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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n 26. 2020

수국이 활짝 피었습니다

 나의 인생 꽃, 수국



바야흐로 6월,

제주는 온통 수국 세상이다.


여름이 시작되면 제주도 곳곳엔 수국이 탐스럽게 다. 비가 많은 제주와 물을 좋아하는 수국이 천생연분으로 만나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주의 6월이 이렇게 아름다운 건 오로지 수국 때문이다. 나는 육지에선 수국의 존재를 거의 몰랐는데 제주생활을 시작하면서 수국을 새롭게 만났다.

수국은  토양의 산도에 따라 파랑, 보라, 자주, 핑크, 하얀색까지 빛깔도 채도도 가지가지. 꽃잎이 터지면 입을 쩍 벌리고 밥 달라고 지저귀는 제비 새끼를 닮아 더욱 사랑스러운 꽃,  송이만으로도 한 다발이 되는 푸짐한 꽃이다. 6월 한 달 내내 오래 피어있기도 하지만, 꽃이 지고 난 다음에도 낙화하지 않고 그대로 드라이플라워가 되어 겨울을 난다.


6월이 오면, 나는 제일 먼저 가로변을 수국으로 장식하는 비석 거리로 나간다. 이제나저제나 맘 졸이며 기다리던 수국의 상태를 살피고, 지천에 널린 꽃 중에 미안하지만 가장 탐스런 녀석을 골라 집으로 데려온다. 작은 유리병에 담아 식탁 위에 올 화원에서 비싸게 팔리는 화려한 꽃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단언컨대, 

 한 송이 만으 이렇게 큰 기쁨을 주는 꽃은 수국 밖에 없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한 송이 수국이 주는 기쁨



어느 해 6월, 나는 제주를 찾은 친구에게 수국을 선사한 적이 있다. 국 사랑을 주체할 수 없어 혼자 마음에 담아두지 못 구라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그비석거리나가 수국을 서너 송이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꽃을 받아 들고 환하게 웃던 그녀는 이제 나처럼 수국 팬이 되었다. 6월이면 함께 수국 얘기를 꽃피우지만, 코로나가 만연한 올해는 안타깝게도 육지에서 그리움만 키우고 있다.



한 번은 서귀포 공연장에 수국 꽃다발을 만들어 가기도 하였다. 지인의 지인이기도 한 마임이스트 유진규 님의 공연이었는데, 끝나고 꽃을 건네기념촬영을 고 뒷풀이를 함께 하. 신기한 듯 꽃을 안고 연신 바라보는 모습에서 소박하지만 손수 만든 꽃다발었기에 받는 이도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 듯하여 뿌듯하다. 수국은 마음과 정성 함께 건네지는 꽃이다. 받는 이의 함박웃음은 그래서 더욱 환하고 탐스럽다.

수국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





제주도 곳곳에 수국이 만발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나는 난산리 밭에 가는 길에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성읍의 보롬왓에 들렀다. 곳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국 길이 있기 때문이다. 보롬왓은 지난 5월의 메밀꽃에 이어 보라색 유채가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먼저 수국을 만나러 갔다. 주차장엔 핑크 칼라가 눈에 띄는 키 큰 수국이 신부대기실의 신부처럼 수줍게 서 있었다. 몇 발짝 지나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관계로 사람들 눈에는 거의 띄지 않았다. 철문은 언젠가는 비밀의 문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메밀밭 사잇길로 들어와 수국을 즐기게 되면서 존재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요즘 너무 유명해진 보롬왓 수국 길은 입장료를 받고 관리하며 예전의 고즈넉함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붉은 송이가 깔려있는 고운 길은 레드 카펫처럼 화려했고, 삼나무 방풍림 아래 양쪽으로 늘어선 수국은 부케를 들고 서 있는 신부처럼  우아하고 산수국은 들러리처럼 즐거워 보였다. 생의 절정을 맞은 이 순간을 축하하며 새들의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꿀벌도 신부의 아름다움에 반한 듯 살포시 내려앉아 떠날 줄을 몰랐다.




보롬왓 수국 길



나는 잠시라도 사람 없는 고즈넉한 수국 길을 고 싶었다. 반대편으로 차를 몰아 수국 길의 끝자락을 찾아가 보았다. 과연 내가 찾던 비밀의 화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인적이 끊겨 바닥에 풀이 우거진 고요한 숲길은 새들의 지저귐도 더 신비로웠다. 내 안 깊숙이 잠겨있던 비밀의 문이 스르륵 열리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홀로 만끽하는 즐거움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풀들이 샌들 신은 맨발을 간지럽혀도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국이 신기해서 걸을수록 안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나는 점점 마법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어느덧 신비하고 흥미진진한 동화 속 세상에서 홀로 탐험을 즐기는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혼자라고 착각에 빠진 순간, 조용히 사색하며 꽃길을 즐기는 두 여인과 마주쳤다. 우리는 눈빛만 교환하고 서로 방해가 되지 않게 비켜섰다. 나만의 길은 아니었지만 이만하면 비밀의 화원을 제대로 즐긴 셈이다.



보롬왓 반대편 수국 길



나의 마지막 수국 감상 인생의 프로젝트, 난산리 텃밭의 수국 정원이다.


나는 꽃과 나무를 심는 사람을 존경한다. 타샤 튜더와 구례 매화 마을을 가꾼 홍쌍리 할머니가 나의 롤모델인 이유이다. 나의 수국 정원은 햇수로 3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볼품은 없지만,10년 후의 모습을 꿈꾸며 기다린다. 나는 해마다 수국을 심고 또 심었다. 새순을 잘라 잎을 다듬고 물에 담가 뿌리를 내린 후, 장마가 시작되면 나무 그늘 아래 줄줄이 심었다. 땡볕에 심은 수국은 볕을 이겨내지 못하고 말라죽는다는 것을 나는 첫해에 알게 되었다.


봄이 되면 그동안 뿌리를 내려 튼실해진 수국을 솎아내어  텃밭 곳곳에 옮겨 심었다. 돌담을 따라 벚나무 가로수 사이사이에도 옮겨 심었다. 자동차로 나의 정원에 도달할 즈음, 수국이 먼저 활짝 반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작년 6월, 드디어 나의 수국이 첫 송이를 피워냈을 때감개무량함을 잊을 수가 없다. 올해 나의 수국들은 이제 모두가 송이송이 꽃송이를  피워내고 있다. 국 정원을 향한 원대한 꿈이 영글어간다.


사실 나는 수국에만 정신이 팔려서 귤농사엔 무심한 날라리 농사꾼이다. 병충해가 심한 귤나무는 약을 제대로 치지 않아서인지 영 신통치 못해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지만, 아무려면 어쩌랴. 나는 꽃을 심고 가꾸는 데만 마음을 쏟는다. 비만 내려주면 튼실하게 자라 주는 수국이 그저 기특하고 사랑스럴 뿐이다. 수국으로 둘러싼 나의 정원, 이제 자리 잡고 꽃을 피워내기 시작한 텃밭을 둘러보자 올해의 숙제를 제대로 마친 기분이 들었다.



수국이 활짝 피었습니다.
난산리 텃밭에도 활짝 피었습니다.

  


제주3주째 장마가 지속되며 연일 습도와 함께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행복한 이유는 오로지 수국 때문이다.



난산리 밭 나의 수국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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