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의 마요르카 캣맘

2022 유럽여행 그림일기 9

by Lara 유현정


아아, 마요르카!


최첨단 시스템을 자랑하는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한 시간을 날아 도착한 섬 마요르카였다. 우리는 공항에서 랑데뷰를 하였다. 파리에서 서로 얼굴을 익힌 지 일주일 만이던가. 여기서 우리란, 딸의 친구인 S와 그녀의 남편 J를 아우르는 말이다. 절대 일반적인 통념으론 조합이 나올 수 없는 여행 그룹었다. 젊은이들 틈바구니에서 나의 포지션을 잘 짜야 서로가 불편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는 기본 전략을 짰다. 절대 공격수로 나서지 않고 수비만 , 아니 위급한 상황에서만 나서 주는 골키퍼 어떨까.


는 한때 휴양지 여행을 즐겼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발리를 다녀오면서 문득 깨달음이 왔다. 겨울에 해수욕을 할 수 없다는 걸 제외하면 우리나라 제주도가 제일 멋지다는 사실을. 그 후 생활을 시작하면서 굳이 다른 나라의 휴양지를 찾지 않았다. 아, 딱 한 번 오키나와를 다녀온 적은 있다. 그때도 내키 않았지만, 작은 딸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쩔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가 마요르카까지 가게 된 것일까. 프로 축구팀 마요르카의 열혈 팬도 아니요, 신혼여행을 떠나야 하는 젊은이도 아니고, 지중해의 비치가 로망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마요르카는 오로지 젊은이들의 합작품이었다. 나는 숙소인 풀빌라에 낚여서 오게 된 것일 뿐. 렇다고 마요르카가 궁금하지 않은 아니었다. 면적이 제주도의 두 배(제주도는 서울의 세 배), 인구 약 90만(제주도는 70만 정도), 스페인 최대의 휴양지(제주도는 우리나라 최대의 휴양지), 독일인들이 너무 좋아해서 우스개 소리로 독일의 17번째 주라 불린다는 섬(제주도는 과거 중국인들이 떼로 몰려들긴 했지만 지금은 글쎄다) 등등, 모든 것이 제주도와 비교되었다.


정겨운 돌집 마요르카의 숙소


딸아이는 친구 부부를 만나 신이 났다. 취향이 맞는 친구를 만나 새로운 여행을 하게 됐으니 그럴 만도 다. 리는 벌써 구면인지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셔틀을 타고 렌터카 회에서 차부터 빌렸다. 다들 국제 운전면허증을 준비했지만, 처음 핸들은 J가 잡았다. 여자들 속에서 젊은 남자가 나서는 건 무척 든든한 일이었다. 운전은 한 번 핸들을 잡으면 여간해선 바턴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낯선 길에 익숙진 사람을 신뢰하는 건 인지상정이니까. 상대로 J는 꼬박 5일간의 운전을 책임졌다. 조수석에 앉은 S가 신랑의 운전을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은 한 쌍의 잉꼬를 연상시켰다.


공항이 위치한 마요르카의 주도 팔마는 서쪽인데, 숙소가 위치한 곳은 북동쪽이었다. 제주도로 치면 애월이나 협재에서 김녕 쪽으로 달려야 한다. 섬이 커서 거리가 멀었지만 시속 120km까지 달릴 수 있어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골 마을 길은 무척 좁았다. 왜 다들 작은 차를 렌트하라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내비게이션도 길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골목을 돌고 돌아 겨우 당도한 숙소는 잔디 마당이 있고, 수영장이 딸린 스패니쉬 기와의 돌집이었다. 마당에는 올리브 배롱 나무도 있어 제주도의 돌집처럼 정겨움이 가득했다. 우리는 두 개의 방을 나눠서 짐을 풀었다.


아이들은 곧바로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여독을 풀기 위해 먼저 샤워를 끝낸 후, 사진을 찍어주러 마당으로 나왔다. 그때 내 앞에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새끼 고양이가 나타난 것이다. 한동안 굶주렸는지 비쩍 마른 몸이었다. 얼굴까지 말라서 핑크빛이 도는 두 귀가 더 크게 도드라져 보였다. 고양이는 낯을 가리지도 않고 야옹! 하며 당당하게 먹을 것을 요구했다. 요놈 봐라 하면서 눈을 흘기고 있는데, 곧이어 또 한 녀석이 등장했다. 쌍둥이였다. 나는 딸아이가 내놓은 시리얼을 잘게 부숴서 우유에 섞어 주었다. 두 녀석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이번에는 새침하게 생긴 검정 줄무늬 새끼 고양이가 나타났다. 경계가 심해서 다가가면 도망가고, 불러도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몸집이 큰 어미 회색 고양이에 갈색 줄무늬, 검정 줄무늬 고양이까지 자꾸 모여들었다. 수영을 하던 아이들이 꺄악! 비명을 질러댔다. 나도 놀라 정신을 차리고 세어보니 모두 아홉 마리였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어떻게 모여든 것일까. 아하! 알겠다. 아이폰을 블루투스로 연결한 스피커에서 쿵작쿵작 노래가 신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류가 지구 반대편에서 묘종을 불문한 고양이들에게까지 전파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나는 캣맘을 자처했다. 그건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S를 위한 골키퍼의 역할이기도 했다. 내가 뭐 특별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동네 길고양이에게 간식을 두어 번 준 적은 있다. 그것도 나를 보며 배가 고프다고 하도 울어대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챙겨준 것뿐이다. 언젠가 친구랑 한라산을 오를 때는 영실코스에서 고양이를 만난 적이 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앉아 있는데, 슬금슬금 다가와 내 허벅지에 올라앉는 게 아닌가. 얼떨결에 묵직한 덩치를 안고 있으려니, 등산하던 사람들이 먹을 것을 내주어 밥을 먹인 적이 있다. 그런 가여운 생명으로부터 전해받은 온기가 나의 마음을 오랜 시간 덥혀주었다.


