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사진

라카페, 박노해 사진전 [길]

by Lara 유현정



나눔문화 공간, 라카페

제주에서 서울로 나들이를 가면, 나는 잊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난해 부암동에서 서촌 통의동으로 터전을 옮긴 나눔문화 공간 '라카페'이다. 카페 2층 갤러리엔 박노해 시인의 흑백사진이 연중 내걸린다. 시내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 근처에서 밥을 먹고 은근슬쩍 그리로 안내를 하면 다들 좋아는 곳이다. 단풍 순례로 바빴던 올 가을에도 카톡을 타고 날라든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길] 소식에, 코로나 시대의 절친이 된 남편과 함께 잠시 짬을 내어 달려가 보았다.


'라카페'로 가는 길은 걸어서 산을 넘어가는 느린 길이다. 구기동 집에서 어 나와 육교로 큰길을 건너면 서울에도 도롱뇽이 산다는 백사실 계곡으로 이어진다. 계곡은 부암동 카페 촌을 거치면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으로 연결되고, 다시 인왕산 숲길과 자락길 두 갈래 산책길이 수성동 계곡으로 이어진다. 청계천의 발원지인 수성동 계곡서 아랫마을 서촌 지나면 통인시장 다다르고, 시장에서 길을 건너면 '라카페' 도착하게 된다. 작심하고 이렇게 두어 시간 걷다 보면 자연과 역사, 문화가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에 몸과 마음이 함께 충족되곤 한다.





'라카페'와의 인연은 2014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진전의 역사를 새로 쓰며 입소문과 sns로 일파만파 전해지던 박노해 사진전 [다른 길]에서 시작되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사진전에는 숱한 흑백사진과 함께 박노해 시인의 글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과 함께 그의 글을 하나씩 읽어 나가는 동안, 깊은 내면에서 길어 올린 시어가 따뜻한 시선이 담긴 사진 속에 투영되며 사르르 가슴이 뭉클해졌고, 나도 모르게 작품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날은 마침 운이 좋게도 시인의 책 사인회가 함께하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 전시된 작품들이 수록된 책 <<다른 길>>을 한 권 사들고, 저자의 싸인을 기다리는 긴 줄에 합류하였다. 내 앞에 마주 앉아서 나직하게 말을 걸며 멋진 서체로 한 글자씩 정성 들여 사인을 해주는 시인은 마치 성자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과 언행에선 깊은 인품에서 우러나오는 향기와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어느 신문의 인터뷰 기사에서 읽은 대로, 분노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신 사랑의 순교자가 되기로 결심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그가 좋아졌다. 단번에 그의 팬이 되었고, 그가 세계 곳곳에 자급자립하는 삶을 지원하는 비영리 사회단체인 '나눔문화'의 회원이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인연으로 나는 매주 카톡으로 그의 시를 받아 들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교체되는 작품전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가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은 1980년대 노동운동을 하다가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던 저항시인이다. 7년간 옥살이를 하고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과거를 팔아 현재를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조국을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전쟁으로 얼룩진 이라크를 시작으로 17년간 제3세계를 떠돌며 지구시대의 유랑자로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진실을 사진으로 담았다. 시인의 작품들은 사진 하나하나에 주옥같은 성찰의 글이 더해지며, 보는 이의 가슴에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시인의 사진 중에 유독 나의 눈길을 끄는 주제는 바로 '학교'이다. 과거 30년을 몸 담았던 이력 때문이겠지만, 저절로 눈에 꽂힌다. 사진전 [다른 길]에서도 수많은 흑백사진 속에서 히말라야의 설산이 푸르게 눈부시던 <아름다운 배움터>가 특히 기억에 남다. 설산이 벽체요 하늘이 지붕인 대자연 속에서 시린 손을 비벼가며 배움의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소년들의 꼿꼿한 상이 인상 깊었다. 이번 전시회 [길]에서는 교실은커녕 책상도 없는 <길 위의 학교>가 소개되었다. 맨땅에 앉아 책을 펼쳐 든 어린 소년과 소녀들이 책에 코를 박고 활자를 흡수하는 습에서 전해지는 배움의 목마름에 나의 목이 메어 온다.


