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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Sep 12. 2020

김녕 '고장난 길' 따라

제주 벽화마을 소풍



다행히도 코로나가 재확산 되기 직전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였지만, 서울 친구가 오랜만에 제주로 놀러 와서 나는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제주 벽화마을
김녕 '고장난(꽃이 피는) 길' 방문하기



김녕은 멀다. 작정을 하고 떠나야 한다.

제주도 땅덩어리가 서울보다 배가 넘게 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일정을 무리하게 는 이유이다. 제주는 또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3관왕을 거머쥐었으니 볼거리가 널려 있다. 가까이 바다가 있고 어디서든 한라산이 바라보이기 때문에 멀리 가지 않아도 욕구가 충족된다. 이는 제주 사람 굳이 먼 길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다. 제주도민이 된  평소에는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가 방문하면 이때다 싶어 떠날 채비를 한다. 제주를 속속들이 다 알게 되면 시들해질까 봐 겁이 나서라도 일부러 아껴두고 남겨둔 곳을 하나씩 야금야금 꺼내 든다. 






녕의 벽화는 특별하다.

대부분의 마을 벽화가 그림으로 그려진 데에 반해 김녕은 국내 유일의 금속공예 벽화마을이다. 올레 20코스 시작점으로부터 성세기 해변에 이르는 3km 길 위에 34점이 설치되어 있다. 2014년 제주도 첫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탄생한 김녕 벽화마을은 그 당시 신문기사로도 널리 알려졌던 걸로 기억한다. 마을 길을 돌아 나가면서 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는 작품들, 그리하여 붙여진 제주어 이름이 '고장(꽃) 난(피는) 길'이다. 


나는 벽화마을이 참 좋다. 

예술이 벽 안에 갇혀 단절되지 않고, 뚜벅뚜벅 마을로 걸어 나와 주민과 손잡고 그들의 삶을 노래하고 위로하며 소통하기 때문이다. 무심히 지나치는 행인에게도 넌지시 말을 걸며 그림 읽는 재미와 함께 동심선사하기 때문이다.


직장을 명퇴하기 전, 나는 혁신학교에 근무하며 수학여행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뭐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에 어렵사리 동료들을 설득하여 학년별로 이루어져 오던 관례를 깨고 소규모 테마형 수학여행을 기획하고 추진하였다. 전 교사가 테마별로 희망자를 모집하여 전국으로 흩어지는 여행이었다. 나는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을 고속버스에 태우고 통영으로 떠났다. 통영 바다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동피랑 벽화마을을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고 싶었다. 지금도 바닷가 가파른 언덕 마을을 골목골목 굽이치며 끝없이 펼쳐지는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져들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흐린 날의 김녕 바다


                                                                                                                                           

김녕은 바다가 참 예쁘다.

하얗고 고운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는 언제나 지나는 이들을 유혹한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90년대에도 제주도를 유람하던 중에 만난 김녕 바다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시 넋을 잃고 바다에 발을 담갔다가 길을 떠난 적이 있다. 관광객들에게 김녕 바다는 이렇게 스쳐 지나는 풍경일 뿐지만, 주민들에겐 고달픈 삶의 생생한 현장이다. 그들 삶 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다로 난 길 옆으로 방파제를 따라 벽화 속에서 갈치, 고등어, 우럭과 해파리가 유영을 하고, 바다를 마주하는 집의 대문은 낚시 포인트가 되었다.    

                                                              

담벼락에 금속으로 작업을 하다니 많은 수고와 어려움이 감지되었다. 그렇기에 차갑고 단단한 쇠가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해내며 따스함 전다는 사실 더욱 인상 깊었다. 가장 마음을 끈 작품은 마을 주민들의 생업이자 대표 직업인 해녀들의 모습이었다. 제주의 어머니라고도 할 수 있는 해녀는 깊게 파인 주름이 수심 어린 얼굴을 가득 덮었다. 파도가 거세지던 날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모진 삶의 현장이 숨비소리처럼 가쁘고 적나라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때로는 천진하고 귀엽게 로는 모든 것을 척척 해결하는 원더우먼으로 경쾌하게 변신하며 미소 짓게 다. 


내 어깨와 세월에 지고 온 것은
꽃이었더라


한평생 짊어진 인생의 무게가 꽃으로 승화된 벽화 앞에 섰다. 해녀들에게 이보다 더 진한 위로가 또 있을까? 가슴은 먹먹해도 얼굴엔 미소가 피어난다. 예술의 숭고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고생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여유와 지혜 그리고 한을 뛰어넘는 사랑을 읽는다. 보채는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물질을 떠나야만 하는 매몰찬 모정은 보는 이의 눈가를 적시며 감성을 건드렸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모녀의 이별이 애잔하다. 이제는 다 컸지만, 매일 아침 일 나가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눈물을 뚝뚝 훌리던 둘째 딸아이가 오버랩되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골목길을 돌아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작품과 숨바꼭질하며 마을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동심에 물든 마음을 만나게 되었다. 김녕의 벽화들은 삶의 터전인 바다를 주제로 그들의 고단한 삶을 형상화하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며 마을의 품격을 고취시켰다. 


