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ra 유현정 Mar 27. 2021

부디 꽃길만 가시리

가시리 녹산로와 엄마의 꽃길

                                                                                                                                        


  시간을 더하는 마을, 서귀포의 가시리(加時里)에는 10km를 내리 달릴 수 있는 꽃길이 있다. `녹산로’라 불리 길은 조선시대 최고의 목마장이던 녹산장과 갑마장을 관통하 길다. 최근에는 유채꽃을 소재로 축제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락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 곳이다. 이맘때쯤 이 길에 들어서면,  언제나 가슴이 설레다 못해 쿵쾅거리곤 한다. 유채가 줄지어 피어난 이십 리 길 따라 벚나무가 다정하게 하는 환상하모니를 상상해보라! 하늘이 파랗게 펼쳐지고 뭉게구름까지 두둥실 떠오른 날엔 이친 길 끝에서 풍력 바람개비까지 돌아가완벽에 가까운 천상의 꽃길이 완성되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난산리 밭을 향해 달리던 중이었다. 새봄을 맞이하는 만년 초보 농사꾼 3월  눈코 뜰  없이 바다. 지난밤 비가 몰고 온 강풍이 차게 불었지만, 괜스레 마음이 바 도시락을 싸들고 집을 나섰다. 리는 동안 잡초와의 전쟁으로 두 손 두 발고 말았기에 드디어 특단의 조치를 내야 했다. 검은색 비닐로 멀칭 할 생각에 길을 떠나는 마음 사뭇 비장하였다. 렇게 산록도로를 질주하여 가시리 녹산로에 접어 순간, 믿을 수 없는 풍경이 눈 앞에 다.


오, 생의 절정을 맞이한 그대들
벚꽃과 유채꽃이여~


  유채는 지난주부터 이미 피어나고 있었지만, 벚꽃마저 봄단장을 마치고 보란 듯이 자태를 뽐 내니 팡팡 팝콘이 터져 온 세상을 뒤덮은 것 같았다. 보통 4월 초가 되어야 볼 수 있는 풍경을 올해는 겨울이 따뜻하여 일찍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난산리를 가기 위해선 우회전을 해야 했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핸들을 반대로 꺾었다. 일이 아무리 바빠도 꽃구경을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유채와 벚꽃이 동시에 만발한 절정의 녹산로는 정말로 한 순간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고로 녹산로에서는 가던 길을 멈추고 지금을 즐겨야만 하는 것이 진리인 것이다.  


  우리는 잠시 차를 세우고 꽃길을 걸었다. 향긋한 유채꽃 향기가 강풍을 타고 다가와 코 끝을 간지럽혔다. 쉴 새 없이 꽃구경 나온 차들이 곁을 지나쳤지만 꽃 향기만으로도 행복한 길이었다. 채와 벚꽃의 조화는 어쩜 리도 완벽하던지, 바로 오늘을 위해 그 혹독한 겨울을 견며 너무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보조를 맞춘 듯하였다. 마치 물 오른 유채 신랑과 꽃단장한 벚꽃 신부가 녹산로를 따라 웨딩마치를 울리며 행진하다.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의 결혼식에 초대된 듯 마음이 고조되었. 한결 침착한 유채 신랑이 땅에 발을 굳게 딛고, 기쁨에 겨워 하늘 높이 들뜨는 벚꽃 신부의 손을 차분하게 잡아 더욱 아름답고 환상적인 커플이었다. 제주도 온 천지가 벚꽃 세상이라 이제는 벚꽃만 보면 어질어질 멀미가 날 지경인데, 분한 유채 신랑 덕에 정신 차리고 화사한 벚꽃 신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축제가 무산되어 유채밭을 모두 갈아엎는 일까지 있었지만, 올해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드라이브인’ 방식으로 축제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올해가 벌써 38회란다. 지나간 세월 비바람을 견디며 자라났을 벚나무들이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축제일인 4월 6~8일까지 벚꽃이 기다려줄지는 모를 일이다. 유독 개화기간이 짧은 꽃이라서 그 사이 비바람이라도 불면 속절없이 꽃잎을 떨구는 통에 벚나무에 꽃 대신 초록 잎을 달고 축제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제주에 머물고 있다면 어서어서 서둘러 가 보길 바란다.



  다시 차를 이동해 정석비행장 쪽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아직 축제는 멀었지만 밀려드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코로나 예방을 위한 절차가 마련되어 있었다. 유채밭을 돌며 사진을 찍는데 중산간 허허벌판으로 불어닥 바람 손이 시릴 정도로 매서웠다. 유채밭 한편에 마련된 전망대로 올라섰다. 제주에서 가장 넓은 마을 땅을 소유한 가시리는 아스라이 한라산과 오름을 배경으로 유채 한가득 품고 있었다. 제주도 최대의 면적을 자랑하는 유채밭이 샛노랗게 너울거린다. 바로 옆에선 풍력발전을 위한 거대한 풍차가 윙윙 소음을 내며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마을, 해마다 커다란 기쁨을 주는 가시리가 울 따름이었다.


  제주도에 아름다운 꽃길이 많아도 나는 가시리 녹산로가 최고라 생각한다. 유채와 벚꽃이 동시에 피어나는 꽃의 이중주는 흔히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이 지나가면, 이 길엔 또다시 뜨거운 한여름의 사랑스러운 코스모스가 조잘거리던 때가 있었다. 요즘은 마을에서 그런 수고로움을 덜고 있지만, 내 기억 속의 길은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아 있다.    

