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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의 마루 Aug 05. 2022

억울해도 화내면 지는 거다

초보시절이기에 가능했던 당돌함

     

임장을 할 때 공인중개사나 손님이나 물건을 보는 마음은 같은 것 같습니다. 시세 대비해서 물건의 상태가 좋으면 이를 알아본 손님이 재빠르게 선택하고, 반대로 금액은 높은데 물건의 상태가 별로라면 쉽게 계약이 성사되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시장의 요구에 맞게 시세대로 자연스럽게 조정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비정상적으로 집값이 오르는 시기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조정이 불가피할 경우 임대인이나 매도인에게 금액조정을 언급하면 반응도 여러 가지입니다. 중개사가 시세를 모른다며 화내는 유형, 본인 상황이 더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유형 등이 있습니다. 합리적인 선에서 조정하는 것이 공인중개사로서 해야 할 일이지만 손님에게 강요하면서까지 조율할 수도 없으니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있던 지역은 아파트, 빌라, 다가구 단독이 혼재되어 있던 곳이었습니다. 아파트처럼 평균화시키기 어려워 시세를 확정시키기 어려운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모든 부동산의 특성이 그렇듯 위치나 면적 건물의 상태가 모두 달라서 물건을 보는 관점도 부동산마다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독특한 곳의 임대가 나왔습니다. 교회 건물 안에 있는 목사님이 사용하던 사택의 전세 의뢰가 온 겁니다. 저는 임장 당시 집의 상태는 좋지만  의뢰하신 분이 원하는 금액으로 계약까지 된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근거를 들어 계약이 가능할 만한 금액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의뢰한 분의 첫마디는 “계약만 하려고 금액을 낮추는 거 아니에요?”였습니다.


황당해서 저는 대충 이야기를 끝내고 그냥 중개를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부동산에 그 의뢰한 분이 원하는 금액으로 물건이 등록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참 동안 집이 계약이 안 되자. 씁쓸하게도 다른 곳에서 제가 처음 제시했던 금액으로 계약하더군요.


간혹 공인중개사를 신뢰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손님을 모시고 간다고 해도 ‘정말 손님이 오는 거냐?’ 내지는 ‘계약할 사람만 보여줘라’, 어쩌다 방문하기로 했던 손님이 못 오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임대인에게 연락하면 ‘일을 왜 그렇게 하냐?’ 등 공인중개사를 아랫사람 대하듯 하대하는 말투로 말씀하는 분도 있죠. 온종일 애써서 여러 번 보였지만 결과는 없는데, 임대인에게 그런 소리까지 듣고 나면 서글퍼질 때도 있습니다. 


하루는 집을 보기로 했던 손님이 못 온다 해서 임대인분에게 전화했습니다. 그러자 임대인이 다짜고짜 

“너, 거짓말하는 거 아냐?”라는 말을 제게 했습니다. 저는 치밀어 오른 화를 주체 못 하고 임대인에게 “사모님 집 중개 안 해요!”라고 저도 맞받아쳤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초보라 생각 없이 소리쳤었지요. 그러자 임대인이 “너, 기다려.” 하더니, 사무실에 와서 소리를 지르고 맡겨 두었던 열쇠를 가져갔습니다. 저도 ‘그 집 중개 안 하면 그만이지!’ 하고 마음속으로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후회가 밀려들었습니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중개사무소가 나쁘게 소문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한편으론 ‘나는 잘 못 한 게 없으니 걱정하지 말자.’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집에 살았던 임차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본인은 계약 만기 전에 먼저 이사해 지방에 있으니 잘 부탁한다고, 저에게 꼭 중개해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임대차계약이라는 것이 계약만기 전에 임차인이 이사 간다고 하면 계약 기간을 못 지킨 것은 임차인이니 임대인은 새로운 임차인이 이사 올 때까지 현 임차인에게 월세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계약 때 작성한 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의 생각에는 사람이 살지도 않는 집의 월세를 내야 하는 임차인 생각에 마음이 약해져서 중개하기로 약속하고 얼마 후 제가 계약했습니다. 잔금일에 현 세입자는 고맙다며 선물을 주고 갔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임대인은 그날 이후 더는 우리 사무소에 오지 않았습니다. 한참이 지나서 임대인은 집을 내놓을 일이 생겨 사무소에 방문했습니다. 그 후로 임대인과의 사이는 좋아졌지만, 임대인과 오해를 풀기까지 시간은 좀 걸렸습니다. 저도 그 일을 계기로 먼저 임대인에게 화내는 일은 자제하려고 합니다.


하나 더 생각나는 일이 있네요. 손님에게 집 정보를 잘못 알려 주려 하는 임대인과의 사이에서 난처해진 일입니다. 어느 날 오후 갑자기 여자분이 들어오시면서 44번 집 1층을 보여 달라고 하셨습니다. 44번 집을 내놓으신 임대인이 마침 집을 구하는 지인에게 본인이 임대 중인 집의 반지하를 1층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임대인은 저더러 그 손님에게 집을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저는 1층으로 알고 현장방문을 하러 가면 손님이 실망할 것이 같아서 집을 보러 가기 전에 일단 층을 정확히 알려드렸습니다. 그러자 손님이 집을 안 보는 게 좋겠다고 난감해하시며 그냥 가셨습니다. 

잠시 후 임대인이 우리사 무소에 급히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이 무슨 지하냐 1층이지!”라고 소리쳤습니다. 분이 안 풀렸는지 몇 번 반복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평소 여러 번 계약했던 집의 임대인분이라 더는 큰소리는 안 내셨지만, 손님에게 집을 보이지도 않고 반지하라 했던 게 많이 서운하셨나 봅니다. 저는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대체로 어르신들은 본인 얘기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말다툼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가서 보면 바로 알게 될 일인데, 당연히 정확히 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제가 임차하려 했던 손님께 좀 더 잘 설명해서 집을 보여드렸더라면 최소한 임대인이 달려오는 일은 막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소소하지만, 개업 초기엔 경험 부족으로 인한 손님과의 마찰이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저 자신도 열정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쭙잖은 정의감에 불타서 남의 일에 나서기도 하고, 내가 생각한 기준에서 벗어나면 임대인에게도 소리를 내고 때로는 저와 결이 안 맞는 임대인이나 중개업소는 과감히 인연을 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코 잘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고 나니 일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쓸데없는 신경을 쓰게 되고, 행여 길을 가다 어색해진 손님과 1:1로 마주칠 때면 눈길을 돌려 목 본 척해야 했습니다. 갑질하는 손님에게도 무조건 을질할 필요는 없습니다. 필요하다면 의사 표현을 해야 하겠죠. 조금은 세련되게 화를 내색하지 않으면서 전달할 내용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공인중개사는 참는 연습도 필요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연습도 필요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도서나, 유튜브에서 인문학, 협상 심리학, 처세 등에 관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요즘도 저는 심리학이나 말의 기술에 관한 책을 읽습니다. 무의식중에 배려 없는 말들이 튀어나올 것을 대비해 스스로 검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특히 생활 심리학은 업무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인간관계의 바탕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만 하면 모든 계약이 원하는 대로 될 줄 알았지만, 그전에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공부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공인중개사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 할때 제일 좋은 방법은 공부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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