제주를 르게 여행하고자 마음 먹었다면,  

한 번쯤 길 위의 예술학교 '고장 난 길'을 꼭 둘러볼 일이다.




                                                                      

햇살이 쨍쨍한  '신천리 바람코지 벽화마을' 찾았다.


김녕이 제주도 북동쪽 마을이라면, 신천리는 남동쪽에 위치한 바닷가 마을이다. 수년 전 제주에 집 지을 땅을 보러 다닐 때 한번 다녀간 적이 있는 마을이다. 그때 길에서 만난  할머니들에 여기 살기 좋아요?라고 묻자, 이구동성으로 제주에서 신천리가 제일 살기 좋다며 마을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반응은 신천리이 아니었다. 애월의 귀덕리, 조천의 와흘리, 성산의 온평리, 서귀포의 보목리, 제주의 동서남북 어디를 가더라도 그곳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한 목소리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최고라고 확신했다. 나는 100% 동의할 순 없었지만, 그들로부터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달관의 경지를 배웠다.



바람도 쉬어간다는 '바람코지' 신천리 벽화 영화 '선샤인'과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주인공 탈북소녀가 화가로 성장하는 내용을 촬영하며 그린 9점의 벽화가 신천 아트빌리지 조성사업으로 이어지며 현재는 100여 점의 작품이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신천리는 제주도를 해안 따라 동쪽으로 반 바퀴 도는 일주동로에서 바닷가로 난 두 갈래길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중 한 갈래의 벽화들은 올해 보수를 마치고 산뜻하게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른 갈래의 벽화는 예산 문제로 내년에 보수한다고 하였다. 영화의 촬영이 2013년도였으니 그동안 빛바랜 벽화에 새 옷을 입힐 때가 된 것이다.


마을회관에서 바다로 난 길을 따라 들어서자 벽에 내걸린 홈통이 코로 변신한 스펀지밥 그림이 나타났다. 신천리에는 스펀지밥 외에도 뽀로로, 짱구, 미니언즈, 겨울왕국의 올라프 등 다양한 만화 캐릭터가 등장한다.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더욱 흥미진진한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담쟁이가 뒤덮인 허술한 창고에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해바라기가 가득 피어나고, 꽃밭을 소담하게 가꾼 집의 담벼락에는 사랑스러운 핑크빛 나비가 날아들었다. 강아지의 이마에도 꽃이 사랑으로 피어나는 마을, 신천리는 마을이 쇠락하않도록 부지런히 가꾸려는 의지가 모여 오늘도 아름답게 자라나고 있었다.





제주의 벽화에서 해녀를 빼놓을 수는 없다.

신천리에서도 해녀가 곳곳에 등장했다. 그녀들은 언제나 주인공이다. 허리가 휘청이도록 무거운 등짐을 지고 걷는 해녀의 행진은 개선장군처럼 당당하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며 살아온 제주 여인들의 자주적인 삶을 닮았다. 꿈틀거리는 문어를 막대기에 말아 올려 테왁망사리에 담고 있는 박진감 넘치는 팔뚝과 그날 저녁 푸짐한 밥상을 앞에 놓고 행복해할 가족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눈빛이 리얼하다.


그렇게 마을을 돌다가  여인을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녀다. 단연코 신천리 벽화의 최고봉이다.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벽화는 해녀를 미와 사랑의 여신으로 승격시켰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맞닥뜨린 비너스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잃고 바라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 고아한 품위와 감미로움에 전율이 일던 순간이었다. 신천리의 비너스는 해녀복을 입고 2013년엔 조가비에서 탄생했지만, 올해는 '양귀비 여인'으로 다시 화사하게 부활하였다.



그림이 주는 행복감에 한껏 도취되어 본 하루였다. 마을벽화는 주민과 함께 서 더 생동감이 있고, 그들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어서 의미가 깊어진다. 그 많은 그림들 속에서 마음에 꽂힌 그림 하나 가슴에 안고 돌아올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흡족한 것이다. 역시 벽화마을은 참 좋다.


김녕에서 만난 원더우먼 해녀도, 신천리에서 만난 양귀비 해녀도 오랜 시간 내 마음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제주여행 #벽화마을 #김녕고장난길 #신천리바람코지










                                              
















































                                                  






















































김녕 금속공예 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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