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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Dec 27. 2020

제주 겨울풍경 셋

마음을 이어주는 풍경들



  주도에 겨울이 오면, 

  내심 기다려지는 풍경들이 있다.


  육지에선  수 없는 상큼하게 사랑스럽, 깊고 푸르 광활하, 때론 아스라이 신비롭고  스러운 풍경들. 그중 하나 동백꽃들이다. 11월 시작 들의 속삭임은 12월이 되자 끝내 으로 터지며 절정을 이루다.  동백을 구경하기  좋은 이유 새초롬한 탄생의 속삭임과  삶의 절정을 노래하는 교향곡을 동시에 들을 수 있고, 덤으로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수놓는 모습까지 고루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생로병사의 자연스러운 단계를 찰나의 순간에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의 깊이를 사해다.  


   길을 향해  언니와 함께 길은  몹시 쾌청했다. 햇살이 없이 쏟아지 서귀포 바다는 납작한 지귀도와 볼록한 섶섬을 배경으로 려하게 반짝이는 윤슬을 아낌없이 뿌려 놓다. 전날 내린 으로 한라산 1100도로 통제까지 되었지만, 따뜻한 서귀포 바닷가 마을에선 무런 흔적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동백수목원 입구 응달진 북쪽 돌담 아래 미처 녹아내리지 못한 만이 증거를 인멸하지 못하고 꼬리가 잡 뿐이었다. 


  우리는 입장료 도민 할인을 받고 위미리 동백수목원 으로 들어섰다. 꽃망울 살짝 절정을 지 듯했지만, 나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자연스레 생로병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탄생과 젊음, 의 절정과 노화, 그리고 죽음을 동시에 보여주 한 편의 서사시다. 아기동백은 처하고 장렬하게 목이 떨어지는 재래동백과 달리, 꽃잎이 하나씩 분리되어 낙화하기 때문에 나무 둥치마다 소복하게 꽃눈이 쌓여 더욱 사랑스러웠다.   


삶은 전희이고 죽음은 절정이다.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가 삶과 죽음을 통찰하고 했던 말처럼, 아기 동백은 죽음의 순간 오히려 생의 절정으로 치달으며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뿜어고 있었다. 질도록 선명하 화사한 핑크동백 꽃밭을 거닐며 행복을 만끽했다.  가득한 꽃세상 속에서 그들과 나로 녹는 순간 어찌 감탄하지 않 기쁘지 니하겠는가?



아기동백의 핑크빛 합창



   이번에는 친구와 함께 바람도 쐴 겸, 또 하나 겨울 풍경 보러 표선 바다로 향했다. 허리를 다쳐 한동안 꼼짝을 못 한 친구에게 오렌지와 블루가 만들어내는 칼라의 이중주를 들려주고 싶다. 겨울이 오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신천바다목장은 강렬한 오렌지 빛으로 뒤덮인다. 햇살 좋고 바람 부는 날이면, 어김없이 5만여 평의 목장지에 한약재와 화장품의 원료로 쓰인다는 귤피가 가득 널리기 때문이다. 날이 맑아  바다까지 시퍼레지면 블루와 오렌지 칼라의 대비는 더욱 해지며 보기 드문 진풍경을 연출한다.


  귤피는 일광욕을 하며 젖은 몸을 말리는 동안 향긋한 향기를 내뿜으며 각에 이어 후각까지 자극한다.  햇살에 바싹 마른 귤피를 인부들이 쇠스랑으로 모아 걷어내면, 바닥에 깔려 있던 검은 바탕이 드러나며 오렌지 색 선 가로로 길게 그려, 그 오선지 위로 하늘과 바다의 블루 칼라 황홀하게 변주되 한다. 때론 바다목장을 질주하는 얼룩말로 변신하도 하, 어쨌거나 나는  규모에 압도당하며 칼라와 문양이 만들어내는 강렬함에 매번 전율을 느다.


  제주 바다색 블루와 감귤 색 오렌지제주를 대표하는 두 가지 색이다. 제주 올레길도 길을 안내하는 화살표와 리본에 블루와 오렌지 칼라를 다. 길을 걸으며 바람에 나부끼는 올레 리본을 만날 때마다 나는 매번 블루와 오렌지 칼라의 이중주가 만들어 내는 경쾌함에 매료되곤 한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목장 안으로 들어설 수는 없다. 하지만 함께 길을 떠난 친구와 함께 바닷가로 쭉 곧게 뻗은 올레길을 걸으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원 없이 었고, 멀찍이 깊고도 푸광활한 바다 위 솟아오른 성산일출봉과 한라산을 배경으로 여전히 귤피 말리고 있목장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제주는 계절마다 저만의 칼라를 만들어내고, 

  나는 색채의 마술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신천리 바다목장의 겨울 풍경



  제주 겨풍경의 끝판왕은 한라산 백록담 설문대할망이 하얗게 깨어나는 모습이다. 밤새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에 뽀얀 분칠을 하고 긴 잠에서 깨어나신다. 그 순간 할머니의 모습은 제주의 어떤 미인보다도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신령스럽다. 나는 멀찍이 바라보며 경외를 하다가도, 가끔은 할머니의 품에 와락 안기고픈 마음에 당장 아이젠을 차고 영실코스로 설국 여행을 떠나곤 한다.


  신기하게도 할머니 서귀포에서만 바라보인다. 한라산 너른 자락 위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백록담은 동서남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주도를 창조한 여신인 설문대할망 얼굴 모습으로 나투는 곳은 제주도 남쪽 서귀포뿐이다. 서귀포에서 할머니는 서귀포 시민의 일상으로 스며드는 압도적인 존재이다. 내 마음의 평화의 근원, 든 이를 품어너른 한라산 자락은 설문대할망의 넉넉함을 배우고자 하는 내게 언제나 커다란 영감을 준다.


  올해는 한라산에 폭설이 내리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할머니께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시내를 걷다가도 문득문득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씨가 유난히 화창하던 날, 홀로 걸매공원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중앙로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할머니를 보았다. 나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차 키를 집어 들었다. 이날을 위해 쇠소깍에 미리 점지해둔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아, 그러나 일주일 사이 추수를 끝낸 귤밭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허락도 없이 귤밭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귤이 가득 달린  집 귤밭이 나타났다. 그곳엔 이미 전문 사진작가 한 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도 따라 떨리는 가슴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하얗게 눈이 덮인 한라산길게 구름 그림자를 드리운 산자락을 배경으로 탐스럽게 감귤이 주렁주렁 달린 겨울 제주의 풍경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올 겨울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며 그토록 원했던 그림이 나의 카메라에 고이 담겼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 산을 올려다보았다. 한라산은 어디선가 흘러온 구름으로 다시 뒤덮여 있었다. 할머니는 잠깐의 외출로 피곤하신 듯 솜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누워계셨다. 잠시 얼굴을 여주신 할니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조만간 아이젠을 차고 다시 영실에 올라 할머니를 알현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한라산 백록담 설문대할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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