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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May 22. 2020

고등어 머리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대

 어릴 적 주소지 끝이 용천리로 끝나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에 살았다. 바람이 불면 논밭의 벼들이 스스로 씨앗을 뿌리며 말을 거는 듯 생기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소들의 '음매~!' 하는 우렁찬 기압 소리에 깜짝 놀랄 때도 있었다. 왼쪽에는 개울가, 오른쪽은 논밭을 배경 삼아 걷다가 가끔 내 정면에서 뒤뚱뒤뚱 걸어오는 똥을 잔묻힌 돼지와 마주치기도 했다. 예고도 없이 똥내가 코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잠깐씩 오는 졸음도 번쩍 하고 달아나버렸다. 하루는 덩치가 큰 돼지와 만난 적이 있는데 '얘가 나를 먹으면 어쩌지.' 생각하다가 뜀박질 자세를 취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돼지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무심한 듯 내 옆을 스윽하고 지나가버렸다.

 '내가 맛이 없게 생겼나.' 하고 실망한 적도 여러 번이다.

 "내가 맛이 없게 생겼니?"하고 돼지에게 물으려다가 친근함의 표시로 본인에게 묻은 똥을 내게 덜어줄까 봐 이내 포기하고 내 길을 걸은 적도 많다.


 그렇게 볏 소리와 소울음소리, 돼지와 똥내를 만나고 구부러진 골목을 가다 보면 그윽한 고추장 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리 엄마는 서울에서 커리어우먼으로 살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일곱 살 때 이 작은 시골로 함께 내려온 후로 정장을 입은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회사에 나가지 않는 엄마가 낯설었는데, 어느 날부터 배바지를 입고 장독대에 장을 담그고 김치를 담그는 모습이 익숙해졌다. 어떤 환경에서도 웃으며 적응하는 걸 보면 엄마는 천하무적인가 보다. 아무튼 고추장 향이 난다는 것은 '엄마표 고등어 무조림'이 그윽하고 깊게 끓여진다는 걸 의미했다. 자연스레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도 빨라졌다. 나는 다리가 짧아 남들보다 여러 번 걷는 편인데 밖에서 누가 나를 보면 혼자서 경보를 하는 모습과 흡사했을 것이다.


 나는 "지훈아, 밥부터 먹어."라는 엄마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역시 구부러진 골목에서 똥내를 제압할 수 있는 건 '엄마표 고등어 무조림 냄새'밖에 없었다. 어릴 때 나는 편식을 한 편이라 김치와 무가 접시에 담겨 있어도 젓가락이 그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는데 고등어 무조림에 김치와 무가 고등어와 함께 졸여지고, 마늘, 양파, 피망 등의 야채들이 함께 졸여지면 수저로 듬뿍듬뿍 잘 퍼먹었다. 내가 편식을 하는 걸 알고 엄마가 고추장도 더 자주 담그고 고등어 무조림에 내가 안 먹는 것들을 더 많이 첨가를 하셨다. 그 덕분에 지금의 나는 김치와 야채랑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고등어의 머리, 가슴, 꼬리 부분이 큼직큼직한 무와 함께 접시에 올려지고, 거기에 빨간 고추장 국물이 흠뻑 적셔지면 밥을 먹기 전부터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나는 고등어의 가슴 부위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유는 등껍질이 바다처럼 푸르고 그 껍질을 깠을 때 하얀 살이 내 눈을 사로 잡기 때문이다. 맛 또한 담백하고 엄청 고소하다. 내게 고등어조림의 살은 바닷가재를 구워서 껍질을 까고 초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더 담백하게 느껴진다. 가슴 부위의 살을 입안에 넣으면 혀에서 살이 샤르르 녹으면서 엄마가 오랫동안 담근 고추장의 달짝지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입 안을 감쌌다.


 그렇게 고등어의 담백한 살을 음미하다가 큼직하게 썰어진 무를 흰 쌀 밥에 올려놓고 밥과 함께 여러 번 으깬 다음, 고등어 무조림 국물을 밥과 함께 비비면 그 맛도 일품이다. 엄마는 고등어의 비린내를 잡느라 항상 냄비 밑에 여러 개의 큼직한 무를 깔고 고추장을 비롯한 된장 등의 각종 양념에 설탕과 들기름도 듬뿍듬뿍 넣으셨는데, 그 덕분인지 국물에서 들기름의 진득한 맛과 설탕의 단맛이 함께 손을 꽉 잡은 것처럼 조화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국물과 함께 잔뜩 졸여진 물렁물렁한 무는 밥과 비벼 먹으면, 설탕과 고추장을 가득 묻힌 삶은 감자 맛이 났다. 나는 엄마표 고등어 무조림 앞에서 밥 두 공기는 뚝딱 먹었다. 엄마는 내가 밥을 먹을 때마다 항상 고등어의 머리 부분을 내 밥 위에 올려놓고는 했다.

 "고등어 머리를 먹어야 머리가 좋아진대."

  "나 머리 좋아."

 그럴 때마다 나는 반박하듯 엄마에게 나 머리 좋다며, 엄마에게 고등어 머리를 밀어버렸다. 엄마는 당황하듯 "엄마가 너보다 머리가 좋지, 이놈아."라며 내 쪽으로 고등어 머리를 주셨다. 고등어 머리 부위는 가슴보다는 살이 없지만 귀한 부분이라 그런지 살의 맛이 달랐다.

 '음...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 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고등어 머리의 맛은 '머리가 좋아지는 맛'일 거다.


 지금은 시골이 아닌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살고 있다. 나는 엄마표 고등어 무조림을 많이 먹은 덕에 뇌가 자라 잔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간다. 내게 고등어 무조림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고등어는 바다에서 자라지만 내게 고등어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다. 나는 고등어를 볼 때마다 자연스레 바람이 불 때 벼들이 춤추는 모습과 시골길에서 눈 마주친 돼지와 나를 깨웠던 똥내, 그리고 그 똥내를 제압한 엄마표 고추장의 달콤한 냄새가 생각난다. 지금도 어머니가 가끔 고등어 무조림을 해주신다. 요즘은 어른이 됐다고 소주를 같이 곁들인다.

 왜냐면 달고 씁쓸한 게 인생이라 소주로 쓴 맛을 충족시키면 인생을 아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신기하게 서울에서 고등어 무조림을 먹을 때, 시골의 정서가 몸을 감싼다. 어릴 적 벼와 소와 돼지를 보고 자란 꼬마의 조그마한 발걸음이 내 마음을 감싼다. 엄마표 고추장 국물에 단맛이 베어 소주에서도 단맛이 난다.


내가 고등어 가슴 부위만 집중 공략하자 엄마가 또 말씀하신다.

"지훈아, 고등어 머리를 먹어야 머리가 좋아진대."

 엄마는 여전히 내 머리에 관심이 많으시다. 내 머리에 대한 욕망이 선을 넘으신 것 같다.

 엄마는 또 한 번 내게 고등어 머리를 넘기신다.

 "응, 그럼 엄마 먹어."

 내가 엄마에게 고등어조림을 양보한다. 물론, 고등어 머리는 또 한 번 내가 먹었다.

 엄마가 나보다 머리가 좋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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