지난 전시에서 만났던 <날라리 선생의 참 교육>도 잊을 수가 없다. 만년설산을 지나온 바람은 시리지만, 햇살과 바람이 젤 좋은 이때 공부는 짧게 노는 건 길게, 미래를 위한다고 오늘을 포기할 순 없잖아, 하루하루 제때제때 다 살아야 삶이 아닌가요, 라며 아이들이 자신을 날라리 선생이라 놀려도 자신의 철학을 관철시키는 젊은 여선생의 뚝심에 배시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세상이 피어나는 순간에 교실에 갇혀 있을 아이들이 안타까워 야외수업을 단행한 그녀는 어쩌면 나하고도 닮아 있었다.


나도 한때는 학생들로부터 날라리 선생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친근함을 전제로 한 놀림의 표현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전혀 싫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교과수업보다는 야외로 나가는 특별활동 답사가 더 신났고, 학교 축제를 기획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청소년 영화를 만들고 스포츠댄스를 가르칠 때가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또 자치활동 시간에 급 알뜰시장을 열고, 수익금을 모아 연말에 손잡고 고아원을 방문할 때가 더 뿌듯했다. 아이들에게 성적보다는 학창 시절의 열정과 나눔의 추억을 선사하고 싶었다. 이제는 어서 코로나가 끝나서 한류를 타고 '길 위의 학교'를 찾아가 한글을 가르치는 봉사를 꿈꾸고 있다.



<아름다운 배움터>
<길 위의 학교>
<날라리 선생의 참교육>


박노해 시인의 사진 중에 나의 관심을 는 또 다른 주제는 바로 '나무'이다. 나무는 언제나 말없는 위로를 건넨다. 살면서 모질고 거친 모래바람을 만난 날, 서걱거리는 가슴을 안고 숲으로 들어가는 이유도 나무 때문이다. 나지막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무는 늘 기대고 싶고, 끌어안고 싶고, 닮고 싶고, 우러르고 싶은 존재다. 그리하여 그러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감동 그 자체가 된다.


2004년, 쓰나미가 가장 먼저 덮치고 지나간 울렐르 마을의 한 청년이 손가락만 한 바까오 나무를 매일 심었다고 한다. 여린 나무가 해일을 막아줄 순 없겠지만, 자꾸 절망하려는 마음은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그리고 8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은 시인은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가느다란 바끼오 나무가 파도 속에 자라나 숲을 이루었고, 청년은 여전히 바끼오 나무를 심고 있었던 것이다.


예한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의 황무지에서도 만년설 바람 속에서 살아남은 사과나무 천 그루가 시인을 반겼다. 30년 동안 묵묵히 엄혹한 땅에 사과나무를 가꾸며 희망을 심은 남자는 어느덧 노인이 되었고,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평화가 조준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불법 점령지 확장을 막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은 불볕의 광야에 올리브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란다. 거센 모래바람과 염소 떼가 갉아먹지 않도록 양철통으로 감싸 3년을 보살펴야 푸른 나무로 설 수 있다는 올리브나무, 그들의 희망을 안고 자란 나무는 광야에 뿌리를 박고 전사가 되어 눈물겹게 점령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해발 930m의 헤브론 고원에도 봄이 오면 새로운 세상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간절한 꿈, 소박하고 단순한 꿈,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가슴 시린 푸른 꿈이 올리브 나무와 함께 무럭무럭 자라나 이 세상에서 꼭 실현되기를, 나 또한 꿈꾸었다.



<파도 속에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다>
<천 그루의 나무를 심은 사람>
<올리브 나무의 꿈>


올 한 해, 나는 떠날 수 없는 길을 가슴에 품고 주저앉아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시인은 나의 등을 토닥이며 그래도 여기까지 오지 않았냐며 두려워 말라고 한다. 언젠가 다시 일어나 걸으면 길을 찾게 될 것이라 하였다. 믿음을 잃지 않고 기다리면 길은 머지않아 또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다시 만난 시인의 따스한 위로로 나의 희망이 조금씩 자라난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
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 박노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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