음악 소리에 모여든 고양이들


다음 날 우리는 바다를 구경하러 나갔다. 숙소에서 가까운 북쪽 해변은 해안선이 길고 시야가 확 트였으며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우리는 해변을 거닐며 낭만 속으로 빠져들려는 순간 비가 뿌리기 시작하였기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장을 봐서 숙소로 들어오게 되었다. 딸아이와 나는 마트에서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두둑이 챙겼다. 숙소에 도착하니 아기 고양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랴부랴 간식을 챙겨 그릇에 담아주었다. 얼마나 맛있던지 코를 박고 정신없이 먹어치운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픈 녀석들을 위해 사료도 듬뿍 담아 주었다. 그제야 한시름 마음이 놓였다.


잠시 쉬다가 비가 그쳐서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엔 마요르카의 주도인 팔마로 달려갔다. 팔마는 활기차지만 느긋한 도시였다. 빌딩만 한 크루즈가 정박한 바다 쪽으로 해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우리는 큰 고딕 양식의 산타 마리아 대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마침 미사 중이었다. 조용히 뒤쪽의 긴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서쪽 창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따스하고 아름답게 간을 감쌌다. 웅장하면서도 아늑하고 사랑스러운 성당이었다. 가우디의 손길이 닿은 곳이었다. 나는 잠시 두 눈을 감고 묵상을 했다.


성당 변엔 고성도 있고 길가의 카페와 고급 쇼핑점 등 아름다운 스페인 건축이 가득했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거닐며 도시를 만끽했다. 이윽고 날이 어둑해졌고 우리의 배꼽시계도 함께 울렸다. 아이들이 아낸 식당은 구글 맛집이었다. 겨우 자리를 얻은 우리는 배가 고파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을 맘껏 시켰다. 그중 내가 가장 고대한 음식은 빠에야였다. 그런데 어찌나 커다란 팬에 가득 담겨 나오던지, 그날 밤 우리가 나눈 대화만큼이나 푸짐했다. 결국 다 먹지 못한 밥과 다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집으로 싸들고 올 수밖에.


팔마의 대성당과 연못


다음 날 아이들은 모두 발데모사로 나갔다. 나는 혼자 집에 남았다. 발가락을 조금 다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혼자만의 시간과 휴식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일어나 수영을 즐기다가 샤워를 하고 마당으로 나왔다. 이번엔 새로운 녀석이 놀러 왔다. 주둥이와 꼬리만 까만 고양이였다. 그런데 어째 몸놀림이 굼뜨고 명랑하지가 않다. 어디가 아픈 것 같아 측은했다. 눈이 크고 털에 윤기가 흐르며 자태가 우아해서 귀티가 나는 파란 눈의 고양이도 놀러 왔다. 사랑을 듬뿍 받은 듯 건강해 보이는 걸로 봐서 주인이 있는 것 같았다. 러나 항상 나를 맴도는 하얀 고양이는 주인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우리 숙소의 여행객들에게 얻어먹고 살 텐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싶었다.


요즘은 반려동물로 고양이의 인기가 강아지를 앞지른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고양이를 키우는 이들 중에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고 키우는 경우가 있는데, 이 고양이들이 가출하거나 유기되어 길고양이의 개체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관리되지 않는 길고양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런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캣맘을 혐오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기도 한다. 하지만 캣맘은 버려진 동물의 생명을 보살피고,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길고양이가 증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중성화 수술에도 적극 협조하는 사람들이다. 이 지구는 인간만 사는 곳이 아니. 어떠한 생명도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길고양이를 챙기며 행복했다. 어린 왕자와 여우가 서로 길들여진 것처럼 나와 고양이 서로 길들여지고 있었다. 여우가 황금빛 밀밭을 보면 어린 왕자를 떠올리듯이, 나는 마요르카를 생각하면 고양이들이 오를 것이다. 그러나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고양이를 책임질 수는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길을 떠나야 하는 여행자로서 양이를 만났으므로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지만 책임질 수 없다고 해서 그대로 방치하거나 내쫓아야 한다는 건 아닐 것이다. 함께 사는 아름다운 지구별에서 구라도 나눌 수 있는 만큼 사랑을 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거쳐간 녀석들이 아마도 열둘은 넘지 싶었다.


금도 나는 하얀 아기 고양이가 밥은 잘 얻어먹는지, 또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많이 그립다. 늘 당당하던 녀석들이.


<그림> 마요르카, 나의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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