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권태감을 시작으로 과연 무엇을 위한 글쓰기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곧 짙은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때까지는 결코 노트북을 열지 않겠다는 의지로 침묵 속에서 굳건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마치 현실을 외면하고 삶을 유예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방사통이 나를 덮쳤다. 허리의 디스크가 삐져나와 신경을 압박하면서 통증이 무릎까지 내려온 것이다. 나는 정형외과를 시작으로 한의원과 지압원을 전전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골밀도 수치가 급격히 낮아져 골다공증 진단도 받았다. 또 지난여름 마요르카의 바닷가에서 다쳤던 발가락마저 골절이었음이 판명 났다. 뒤늦게 깁스를 하고 꼼짝을 못 하고 있으려니, 내 몸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세상에 없더라. 오로지 몸을 위한 삶이 여러 달 이어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봄은 기필코 오고야 말았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산천초목이 기지개를 켜며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나는 제주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병원을 다니느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민화를 계속 배우기 위해서였다. 갤러리에서는 회원전을 기획하고 있었다. 나는 전시를 위해 새로운 그림을 그릴 시간적 여유가 없어,그동안 그린 작품 중에서 전통민화 두 점을 추렸다. 어찌 됐든 난생처음 전시회 출품인 것이다.
제주는 내게 참으로 많은 것을 선사하였다.
나는 제주생활 첫 해인 2013년의 봄을 잊을 수가 없다. 외돌개 올레길을 따라 바닷가에 노랗게 피어난 유채가 웰컴! 웰컴!! 하며 손을 흔드는 환영의 몸짓은, 도시의 사막에서 웃음을 잃어버린 나를 미소 짓게 하였다. 한라산의 설문대 할망은 너른 품으로 감싸주며 말없는 위로를 건넸다. 그렇게 제주의 자연은 직장생활로 방전된 나에게 숨을 불어넣어 일으켜 세웠다. 차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고, 마음에는 저녁노을을 닮은 평화가 곱게 내려앉았다.
특히 서귀포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올레 아카데미 동문들과 올레길에서 쌓은 추억들과 자유로운 영혼의 친구 제주옥, 동네에서 만나 수시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난 언니와 수진 씨 그리고 함께 영어를 공부하며 만난 기특한 동생들과의 우정은 지금도 메마르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또 새섬에서 우연히 마주친 실험예술은 나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며 수년간 나의 열정을 일깨웠다. 그렇게제주는 오랜동안 걷고 싶은 나의 인생 숲이 되어 주었다.
그 숲의 한 켠, 햇살이 가득한 양지에서 나는 민화라는 예쁜 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늦었다는 생각에 많이 망설였지만,돌이켜보면 그때 시작하길 참 잘했다. 배움에 있어 결코 늦은 때란 없는 법이다. 젊은 나이였다면 오히려 욕심이 앞을 가려 힘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들볶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집착을 내려놓고 느릿느릿 놀멍 쉬멍 내딛는 발걸음은 가볍고 즐겁기만 하다.
나는 그저 매일아침 산책을 나서듯틈틈이 꽃밭에 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 제주 햇살과 같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하나씩 피어나는 꽃을 만난다. 느지막이 인생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꾼 나의 느리고 한가로운 꽃밭에서 나는 가장 최근에 피어난 싱싱하고 보기 좋은 꽃 두 송이를 가져와 전시회라는 꽃병에 꽂아 놓았다. 하나는 화접도이고 또 하나는 미인도이다.
미인도는 전문가의 손을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배접을 하는 과정에서 물감이 번져 나와 몹시 절망스러웠고, 또 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노심초사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면서 동백기름을 발라 윤기가 반지르르한 머리를 한 올 한 올 표현하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최근 남편으로부터 지금은 고인이 되신 나의 시어머니께서 꽃다운 나이 열여덟에 시집오실 때, 내 그림과 똑같은 노랑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으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살아생전에 은혜만 가득 베푸신 시어머니가 투영되어 그림이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화접도는 그림 크기가 너무 커서 처음엔 암담했지만, 꽃밭을 거니는 행복한 마음으로 그려 나갔다. 탐스럽게 피어난 모란의 붉은 색감과 하늘 높이 너풀거리며 날아오르는 나비들의 현란한 날갯짓이 마음에 든다. 그림도 나의 자유로운 제주 삶을 닮은 것만 같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전시에는 내게 선물 같은 제주의 삶을 화폭에 담아보고 싶다.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처럼 화려하면서도 자주적이고 당당한 현대의 미인도 그려보고 싶다. 아무쪼록 내년에는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만의 꽃을 풍성하게 건넬 수 있도록 열심히 아니 슬렁슬렁 나의 꽃밭을 가꿀 생각이다.
2023 민화 전시회 출품작, 미인도(좌)와 화접도(우)
제주의 하루는 날마다 새롭지만, 오늘은 좀 더 설레고 특별한 날이었다. 그것은 바로 전시회 오프닝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귀포 절친 두 명과 함께 참석하였다. 오전 11시가 가까워지자 우람한 소나무가 늘어선 소천지 숲길 옆으로 서귀포 바다와 문섬이 바라다 보이는 보목의 루씨쏜 민화 갤러리에 회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작은 갤러리가 복작거렸다. 다들 마음이 들떠서인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행사는 감동의 연속이었다. 갤러리에 들어선 순간, 화사한 서양란이 담긴 축하 화분이 도착해 있었다. 두 친구의 깜짝 선물이었다. 상상도 못 했는데,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긴 탁자 위에는 예쁘게 리본으로 포장된 박스도 가득 놓여 있었다. 선생님의 요리사 남편분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브런치 도시락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예쁘고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행사를 진행하는 선생님은 회원들이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작가들은 그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스토리가 있는 그림은 정감이 가고 더 이뻐 보이는 법이다.다들 작품을 만드느라 고생했음을 알기에 마음이 짠했다. 동병상련으로 동지애가 느껴졌다. 수업을 받을 때는 그림에 열중하느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데, 그들 속으로 한 발 들어갈 수 있어서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특히 뒤에서 뒷바라지한 루씨쏜 선생님이 제일 수고가 많으셨다.기대 이상의 내실 있는 오프닝 행사로 가슴이 벅차고 뿌듯했다.
전시회가 끝나고 우리는 토평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나는 어제 평점이 만점인 식당에 예약을 해놓았다. 난 언니와 수진 씨로부터 축하와 덕담을 받고 나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남편은 일이 있어서 다음 주에나 내려온다는데, 이렇게 기쁜 날 친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고맙고도 행복했다. 이러한 기분은 나로 하여금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을 선사했다. 이제 다시 첫 바퀴를 굴렸으니, 두 번째 바퀴는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그렇다고 이 질문에 또렷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질문은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날 나의 답은 한결같았다. 어차피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서 삶이 주는 의미는 깊어졌다. 우리가 이 아름다운 지구별에 내려온 이유는 배우고 체험하고 나누기 위해서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배움과 체험과 나눔 앞에서 망설이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곧장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문득 글을 쓴다는 것은 민화를 그리는 것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분명 글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지 않고도 살 수 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없는 삶을 상상하면, 인생이 사막처럼 메마르고 삭막해지고 만다. 제주라는 인생 숲을 만나 저절로 시작된 글쓰기와 그림은 내 삶에 성큼 들어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민화라고 하는 예쁜 꽃밭과 함께 글쓰기라는 멋진 묘목을 함께 가꾼다면, 나의 숲은 더 무성하고 아름다워질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면내게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림을그리고글을 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