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를 처음 만났던 곳은
‘책임분양센터’였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유기견을 데려와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처음 강아지를 키우는 입장에서
지식도 경험도 없이
마음에 상처가 있는 강아지를
잘 돌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미 대학시절부터
강아지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터라
남자친구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고
내 생각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친구가
강아지 분양을 알아볼 때,
펫숍은 아니지만
조금 더 책임감 있게 분양하는 곳을
여러 곳 찾아보고 예약까지 해서
그곳에 가게 된 거였다.
그래서 우리는
‘책임분양센터’라는 곳이
펫숍과는 다른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갔을 때,
유리장 안에 있는 작은 아이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여기 혹시… 펫숍이랑 비슷한 곳인가?’
길 지나가다가
유리창 너머로 봤던
펫숍의 모습이랑 느낌이 겹쳐보였다.
하지만 공간이 깨끗했고,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으며,
강아지를 데려온 농장 이름과 농장 번호와 연락처,
부모견 정보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원한다면 부모견 사진도 보여불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상세히 알려주니까
이곳이 내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펫숍과는
조금 다른 곳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무의식 속에서는
‘펫숍인지 직접 물어볼까?’ 하는 작은 의문이 있었지만,
그보다
‘농장 이름이랑 정보도 적혀 있는데 아니겠지…
아, 강아지가 너무 귀엽다, 데려가고 싶다’
하는 마음이 훨씬 컸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소망이에게 마음을 뺏겨서
소망이를 데려온 거였다.
그렇게 한 1년 쯤 됐을까.
어느 영상을 보다가
‘센터’라는 이름도 펫숍의 한 형태일 수 있고,
이름만 다르게 운영되는 경우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서류에 적혀 있던
소망이가 태어난 농장을 인터넷과 지도에 찾아봤다.
그런데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고
농장 번호를 검색해봐도 없었다.
이상한 마음이 들어
소망이를 데려온 곳에 연락했다.
“강아지는 잘 크고 있습니다.
혹시 서류에 적힌 강아지 농장,
검색이 안 되는데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그들은 농장이 검색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대뜸 소망이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사진을 보내고
“그럼 어떻게 해야 알 수 있나요?”라고 다시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죄송하지만 따로 알려드릴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덧붙인 건
소망이가 예쁘게 잘 컸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아, 내가
뉴스에서 보던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강아지를
데려온 걸 수도 있겠구나.
소망이의 부모견은 어떤 곳에서 살았을까.
서류에 적힌 정보들을
나는 믿고 있었는데,
그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래서 그때서야 알게 됐다.
내가 생각했던 ‘센터’는
결국 펫숍과 다르지 않은 곳일 수도 있었다는 걸.
그 이후로 한동안은 누군가
“강아지 어디서 데려왔어요?”라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강아지를 펫숍에서 데려왔다는 사실에
어딘가 죄를 지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미 소망이는
내 삶 안으로 들어왔고,
나와 함께하고 있다.
다른 강아지 그 누구가 아닌
소망이를 만나 행복하고 고마웠다.
어디서 어떻게 만났든
소망이를 만난 건 나에게 선물이었다.
눈물과 우울 속에 있던 내가
강아지를 위해 병원까지 달리고,
공부하고, 잠을 줄이며
우리 소망이를
행복한 강아지로 만들어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소망이 덕분에 더 많이 웃고,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이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젠 누가 묻더라도 그냥 말한다.
소망이는 펫숍에서 데려왔다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 강아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이다.
나는 소망이가 유기되거나,
아픈 채로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끝까지 책임지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지켜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문득 소망이를 바라보다
그때 센터 직원에게 답장하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배신감과 화가 커서
답장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소망이가 어디에서 왔는지보다
지금 내 곁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1년이 지났지만
답장을 보냈다.
최근 사진을 보내며
“저희 강아지 이렇게 예쁘게 잘 컸어요,
이렇게 예쁜 강아지를 만나서 감사한 마음에 연락드려요”
짧게 인사를 건넸다.
그건 단순한 답장이 아니라,
이 생명을 펫숍에서 데려왔다는 사실까지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이었다.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고,
내 선택이었던 시작까지
내 몫으로 안고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센터 직원에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가짐은
진실을 알게 되면서 분노하고 당황했던
그 1년 전과 확실히 달라져있었다.
이제 나는
어디서 데려왔는지보다
우리 강아지와
어떻게 살아갈지를 더 중요하게 붙잡는다.
주어진 이 만남을
끝까지 책임지고,
소망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다가 갈 수 있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