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하루를 그리는 일부터

나는 아침에 글을 쓰는 일부터 시작한다.

by 김지훈

고요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느껴지는 평화.

'우와. 이런 과분한 행복이 내게 있다니'라고 생각하고 몸을 살짝 틀면 어김없이 틈을 비집고 내 귓가에 들리는 선명한 알람 소리.

아침인 건 알겠는데, 양 눈꺼풀에 조약돌 두 개가 얹혀있는 듯 매번 아침은 종이인형처럼 가볍게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 종이인형이라고 해서 아침을 가볍게 시작하는 건 아니겠구나.'

아무튼, 내게 아침의 시작은 늘 무겁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새벽 운동을 권해 매년 새해 다짐으로 "그래, 이거야"라고 외치지만, 매일 아침이 되면 '아니야, 어제 새벽까지 일했잖아. 좀 더 숙면을 취하자.'라고 쉽게 타협을 한다. 10분씩 알람을 연장하고, 다시 알람을 끄고 또다시 알람을 연장하는 훈련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뇌가 깨어, 누운 자세에서 허리만 곧게 일어나 핸드폰을 본다.


손바닥만 한 핸드폰으로 삶을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건 여전히 신기한 일이다. 나는 아침이면 핸드폰으로 메인 기사들을 먼저 접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보다가 내 인스타그램을 관리한다. 나는 작가의 일상 계정과 글 계정 두 개를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매일 무엇을 올릴지,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한다. 처음에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하루에 하나씩 올리는 게 기계 같아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매일 아침 무엇을 올릴지 생각하는 자체에 의미가 생겼다. 예를 들어 작가의 일상 계정을 무얼 올릴지 고민하다 내 서재를 쳐다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눈에 들어오면, '오, 저 책 내가 제일 애정하는 책인데, 왜 좋은지 써야겠다'라고 생각한다. '상실은 사랑하는 대상이 있어야 가능하고, 사람들은 사랑하는 대상이 언젠가 사라질 걸 본능적으로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는 존재다'라고 글을 올린다. 그게 '상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지 않을까 하고.


일상을 올리는 일은 하루를 그리는 일과 같다. 잠을 자고 나면 어제와는 다른 하루를 꿈꿀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오늘의 하루는 내 등 뒤에 붙은 어제의 하루가 있기에 가능하고, 오늘의 하루는 내 앞가슴에 붙은 내일의 하루를 생각할 수 있어 가능하다. 그러기에 오늘의 하루의 양 옆에 어제의 하루와 내일의 하루가 손 붙잡고 서 있는 모양새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보디가드를 두 명이나 영입한 효과를 보게 된다.

'나 어제 뭐했지', '나 내일 뭐할 거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올리면, 내 글을 본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글을 쓰고 일을 하고 운동을 하는 등의 일상을 더욱 잘 실행하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빨리 하는 방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이다. 내 꿈이 많은 사람들에게 안부가 되게 해야 사람들이 많이 묻게 되고, 그걸 미룰수록 사람들에게 쪽팔려서라도 내 꿈 앞에 한발 더 돌격할 태세를 갖추게 된다. 꿈은 나의 반복된 하루가 모인 선물 보따리일 것이다. 그래서 나의 하루들이 게으름을 부릴수록 선물 보따리의 끈은 더욱 잘 풀리는 것이다. 선물 보따리 앞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싶다면 나의 반복된 하루들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은 신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므로 나중에 신 앞에 벌벌 떨며 호되게 혼나지 않으려면 인간은 주어진 시간을 아주 잘 써야 한다.


그래서 아침을 잘 보내는 건 중요하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것처럼 아침에 명상, 운동 혹은 글을 쓰는 것을 시도할 수 있다. 매일 아침이면 나는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글에 내 모든 일상을 담는 건 아니지만, 글을 쓰며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과 운동을 하는 모습, 일을 마치고 편하게 라면과 김밥을 먹는 모습을 그린다. 좋은 풍경을 눈에 담을수록 시야는 밝아지고 계절의 변화를 눈에 담을수록 삶은 성숙해진다. 아침에 좋은 글을 쓸수록 내가 그린 하루와 더 복된 하루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내 기대와 다른 하루가 펼쳐지더라도 실망하지 않는다. 내가 그린 하루에서 아주 조금 삐끗한 거라서 그 정도의 하루는 마음에 마데카솔을 조금 찍어 바르면 금방 풀린다.

삶을 너무 멀리서 보면 어렵고 반복된 하루조차 허무해진다. 허무함에 풍덩 빠져 철학도 전공하지 않은 채 무늬만 허무주의자만 되지 않으려면, 내게 주어진 하루를 잘 그려보는 걸 권하고 싶다. 그 시작에 무엇을 하든 하루라는 영화에 내가 주인공이 되고 각색을 잘 해야 하루가 다른 무엇에 의해 쉽게 침해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