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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n 28. 2020

입양견 호두 길들이기

가족이란?



천방지축 호두가 우리 집  식구가 었다.


가족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국 남편과 나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딸아이는 전라도 무안까지 가서 호두를 입양해 왔다. 내가 가끔 서울 집을 다니러 올 때 제일 먼저 반겨주는 건 다름 아닌 강아지 호두다. 한 달이나 두 달만에 나타나도 잊지 않고 어찌나 반갑다고 호들갑을 떠는지 정신을 쏙 빼놓는다.


나의 애완견 첫사랑은 시츄푸르내였다. 

나는 어려서 개에 물린 트라우마 때문에 개를 싫어하고 무서워했지만,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원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덕분에 께 살면서 강아지가 얼마나 충직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푸르내는 아기 때부터 17년을 함께 살다가 노화와 질병으로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 남편과 나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그러나 철없는 딸아이는 달랐다.

푸르내를 그리워하면서도 틈틈이 또 다른 강아지들을 넘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유기견 센터에 봉사를 다니면서 예쁜 강아지 사진을 가족 단톡 방에 올리며 넌지시 우리의 입양 의사를 타진했다. 나는 어리고 예쁜 강아지 사진을 볼 때면 잠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하였지만, 남편은 단호했다. 본인도 나이 들어가는데 더 이상 다른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게 큰 이유였다. 제주에서 주로 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푸르내(좌)와 호두(우)


그런 와중에 딸아이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은 강아지 한 마리 나타났다. 아이는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쪽 귀를, 나는 한쪽 귀를 막고 힘겹게 버텨 나갔다. 입양이 마음만큼 쉽지 않자 딸아이는 최후의 통첩을 하였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담은 파워포인트를 출력해 와서 우리에게 건넸다. 입양을 반대하며 늘 건네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었다.


1. 왜 호두여야만 하는데?

(푸르내와 똑 닮았단다. 90%가 일치한다나?)


2. 무안까지는 어떻게 데리러 갈 거니?

(운전경력 13년의 친구가 동행한단다.)


3. 비용은 누가 지불하고 어떻게 키울 거야?

(본인 방에서 키우고, 중성화 수술비를 비롯해 애견 보험, 사료, 잡화 등 모든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겠단다.)


4. 결혼한 후에는?

(당연히 데리고 갈 거고, 강아지 싫다는 남자랑은 결혼할 생각이 없단다.)


5. 모든 걸 책임질 건데 허락은 왜 받아?

(호두가 사랑받는 가정에서 자라길 원하니까요)


그리고, 푸르내와 함께 한 가족여행과 정다운 카톡방이 기억 나시나며 마지막으로 던진 한 마디


가족 간에 사라진 대화를 되찾고 싶어요.


딸아이의 최후 통첩


어느새 훌쩍 자라 자신의 일을 찾은 딸아이는 늘 바쁘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 간의 식사도 뜸해지고 마주 앉아 얼굴 보기도 어려운 때, 딸아이는 푸르내와 함께 했던 여행과 추억의 시간을 떠올리며 우리의 심금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한 마디에 코 끝이 찡해지며, 뭣이 중한데? 그동안 버티던 둑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자식을 낳고 살아보니 이 말은 자고로 진리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의 행복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스스로 양보한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둘 다 불행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설득을 당했고, 못난이 호두는 결국 우리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온 강아지 호두가 이상하다.
생김새도 털 색깔도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사진으로 보던 그 녀석이 아니다. 이건 뭐 출생의 비밀은 아니더라도 입양의 비밀이 시작되는 대사건이었는데도, 딸아이는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여기저기 닮았다며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입양 각서까지 쓰고 데리고 왔는데 다르게 생겼다고 파양을 할 수는 없었으니, 그렇게 미심쩍게 호두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보호소에 있을 때(좌)와 집에 데려 왔을 때(우)의 호두, 내 눈엔 완전 다르다.


호두는 안쓰럽게도 처음엔 산책을 거부했다.
다시 버려질까 봐 두렵고 불안했던 모양이다. 일주일쯤 지나자 그제야 산책을 시작했는데 힘이 어찌나 지 나는 도저히 감당이 안됐다. 성격도 애정결핍인 듯 활발함을 넘어서  촐싹대고 저돌적인 데다가 부잡스럽기까지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3살이라던 녀석의 몸도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우리 집에 온 지 6개월 만에 크기는 1.5배, 몸무게는 2배가 되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추정했던 나이는 오판으로, 호두는 1살도 안 된 기였음이 판명 났다. 호두는 다 큰 아이가 아니라 폭풍 성장기에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개춘기를 겪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고 예민하던 시기에 홀로 버려졌으니, 그 트라우마는 어쩔 것인가? 또 입양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을까?




그나저나 제일 큰 문제는 배변이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서 시도 때도 없이 거실과 이불에 용변을 보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푸르내는 어려서부터 화장실을 잘 이용했기에 상대적으로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습관을 들이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바닥의 기저귀에 소변을 볼 때까지 가두기도 하였으나, 힘이 너무 세서 나중에는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우리는 용변 문제를 해결하려고 머리를 맞대다가 산책을 생각해냈다. 아침저녁 규칙적인 산책을 통해 배변 습관을 기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산책은 최고의 방법이었다. 호두 산책은 바쁜 딸아이를 대신한 남편의 몫이 되어버리긴 하였지만, 남편도 덕분에 매일 운동을 하게 되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이제 호두는 크고 작은 습관이 바로 잡히고 성질도 다듬어지며 우리 집 식구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하나의 생명을 만나 한 가족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연이 겹쳤을까를 생각하면 짐승이라도 허투루 다룰 수가 없다. 정을 쏟은 만큼 귀해지는 법, 호두는 이제 우리에게 없으면 안 되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호두의 요즘 모습들


나는 요즘 건강검진 차 들른 서울에서 매일 저녁 남편과 함께 호두를 데리고 홍제천변을 걷는다. 돌아오면 나의 만보계엔 1만보가 찍히고, 남편은 아침산책도 시키니까 2만보가 훌쩍 넘는다. 요즘 호두는 동네에서 산책왕으로 불린다. 우리 가족의 건강을 인도하는 호두가 새삼 고맙고 기특하다.


가족이란, 조금씩 길들여가며

평생 서로의 건강을 지켜주는 존재가 아닐까.


호두야,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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