지 했다. 다들 1등만 주목하는 세상에서 2등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란, 나는 왜 모차르트를 시기한 살리에리가 떠오르는 걸까.


카사 아마트예르(좌)와 카사 바트요(우)




여행에서의 일정은 체력과도 직결된다. 그러므로 나처럼 기본 체력이 없는 사람은 늘 과도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틈틈이 쉬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건만, 나는 즉흥적으로 과욕을 부리고 말았다. 새벽 시간이 아까워 혼자서 예정에도 없던 구엘 저택을 다녀오느라 오전부터 에너지가 고갈된 것이다. 결국 모든 일정이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구엘 공원은 이미 물 건너 간 데다가, 사실 나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카사 바트요를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 플랜 B를 가동하는 수밖에.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 식당에서 저녁 밥을 먹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까지 밤거리를 걸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지름길로 선택한 뒷골목은 공사 중이라 더 으슥하였다. 그러나 성당 앞은 메트로 역도 있고 가게들이 즐비했다. 입장은 진즉 마감이 되었지만, 밤의 성당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가우디의 건축은 뭐니 뭐니 해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절정을 이룬다. 올해가 착공 140년이 되는 해인데,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지만 아직도 공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세 개의 파사드(입구) 중에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한 탄생의 파사드가 있는 동쪽으로 갔다. 특별한 조명이 없어서 사진을 찍어도 피사체가 뭉그러졌다. 우리는 그저 실루엣을 올려다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어차피 가우디를 한 번에 다 만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완공된 성당을 상상했다. 성당은 하늘을 찌를 듯이 웅장했다. 중앙에 예수를 상징하는 첨탑이 완성되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성당이 될 것이. 그래도 몬주익 언덕보다는 낮게 172.5m에서 멈다. 가우디는 신의 안목을 가졌지만 언제나 겸손했던 것이다. 말년엔 독실한 신앙심으로 성당 지하의 작은 방에서 거주하며 설계를 다. 예수의 12제자를 상징하는 첨탑은 마치 거대한 옥수수들이 하늘로 치솟은 듯 보인다.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첨탑 안에서 종이 울려 퍼지는 날, 가우디의 영혼은 비로소 미소를 지을 것이다. 종소리를 따라 가우디 영혼의 향기가 바르셀로나로 가득 울려 퍼질 때, 나는 공원의 연못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성당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림> 연못에 반영된 대성당의 모습




결국 구엘 공원은 마지막 날 만났다. 그날은 마요르카로 떠나야 하는 날이었다. 새벽부터 움직여야 해서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나는 혼자라도 강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 늦잠을 자는 딸아이가 부스스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딸아이가 뜻 동행해준 덕분에 여러 난관을 뚫고 무사히 관람을 마칠 수가 있었다. 낯선 여행길에서 때론 보호자가 되어 줄 줄도 아는 딸이 어찌나 든든하고 고맙던지. 바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우디의 트렌카디스 기법으로도 유명하며 현재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상징물이기도 한 도마뱀 상을 보고 왔다. 끝까지 미뤘던 숙제를 후다닥 벼락치기로 해치운 기분은 들지만, 그래도 안 한 거보다는 낫지 싶었다.


가우디 카탈로니아의 전통에 탈권위성이 강한 아르누보 예술의 특징을 가미하여 자신만의 양식으로 건축을 만들어 나갔다. 당대에는 주류였던 모더니즘을 벗어났기에, 후대에 계승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같은 느낌의 작품을 빈에서 만난 적이 있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이며 환경운동가인 훈데르트바서의 건축물, 쿤스트하우스 빈과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였다. 세기적인 천재는 또 다른 천재의 철학을 만나야 계승이 되는가 싶었다. 그들은 둘 다 거대한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자연이 최고의 스승이었던 것이다.


또한 가우디의 삶은 체코의 화가 알폰스 무하를 연상시켰다. 무하는 젊은 날의 성공을 뒤로하고, 말년을 슬라브 민족의 단합과 중흥을 위해 <슬라브 대서사시>라는 대작 연작에 몰두하였다. 대가들의 삶은 전 생애를 걸친 치열한 작품 활동 속에서 에고가 모두 녹아내리고, 타인과 대자연과 범우주적으로 하나가 되길 원하는 영혼의 부름을 받는 것 같았다. 천재들의 진실하고 고귀하며 위대한 영혼이 우리들의 가녀린 영혼을 위로하고 구원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로 하여금 영원한 빛을 얻었다.


구엘 공원의 도마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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