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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Apr 28. 2023

나는 천천히 걸을래요

호작도, 민화 중급 과정을 끝내며


지난주 민화 중급반 과정을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품은 호작도. 전통민화 초급의 시작도 그러했는데, 마무리도 호작도인 셈이다. 물론 내용 비슷해도 그림의 크기 르다. 마지막 그림을 호랑이로 택한 이유는 언젠가 꼭 다시 그리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 표현 기법을  더 세밀하게 배우 싶기 때문이다. 화에서 호랑이는 털을 그려야 하는데, 이를 가리켜 "털을 친다"라고 표현한다. 나는 세붓으로 한 털 한 털 털을 치 호랑이 몸통에 생명을 불어넣다.


호랑이는 딸아이의 태몽으로 만난 동물이다. 허니문 베이비였던 딸아이가 아직 뱃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을 때, 집채만 한 호랑이가 여러 말이 이끄는 마차에 올라타고 퍼덕 은 개울을 건너 내 품으로 달려는 꿈이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바로 잠에서 깨고 말았지만, 의 느낌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지금도 기억 남 다. 딸아이는 그해 가을 랜 진통 끝에 호랑이 띠를 달고 세상에 태어났다.


나의 사주에도 호랑이가 등장한다. 사람의 사주를 동물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붙인다. 나의 초년은 가을, 중년 겨, 말년은 봄 호랑이 유되었다. 잘 나갔던 학창 시절과 일만 하던 중년을 지나 운세가 말년에 봄을 만나는 형국이었다. 봄은 만물이 탄생하는 계절의 여왕이라 겨울을 지난 호랑이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그 당시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라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내심 안도가 되었다.  전통민화에선 호랑이가 곧잘 탐관오리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앞으로 나의 그림에선 호랑이가 딸아이와 나를 중의적으로 상징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전통민화, 호작도(까치와 호랑이)


이제 내 앞에 세 갈래 길 놓였다. 

전통민화 고급반 과정 1, 2급의 자격증을 따는 과정, 작가의 길을 가는 창작반 중에서 선택을 해야 는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해 보았지만, 고급반 과정이 필수가 아니라면 굳이 전통민화를 그리며 따분하게 시간을 죽이고 싶지다. 어느 정도 기술을 터득했으니 한시라도 빨리 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막상 창작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다.


창작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부터 시작한다.

내가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끊임없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글쓰기 마찬가지로 그림도 자신의 삶과 철학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일에서 길어 올린 통찰과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다행히 나는 글쓰기를 먼저 시작했기에 나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지금 현재 나의 삶을 이루며 인생 숲이 되어준 제주 이야기를 그림에 담고 싶은 것이다. 창작으로 나의 진로가 정해지자, 선생님은 대뜸 내년 일정을 꺼내셨다.


"그럼 전시를 내년 언제로 잡을까요?"

"네에??"


허걱!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아직 첫 작품을 시작도 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니 하루라도 빨리 전시 일정을 잡자는 얘기였는데, 나는 갑자기 가슴이 턱 막혀왔다. 머릿속으론 지난날들이 휘리릭 지나갔다. 도시의 아우토반에서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제 겨우 내 속도를 찾아서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데,  여유를 반납해야 한단 말인가. 다시는 경주마 위에 올라타고 싶지 않았다. 제주에서 아우토반은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선생님의 말 일리 있다. 미리 날을 정해놓고 자신을 몰아붙여 성과를 내는 방법을 왜 모르겠는가. 젊은 날 수도 없이 써먹던 방식이다. 그렇게 자신을 닦달하면서 에너지는 방전되고, 행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 것이 아닌가. 내가 뒤늦게 느린 섬 제주에 뿌리를 내린 이유는, 나만의 속도로 걸을 수 있어서 비로소 행복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속도에 속지 않는다.  비교하며 성공과 성취라는 달콤한 열매에 욕심을 얹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비록 나의 속도가 달팽이처럼 느릴지라도, 부끄럽지 않다. 제주는 그저 오랜동안 걷고 싶은 나의 인생 숲일 뿐이다. 


", 저는 천천히 걸을래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씀드렸다. 선생님 고개를 끄덕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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