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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의 마루 Mar 29. 2023

이사 한 번 해보자!

계약을 막으러 가긴 했는데...

지난주 지인이 갑작스럽게 사무실에 방문했습니다. 현재 거주 중인 주택의 임대인은 임대기한 만료로 전세금 인상을 원했다고 합니다. 이참에 이사할 집을 알아보던 중 제 생각이 났던 모양입니다.

봐둔 집이 맘에 드는데 혹시 짚고 가야 할 것이 있는지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도 있었답니다.


평소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분이어서 저는 보답의 의미로

“그럼, 제가 가서 집을 볼까요?”라고 하니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오전 타지역으로 임장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곳은 북한산이 보이는 공기 좋은 곳의 신축 다가구였습니다.


그러나 중개업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 집은

첫째 역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위치에 있었고,

둘째 신축이었으나 단독주택으로 준공되어 선순위 보증금과 대출금을 고려했을 때, 거주기한 만료 후 이사 나올 때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집은 대충 둘러보고 계약은 하지 말 것을 말씀드리고, 그냥 나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장 할 집 앞에 벌써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인이 임장 후 계약하겠다고 구두상 얘기해 두었기에 중개업소 대표와 임대인과 계약과 관련된 여러 사람이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희를 포함 대략 10명 가까이 되었답니다.


중개업자 입장인 저는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는데 정작 지인은 너무도 원하는 곳이라며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계약을 원했던 사람들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중개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였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임대인이 가장 원했을 것이고요.

건축주분이 손수 문을 열어 주시고, 다소 무리한 가격흥정에도 조율해 주신 것만 보아도 짐작이 되었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전세 사기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다 보니, 신축 건물주의 태도는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사실 전세 사기 뉴스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기 전엔 임차 손님들은 새로운 트랜트 마감재로 깔끔하고 도배도 할 필요도 없는, 새로운 가전제품들이 빌트인 되어 있는 신축 빌라를 선호했습니다. 게다가 전세자금 대출도 잘 나오고, 금리도 낮아서 월세 내는 것보다 대출이자를 감당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전세 물건인 경우는 신축되자마자 계약되는 일이 많았고, 임대인들도 콧대가 높았답니다.     

하지만 전세 사기 사건 뉴스 보도 이후 신축 전세물건은 ‘불안한 부동산’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불안한 부동산’의 임대인은 공공의 적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간과한 부분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악의가 없었던 선한 건축주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노후에 월세 받아 편하게 살고 싶었던 한 어르신 건축주가 불행하게도 안 좋은 시기에 집을 지었고, 생각한 만큼의 임대가 안 되어 임차인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공사는 완료되었지만, 공사대금을 치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자율도 치솟아 금융부담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분이 바로 그날 우리 앞에 계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는 처음 생각과 달리 임대인의 성실한 태도와 자존심 상하는 상황에서도 차분히 자신의 소신을 들려주시는 모습에 지인에게 더 계약을 말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임대인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여로 곳에서 임대인은 모두가 악인인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임대인의 고통을 가중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전세 사기 사건은 모두의 잘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출을 쉽게 많이 해준 금융업체, 갭투자 금을 낮추려고 전세금을 너무 높게 책정한 분양받은 사람, 새집만 선호해서 그냥 선택한 손님, 그리고, 전세가가 타 물건에 비해 높은 줄을 알면서도 먹고 사는 문제가 있다 보니 눈감고 거래를 해준 중개업소 사람들 모두에게 말입니다.     


실제 이사 원하는 때에 못 하는 일이 중개현장에는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집을 알아보다 살던 집이 계약되지 않아 그냥 눌러 살거나, 먼저 이사 갈 집을 계약 후 본인 집이 정리 안 되어 살던 집에 각종 조치(임차권등기명령 등)를 하고 이사를 나오는 사람도 있고, 미리 보증 보험을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거나 정작 보험 가입이 필요한 집은 보험이 안 되는 일도 있으니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중개현장에 있다보면 공인중개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참 적네요. 그래서인지 답답한 상황이 발생하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해결책을 찾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손님들이 맘 편히 이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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