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편지

아버지의 49재를 치르고

by Lara 유현정



사랑하는 아버지께


49재를 치르며 아버지의 영혼을 떠나보낸 지도 벌써 두 주가 지났습니다. 가친척이 다시 모인 그날은 날이 화창하다 못해 태양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라 다들 땀을 흠뻑 흘리며 더위를 먹었요. 래도 비가 오면 어쩌나 한동안 마음을 졸였는데 그나마 다행이었요. 저희는 아버지가 누워계신 그 멋진 선산에서 49재를 올리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었든요. 6재 올리면서 49재 날 비 오지 않게 도와달라고 드린 부탁을 아버지께서 잊지 않고 들어주신 것 같요. 감사합니다.


오늘 감사로 시작한 이 편지에서 저는 잠시 아생전 아버지께 받은 은혜를 돌이켜보려 합니다. 론 아버지께서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를 어찌 모두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마는, 아버지와 영원히 이별하서 그동안 제가 받 세 가지이라도 꼭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께 받은 첫 번째 은혜는 아버지께서 딸들에게 쏟은 교육열입니다. 저는 어려서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까칠한 아버지의 턱수염을 느며 한글을 배우고 구구단을 외웠습니다. 아버지의 없는 사랑 속에서 토록 자상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시대의 평균 지성을 훌쩍 뛰어넘는 혜안으로 딸 부잣집 딸들을 모두 교육시켰고, 세상에 나가 이름을 떨치기를 원하셨지요. 사춘기 때는 그런 아버지의 열망이 부담스워 조금씩 뒤로 반항도 하였지만, 아버지의 교육열은 제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비록 아버지께서 바라시던 성공은 아니더라도, 저는 지금 제가 원하 름다운 제주 섬에서 꾸던 방식으로 화롭고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니, 하늘에서 허허 웃으시며 흡족게 바라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번째 은혜는 아버지께서 평생 나누신 사랑의 가르침입다. 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생을 아가면서 사랑의 의미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저희에게 남기신 가르침이 바로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번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주변 친지들에게 이름보다 더 소중한 사랑의 기억을 남기셨군요. 저는 그러한 아버지가 무척 자랑스웠습니다. 예수님과 부처님도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고 떠나셨으니 사랑은 자고로 명백한 진리요, 최고의 가르침일 것입니다.


버지께서도 말년은 가족의 사랑을 온전하게 체험하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지난 8년간 비록 버지의 몸은 중한 잠수종 속에 갇히는 듯한 고통 속에 누워계셨지만, 마음만은 지극정성으로 아버지 곁을 지킨 엄마를 비롯하여 날마다 아버지 운동을 시켜준 호성이와 밤늦게 일을 마치고 찾아와 새벽까지 아버지를 돌보던 현희, 하나님의 은혜를 전도한 재신 언니 국선도의 지극한 사랑을 일깨준 현주, 또 멀리 미국에서 틈틈이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준 큰언니와 막내인 현우까지, 우리 가족 모두의 사랑 속에 계셨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가족의 사랑과 희생이 없이는 결코 그 험난한 인고의 세월을 버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가족의 사랑 속에서 떠나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고, 아버지께서 떠나시면서 다시 저희에게 참사랑을 일깨워 주셔서 더더욱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아버지가 몸소 보여주신 사랑의 가르침으로 다시 태어났기에, 아버지께서 남기신 사랑의 씨앗은 저희들의 가슴에서 무럭무럭 자라 오를 것입니다. 아버지를 본받아 앞으로 더욱 세상 낮은 곳을 향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세 번째 은혜는 아버지 함께 눌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통찰의 시간입니다. 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무나 두려운 존재이기에 죽음을 직시하려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버지께서 처음 쓰러지시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셨을 때, 저는 갑자기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아버지가 두려움에 떨고 계지는 않으실까, 그것이 가장 염려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평소 건강 철저히 관리하기에 죽음 머나먼 이야기로 여겨 이에 대한 준비가 의 없으셨다는 걸 잘 알기 때문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겁이 많은 우리 아버지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드리고, 뇌경색으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할 수 없는 아버지를 돕고 싶었습니다. 제가 부랴부랴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받고, 한동안 죽음과 관련된 책들을 으며 죽음학 강연을 들러 다닌 것은 모두 그런 이유입니다.


아버지, 기억나세요? 아버지께서 국립재활원에 입원해 계실 때 틈이 찾아가 사들이 저술한 임사 체험에 관한 책들과 <티벳 사자의 서>에서 밝힌 사후세계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제 이야기에 집중하시던 아버지의 눈빛이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그 모든 얘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이제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겠지요. 병상에 계신 아버지와 함께 죽음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들은 제가 아버지와 함께 보낸 가장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죽음의 두려움서 벗어나 마음 편히 남은 생을 보내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어 갑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된 꿈을 쫓느라 삶을 낭비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갑니다. 그러니까 웰다잉은 웰에이징이자 웰빙의 다른 말며, 죽음은 결국 삶을 완성시켜 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 덕분에 일찌감치 죽음을 공부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시작한 공부가 결국은 저를 위한 인생 공부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가까이할수록 삶은 지혜로 빛나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문이라는 사실도 통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죽음과 친해지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죽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잘 살아가겠습니다.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




아버지, 보고 싶은 아버지. 아버지를 못 뵌 지도 벌써 홉 주가 지났습니다. 저희는 지난 4월 아버지를 선산에 묻고 서울로 돌아와 매주 수요일마다 재를 올리며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고, 아버지께서 구천을 헤매지 않고 빛을 잘 찾아가도록 마음을 모았습니다. 교도가 아닌 저희들이 굳이 49재라는 형식을 빌려와 엄마 집에서 직접 준비한 음식으로 6번의 재를 올리고 마지막으로 선산에서 막재인 49재까지 올린 은,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이별의 시간을 최대한 유예시서 크게 상심한 엄마를 자주 위로하 이유도 있었습니다. 49재가 끝난 다음 주에도 우리 가족은 다시 모였습니다. 동안 미처 올리지 못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한 자리습니다. 으로도 자주 여 너무나 힘들어하는 마의 절절한 슬픔을 함께 나누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며 실천해 나가는 길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버지를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허망하고 허탈합니다. 살아생전에 좀 더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 잘 챙겨드릴 걸 하는 후회도 막급합니다. 그러나 때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일까요. 살아계신 엄마를 자주 찾아뵙는 걸로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지금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대로 사후 49일을 지나 환생하여 새로운 탄생의 기쁨을 만끽하고 계시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영원히 하늘나라 사랑의 빛 속에 계시겠지요. 그곳은 너무나 환하게 빛나고 사랑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한 많은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벗어던지고 나비처럼 자유롭게 한껏 날아올라 지극히 행복한 시간 속에 머무르시길 바랍니다.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가족들 걱정은 모두 거두시고 내내 평안하세요. 그동안 아버지와 딸로 나눈 이승에서의 인연에 깊이 감사드며, 영원히 사랑합니다.



2021년 6월 23일 수요일

셋째 올림



49재를 마친 아버지의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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