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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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ue

뒤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한 번 새겨진 종이와 같습니다.

또는 이미 그린 그림이기에 흰색으로 덮어도 그것은 새종이는 아니지요


새하얗다고 그건 또 꼭 새롭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얼룩덜룩

울퉁불퉁

움푹 패이기 쉬운 덫칠입니다


나이테가 맘에 안 든다고 나무가 나이를 지우거나 테를지울 수는 없겠지요

그 지우려던 흔적조차 옹이가 져 저만의 문양을 남기겠군요


지우고 싶은 구절이 있을까요

지우고 다시 쓰면 인생은 이내 완벽해질까요


지우개를 쥐어 준다면 어느 부분을 지워내겠습니까

나는 그 어떤 순간도 지워내지 않을 것입니다

지우고 나면 당신의 조각도 지워지니까요

차라리 나는 아픔과 수치를 갖고 살아가겠습니다

당신을 한 줌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지우개를 주셔도 아무것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 지운다면 나는 나를 지우렵니다

지우고 지우고 종이가 찢어질 때까지 지워서

내가 있던 것조차 흐릿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고

내가 없어져도 원래 없던 것처럼 아무도 슬퍼하지 않도록 나를 지우고 싶습니다


나를 잊는 모습들은 퍽 슬프기도 하겠지만

나는 꼭 무언갈 지워야 한다면 나를 지울 겁니다


나는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어쩐지 우리가 헤어져있던 시간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것만 같아요


자유로운 그대여

나는 혼자이지만 울다가 웃다가 눈물을 흘린 채로 웃으며 나아갑니다

멈추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남기고 간 생을 이어서 그리고 갈 겁니다

나는 그대를 간직하며

어디가 끝인지 시작이었는지 모를 나이테를 그리며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니다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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