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은 무슨 색깔입니까

스며든 스펀지밥

by true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모습을 흡수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처음 그 재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입시 때였습니다

노래를 봐주던 선생님이 너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금방 흡수하더구나

너는 앞으로 더 잘하게 될 거야


선생님은 알았을까요?

저는 좋은 점만 흡수한 게 아니에요


저는 한지에 스며든 먹 같아요

한지와 먹 중에 무엇이 저 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행복과 슬픔을 모두 흡수합니다

이내 비로소 보랏빛 구슬이 되죠


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인간입니다

밝은 곳에선 나는 어두운 사람

어두운 곳에서 나는 실은 밝으면서 슬픈 척을 하는 위선적인 사람


그래서 저는 밝은 사람도, 어두운 사람도 아닌

그저 혼자인 사람입니다


매력적인 사람이나 내 사람이 되기엔 아쉬워

저는 늘 그렇게 소비되곤 합니다

리어왕에서 읽었던 광대가 저는 가장 애처로웠는데

그 불쌍함이 실은 나를 보는 것과 같아서 그랬나 봅니다


상담사님은 저에게 말하셨죠

당신이 그렇게 남에게 무모할 정도로 다 내어준 것은

사실은 당신이 그걸 받고 싶었던 거 아닐까요


네 저는, 제가 배운 세상은 남에게 무언가를 바라려면 내가 먼저 주어라였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연락도 마음도 다 내가 먼저가 있어야 그다음 돌아오는 법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세상에 등을 지고 끝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 옆에 있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그 바닥에 누군가는 함께 했다는 걸 알면 그래도 그나마 아주 손톱만큼이라도 덜 쓸쓸할 거잖아요


나는 내 생각에, 나는

아니 내가 기억력이라는 게 생긴 다음부터, 나는

분명 누군가는 있었겠다만, 당연히


정작 나는 늘 혼자라고 느꼈기 때문에

홀로 남은 당신을 나라고 생각하고 나도 그래주었다면 좋았을 거 같아서

사실은 그러니까 내가 받고 싶어서 주었습니다


아 저는 왜 이제야 제가 뭔가를 주는 걸 더 좋아하는지 알았습니다


제가 받고 싶었기 때문인가 보네요

마음을요


너는 밝으니까 너는 다 잘할 수 있으니까 좋은 사람이니까 괜찮을 거야


저는 밝지도 잘하지도 좋은 사람도 괜찮지도 않은데 당신은 그걸 어떻게 그리 한 번에

쉽게 나를 버리고


항상 먼저 떠난 쪽은 나였을 거예요

당신은 눈에 보이는 상황만 믿으시나요?

저는 그 속에 숨은 긍지를 믿습니다


티 나지 않게 사라지는 것

나만 슬프다고 엉엉엉

내가 이렇게나 슬프다고 엉엉엉

내가 이렇게나 노력을 했는데 어떻게 세상이

어떻게 네가 엉엉엉


저는 그런 드러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지에 스며든 먹

없애려면 먹에 아예 담가야 하려나

물에 넣어 스며든 반대쪽으로 빼내야 하나

다른 종이를 대신 가져다 대야 하나

그냥 태워버려야 하나

그냥 구겨버릴까

아니 그냥 분쇄하는 게 역시


아무 결정도 하지 못해 이번에도 그냥 벽에 걸어둡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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