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순례

가을은 제주보다 서울이 더 멋져요.

by Lara 유현정



가을이 오면
난 몹시 단풍이 허기진다!!


는 절규한다. 제주생활을 시작하면서 단풍 핍증은 병이 될 정도로 심해졌다. 한두 해는 그럭저럭 다른 볼거리를 찾아다니며 잊고 지냈지만, 해가 지날수록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고국을 떠나 머나먼 타국으로 이민을 간 것도 아닌데, 향수병을 앓게 되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떠나서 일주일만 지나면 김치와 된장찌개가 간절하듯이, 가을이면 단풍이 그리워서 헛헛해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제주의 경관은 이국적이다. 육지 풍경과의 격차는 가을에 극명해지는데, 이는 단풍 대신 억새가 천지를 뒤덮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억새로 뒤덮인 오름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가을을 즐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은빛 억새의 물결 너머로 붉게 물든 단풍이 그리웠고, 감귤이 노랗게 익어가면 그 사이로 햇살에 반짝이는 금 들녘이 아른거렸다. 음식도 어려서 맛본 것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풍경도 그런 듯하였다. 혀가 음식을 기억하듯이 정서가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다를 보고 자란 이가 사방이 막힌 산속에서 살기 힘들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산에서 살던 사람이 망망대해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든 어린 시절 경험한 것들의 결핍에 대해서 향수를 갖는다.


리하여 가을이 오면, 나는 미친 듯이 단풍을 찾아 제주도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제주도엔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행나무나 단풍나무가 드물다. 아마도 일교차가 크지 않아 단풍이 곱지 않고, 그러다 보니 굳이 심고 가꾸지 않게 되었으리라. 거기엔 태풍도 한몫을 한다. 낙엽수는 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두둑 잎을 떨구기 때문에, 그나마 몇 그루 안 되는 단풍나무도 색을 입힐 나뭇잎이 귀한 것이다. 그래서 곶자왈을 걷다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이 단풍나무를 만나게 되면, 호들갑스럽게 드폰을 꺼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하지만 이내 갈증만 증폭될 뿐, 도 모르게 헛한 가슴 쓸어내리게 된다.


서울에선 마음만 먹으면 만추의 계절까지 단풍을 즐기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다. 고개만 들어도 서서히 북한산 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알록달록한 단풍의 행렬에 동참할 수 있었고, 은행잎이 노랗게 깔린 가로수 길만 걸어도 가을 우수에 빠져들었다. 또 시간이 나면 교외 들녘으로 나가 황금 들판을 원 없이 바라볼 수도 있었다. 아침저녁 소슬바람으로 고독감이 깊어질지라도, 가을 들녘을 가득 채운 풍요로움은 허전한 가슴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곧 불어닥칠 한파를 맞이할 힘지 슬며시 손에 쥐어주었다.


그래도 어느 해인가, 마도 태풍이 거의 없던 해로 기억한다. 마당발인 제주 친구를 따라 간 천아 계곡에서 뜻밖의 단풍을 만났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것은 단비처럼 나의 향수를 적셔주었다. 또 한라산 영실계곡의 단풍 신의 한 수인 듯 천상의 풍경을 보여주어 남부럽지 않였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극히 드물어서 그날 한라산을 오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최근 10년 내에 최고의 단풍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해를 빼고 내가 제주에서 단풍으로 흡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라산 영실계곡의 단풍



을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추석명절을 보내러 서울에 올라와서는 단풍이 성에 찰 때까지 제주행을 미루기로 하였다. 때마침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라는 신문기사 보도되며 나의 결심에 불을 붙였다. 러나 갈 길이 설악산 대신 북쪽으로 금만 올라가도 될 성싶었다. 렇다면 포천의 산정호수가 안성맞춤이었다. 산정호수는 지난 오스트리아 여행 때 할슈타트의 배반으로 실망하면서 더욱 그리을 키오던 곳이었다.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 길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고 돌아가게 되면서도 끝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기대와 설렘 안고 달려간 산정호수는 한 마디로 실망 그 자체였다. 리가 너무 성급했는지 단풍도 일렀지만, 무엇보다도 호수 둘레길 초입에 마련된 놀이기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마이크 소리가 요하던 산정호수를 세차게 흔들어놓고 있었다. 호수의 크기는 또 어찌나 작게 느껴지던지, 끝도 보이지 않게 거대하서도 고즈넉하던 할슈타트가 너무도 그리웠다. 우리는 한 바퀴 호수를 산책하고 나서 서둘러 자리를 뜨고 말았다.


산정호수가 실망스러워서 가슴앓이를 하던 중 마침 대전에 내려갈 일이 생겼다. 수년 전 갑사의 가을이 아름다웠던 사실을 기억해내고, 나는 다시 가슴이 부풀었다. 이번에는 갑사를 다녀오리라. 그러나 이번에도 타이밍을 맞추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분명 계룡산 단풍이 절정인 시기였지만, 의 하단에 위치한 갑사는 아직 단풍의 기미가 이질 않았다. 또다시 실망한 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 때문에 가슴 그라들며 허기가 졌다. 보다 못한 남편이 수소문 끝에 도봉산 단풍이 한창이니 가보자고 하였다.


나는 당장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남편을 보챘다. 이른 시간 간식을 싸들고 함께 길을 나섰다. 밤새 한파가 닥쳐 기온이 쌀쌀했다. 장갑을 깜빡한 손이 시려서 곱았지만, 마음은 먼저 단풍을 향해 가쁘게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보문능선으로 향하던 길에서 손에 잡힐 듯 우아한 우이암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주변의 단풍은 절정이고 또 절경이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뒤섞인 산자락에 화룡점정으로 단풍나무가 붉게 타오르며 멋진 가을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의 기진 가슴이 금씩 부풀어 올랐다. 능선에 올라서서 오봉을 바라본 후 도봉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에도 단풍나무가 지천에 깔려 있었다. 온종일 눈이 호강 하루였다.


러나 한 번의 산행으로 나의 주린 가슴이 채워질 순 없었다. 도봉산을 다녀온 후에도 북한산 코스를 달리하며 네 번 올랐고, 다시 또 도봉산을 찾았다. 일주일 사이 단풍은 산 아래로 내려왔고, 등산로 초입까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거리마다 은행나무 가로수도 노랗게 빛나고, 북한산도 끝단까지 온통 붉은 치마를 . 행에서 돌아오니 서울 집 단지 내 조경도 느새 단풍의 절정을 뽐내고 있었다. 렇게 찾아 헤매던 단풍은 마침내 내 발 밑까지 오고야 말았다. 동안 결핍이 너무 커서 초조하고 조급했던 나는, 파랑새를 찾아 멀리 떠난 틸틸(치르치르)과 미틸(미치르)처럼 밖으로 밖으로 돌다가 집에 돌아와서야 평온한 가을 행복을 만날 수 있었다.



도봉산 보문능선의 단풍



이제야 나는 다시 제주로 떠날 힘을 얻었다. 단풍이 고팠지만 허기는 면했으니 한숨은 돌린 셈이다. 래도 서울숲이나 고궁 속으로 들어가 좀 더 서울의 만추를 즐기다가, 느긋하게 제주의 가을 억새를 만나고 싶다. 슬슬 제주행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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