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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훈 May 24. 2020

간장계란밥 하나로  삶이 채워지는 이 느낌!

 혼자서 자취를 한 지 4년 째다. 허기가 찾아오면 냉장고 문을 여는데, 냉장고 안에 계란이 가득 채워지면 부자가 된 기분이다. 비축해 둔 계란이 없어지면, 계란 한 판을 사 와 차곡차곡 쌓아둔다. 쌓여가는 계란을 보고 있자면 저금통에 동전을 쌓아두는 것만큼 마음이 안심된다. 어릴 적 엄마가 아침에 우리에게 든든한 밥을 먹이고 싶은데, 정신없이 바쁠 때 간편하게 뚝딱 해주신 것이 간장계란밥이다. 추운 겨울 논과 밭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입김이 나는 계절에도 계란밥을 먹으면 배도 금세 따뜻해지고 입가에도 행복감이 돌았다. 계란밥의 맛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달고 고소하다. 그래서 집 문 밖을 나가 부는 입김에도 달콤한 맛이 감돌았다.


 지금 나는 점심에 매 끼니를 간장계란밥으로 해결한다. 이유는 요리를 하는 시간을 최대한 아끼고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읽거나 삶에 도움이 되는 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으면 건강을 해치는데 간장계란밥은 영양도 보충되고 먹고 나서 오랫동안 포만감도 준다. 무엇보다 다른 군것질을 안 하게 되는 게 좋고, 비용 대비 가성비가 아주 뛰어나다. 식비를 엄청 아끼게 되면서 맛은 보장하는 게 간장계란밥이다. 간장계란밥을 하는 절차는 간단하다. 계란 두 개를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터뜨린다. 계란 노른자의 알이 탱하고 흐느적거리지 않을수록 건강한 계란이다. 무엇보다 노른자의 노란색과 흰자의 흰색이 선명할수록 계란의 상태가 좋은 것이다. 맛을 더하기 위해 계란 요리 중에 소금을 솔솔솔 뿌리면 고소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와 밥을 계란에 비비기 전부터 이미 계란과 밥을 비벼버린 것 같은 상상이 든다.


 계란 프라이가 후딱 완성되면 잘 지은 쌀밥에 소복하게 얹어준다. 쌀밥은 너무 질지 않고 밥알 중간중간 여백이 있으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꼬돌또돌한 상태가 좋다. 쌀밥에 계란 프라이를 얹었을 때 그 모양은 매일 서로를 안아주는 연인이 생각날 만큼 그 모양이 아주 이쁘다. 이제 수저에 진간장 두 스푼과 들기름 한 스푼을 듬뿍 넣고 계란과 함께 밥을 비벼준다. 노른자가 툭 터지며 간장, 들기름과 조화를 이루며 밥 알 사이사이를 침투한다. 흰자가 잘 분열되어 밥의 군데군데 배치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면 밥 한 술을 크게 뜬다. 입에 한 입 크게 넣는다. 입안이 달고 고소해진다. 계란 프라이를 했을 때 툭 튀어나온 노른자의 담백함도 목 깊숙이 들어가 금세 배 안으로 퍼진다. 배 안이 노른자의 노란색으로 퍼지는 느낌이다.  계란밥에 잘 읽은 열무김치를 올려 먹어도 안성맞춤이다. 열무김치 특유의 시고 아삭아삭한 맛이 계란밥의 조금 느끼한 맛을 잘 잡아준다.


 계란밥을 먹을 때의 장점은 단순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 푸짐하게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여러 곳에 젓가락질을 하지 않고 수저로 그릇에 있는 계란밥만 쓱쓱 퍼먹으면 그만이다. 계란밥을 먹을 때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한 수저다. 그릇을 빙 둘러 오랫동안 붙어있는 밥알을 싹싹 긁으면 마지막 한 숟갈이 딱 나온다. 계란 특유의 고소한 향이 오래 배어있어서 그런지 그 맛 또한 더 담백하다. 다 먹고 나면, 딱 두 수저만 더 먹고 싶어 지는 맛이다. 밥을 다 먹으면 설거지할 것도 거의 안 생긴다. 설거지를 금세 끝내고 잠시 은은한 조명을 켜고 책을 읽으면 점심시간을 아주 푸짐하게 보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에도 마음이 포근해지는데 뱃속에 있는 계란 덕에 몸도 함께 따뜻해진다.


 매 점심을 간장계란밥으로 먹다 보니 냉장고의 계란 칸이 텅 빌 때가 있다. 하루는 아가 주말에 놀러 오셨는데, 나와 함께 마트를 가자고 하셨다. 마트에 따라나섰는데 아버지가 제일 먼저 계란 한 판을 장바구니에 담으셨다.

 "아들, 일 하느라 잘 못 챙겨 먹는 것 같아서. 안쓰러워서..."

 "응? 아빠 나 어제까지 계란밥 먹었어."

 "그래? 잘했다 우리 아들."

 "나 계란 귀신이야. 아빠."

 "아빠도 너 나이 때 계란 엄청 먹었다. 지금도 먹고."

 아와 함께 장을 보고 냉장고에 계란을 또다시 가득 채웠다. 자주 먹는 계란에 아버지의 정까지 추가되니 삶이 더 살만해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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