 



  랴부랴 난산리에 도착하니 그 길도 벚꽃이 만개하였다. 제주도 온 천지가 벚꽃의 물결이다. 아침부터 불기 시작한 강풍으로 미세먼지는 어느새 다 날아가 버리고 하늘은 드높고 청명했다. 바람이 만들어 놓은 뭉게구름만이 두둥실 평화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난산리는 바로 이 평화로움이 나를 그토록 잡아끌었던 땅이다.

  

  나는 먼저 꽃밭을 손보았다. 양귀비 화려하게 피어날 5월을 기다리며 주변에 널브러져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샤스타데이지를 화단으로 옮겨 심었다. 남편은 전날 밤 유튜브로 배운 멀칭을 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으로 바람이 잔뜩 들어가 펄럭이는 본새가 여기저기서 초보티가 팍팍 났지만, 어쩔 것인가? 잡초만 막을 수 있다면 너그러이 눈감아 주기로 했다. 중간에 휴식도 취할 겸 도시락을 열었다. 집에서 만들어간 김치 볶은밥에 배추 된장국을 끓이니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멀칭 한 밭에 강낭콩과 들깨를 한 줄씩 심고 농사일을 마쳤다.

  오후 내내 쉼 없이 일하던 밭일을 끝내고 난산리 길을 돌아 나오는데,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촬영팀이 보였다. 한적한 이 길도 어느새 소문을 탔나 보다. 벚꽃 터널 속에 웨딩사진을 찍는 젊은 커플이 내겐 꿈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제 막 생의 길 앞에 당도한 그들에 진정 아름다운 현실었으리라. 




  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엄마의 꽃길을 생각했다.  주 엄마의 수술을 앞두고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신의 수술 앞도 폐렴으로 입원한 아버지만 걱정하는 엄마다. 친정과 가까이 살고 있는 동생이 늘 발로 뛰어서 급한 불은 끄고 있지만, 연로한 부모는 풍전등화처럼 언제나 조마조마하다. 이제 인생의 종점향해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부모님의 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모닥불처럼 시나브로 그라들고 있. 말년에 뇌경색으로 쓰러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엄마에게도 분명 꽃길은 있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꽃길은 언제였을까?

                                                                                                                                                                                                                 

  지난겨울 결혼 70주년을 맞이한 엄마는 축하차 모인 자식들에게 자신의 결혼 얘기를 들려주었다. 사실은 내가 혼식 얘기를 조른 터였다. 사람은 나이 들면 추억으로 산다는 말이 있다. 잠시라도 엄마가 고단한 현실을 잊고 행복한 추억여행을 떠났으면 싶었다. 나는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며 엄마와 함께 추억 속 여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도착한 결혼식은 엄마의 친정집 마당에서 치러졌고, 그날은 날이 포근하여 살짝 비까지 내렸다. 온 동네 사람들이 신랑 신부를 구경하러 몰려들었고, 초례를 지내던 널찍한 대문간에는 생닭을 안은 남녀가 신랑 신부 곁을 지켜주었다. 결혼 첫날밤 쑥스러운 신랑은 옷도 안 벗고 잠이 들었고, 다음 날 꼬깃꼬깃 구겨진 옷을 입은 채 신부를 데리고 고개 넘어 신랑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더라는 얘기였다.


  엄마에겐 이상형인 아버지를 만나 결혼식을 치른 날이 꽃길이었을까? 아니면 남편 공부를 시키겠다고 서슬 퍼런 시집을 뛰쳐나와 상경하던 날이 꽃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내리 딸 넷을 낳고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다가 처음으로 아들을 낳던 날이 꽃길이었을까?  아니면 자식들  키우고 나서 온갖 멋을 부리며 노래교실 휘젓고 노인대학을 다니며 만학을 불사르 때가 꽃길이었을까? 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지금도 아버지만 바라보는 엄마에겐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천생연분인 아버지를 만나 지금까지 해로해 온 인생이 통틀어 꽃길 아니었을 싶다.



  차는 다시 가시리 녹산로에 다다랐다. 난산리 밭을 오가며 이 길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다양한 풍경을 만난다. 가시리 녹산로가 오늘처럼 최고의 모습 보여주는 것은 아다. 일 년 중 꽃이 핀 날은 사실 며칠 되지 않는다. 꽃이 활짝 피었다 해도 날이 잔뜩 흐리거나 비가 뿌리는 날도 있고, 강풍이 불어닥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꽃잎을 허망하게 모두 떨어뜨리기도 한다. 꽃잎이 스러지고 나면 초록잎이 돋고 무성해지다가 곧 낙엽이 되어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북서풍이 몰아치는 겨울이 오면 녹산로는 땅 속에 유채 씨를 품고 다음 해를 기약하며 기나긴 동면에 들어간다. 그럴 때면 나는 스산해진 풍경 위에 봄날의 꽃길을 오버랩시키며 애써 기억을 되살리곤 한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을 것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너무 일만 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며, 즐길 수 있을 때 미루지 말고 맘껏 즐기, 나이가 들수록 욕심을 비워내고 아름답고 행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채야 한다. 뜻밖의 폭풍이 불어닥칠지라도 자연 앞에서 다시 겸허해지고 이를 배움의 계기로 삼는다면, 그 길은 분명 오래도록 꽃이 만발하향기가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꽃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부디 꽃길만 가시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심쿵한 별도봉의 봄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