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이 주는 편안함
외곽에 위치한 우리 군인아파트 주변에는 마트도 없고, 병원도 없고, 약국도 없고, 코인 노래방도 없고, 카페도 없고, 반찬가게도 없고, 다른 가게나 상점도 없고, 올리브영도 없고, PC방도 없고 교통편이라고는 30분 간격으로 버스 오는 버스 정류장 하나지만... 생필품을 파는 피엑스가 있다!
피엑스에 처음 장 보러 갔던 날
비누를 사러 비누 코너에 갔는데 두세 종류의 비누가 있었고, 내가 쓰는 비누는 없었다.
'아 내가 좋아하는 그 비누 쓰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만족하자는 생각으로 그냥 이 중에서 고르기로 했다.
여기 있는 것도 어느 정도 대중적인 비누들이니까...
향도 맡아보고 설명서도 읽어보고 금액도 보고...
결국 하나를 선택해서 카트에 담았다.
샴푸도 세 종류가 있었는데 그중에 여성 탈모예방 샴푸가 한 개 있었다. 내가 쓰던 건 아니었지만 내가 아는 브랜드고 향도 괜찮아서 그걸로 골랐다.
샤워타월은 동그란 제품 하나랑 길이가 긴 제품 두 개가 있었는데 길이가 긴 제품 중에 화장실에 걸기 더 편한 걸로 구매했다.
우유는 하나 있어서 그걸로 샀다.
로션은 여성용 올인원은 없었지만 남성용 올인원이 하나 있어서 그냥 그걸로 샀다.
필요한 물건들을 둘러보며 하나 둘 카트에 담는데 문득,
판매하는 제품 종류가 많지 않아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존에 쓰던 게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살 때 다양한 제품과 여러 가지 후기 속에서 뭘 사야 할지 고르는 게 참 어렵고 피곤했다. 그래서 누가 대중적인 몇 가지를 선정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피엑스는..! 제품이 적게 들어온다.
판매하는 종류가 적기 때문에 여기저기 비교할 상품이 많지 않았고, 너무 감사하게도 내가 원했던 대로... 대중적인 몇 가지를 선정해서 가져오는 거니까... 너무 편했다...!!!
와! 군인마을에 아무것도 없고 비료냄새만 나서 절망적이었는데 나름 좋은 점도 있잖아?
피엑스는 바쁜 현대인인 나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해 줬다ㅋㅋㅋㅋㅋ
서울로 출퇴근하는 나도 바쁘고 군인 가족들도 독박육아하느라 바쁘고 군인들도 부대에서 일하느라 바쁜데 덕분에 군인 아파트 단지는 혼자 아주 한적하다는 아이러니..
반갑다 비누야!
그리고 며칠 뒤 피엑스에 갔는데 우연히 비누 코너를 지나다가 남편을 막~ 불렀다
"여기 봐 여기 봐 여기 봐!!!!"
진짜 신기하게도 내가 쓰던, 내가 좋아하는 비누가 피엑스에 들어왔다! 그 많은 제품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제품이 딱 들어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진짜 너무 기뻤고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ㅋㅋㅋㅋㅋ
피엑스에 내가 좋아하는 제품이 들어오는 이 짜릿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