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동에서의 12년, 그리고 사람

스파게티 사장님을 보내며...

by 인생의 마루

12년 전 2013년 9월 30일 현재 중개사무소로 이전했습니다.

방배동으로 처음 이사 올 때는 언제 10년이 지날까 싶었지만, 꽉 채운 12년이 지난 지금

세월의 흐름에 미처 대응이 안 된 저 자신을 발견하곤 경각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긴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해 놓았는지 돌아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제가 이전 오던 해 그 골목엔 다른 업종의 상가들도 비슷한 시기에 개업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이전해 온 상가 중 바로 맞은편 건물 파스타 집 사장님도 저와 비슷한 시기에 개업했었나 봅니다.

제 생각에 워낙 노련하셔서 오랫동안 영업하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파스타 집 사장님은 (반말인데 기분이 나쁘지 않은) 본인 특유의 어투와 친화력으로 한 번 만나도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결사 역할을 맡기 일쑤였습니다.

같은 건물에서 영업 중인 다른 임차인과 임대인 간에 문제가 생기면 중간에서 서로의 의견을 정리해 주기도 하고, 또 그 밖에 골목의 다른 상가에 문제가 생겨도, 그 사장님의 중재로 조용히 정리해 주시곤 했습니다.


본업에도 열정적이어서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성비 좋은 파스타에 감동한 사람들이 SNS에서도 소문을 내주니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진심이 담긴 찐 리뷰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올라오는 것을 보며 사장님의 인성과 음식솜씨를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는구나 싶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년 전쯤의 어느 날 파스타 사장님은 저의 사무소에 오셔서 가게를 정리해 달라고 했습니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손님에게 여러 차례 보이기는 했지만, 계약까지 연결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올해 이른 더위가 시작된 5월 어느 날 사장님은 “우리 가게 계약됐어.”라고 미안한 듯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어떤 업종으로 계약되었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사장님은 분식이 집이 들어온다고 했고요.

어색한 침묵이 시작되기 직전 사장님은 “그동안 아팠어.” 하시면서 올 초 상가를 닫은 열흘 동안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동안 영업을 안 하시길래 해외 여행가신 줄 알고, 내심 부러워했었답니다.)

“쉬시면 뭐 하시려고요?”

“할 거 많아!”

이번에도 더는 묻진 않았습니다,

제가 오지랖을 부릴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짐을 빼고, 상가 유리문에 인사말까지 써 붙인 걸 보니 저도 마음이 좀 허전했답니다.


그 후 3개월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피자 시켜 먹자고 근처 부동산 사장님이 지나는 길에 우리 사무소로 찾아왔습니다.

이제 먹을 수 없다고 하자. 뒤도 안 돌고 가시는데.

왜 내가 서운한 건지…. 새로 오픈한 분식집도 맛있는데….


생각해보니 이 골목에서 이젠 저도 터줏대감이 된 것 같네요. 여기저기 상가들 역사를 다 꿰고 있는 그것을 보니.

사실 저는 직업병처럼 주변 상가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관찰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10년의 변화는 단순히 숫자의 변화만이 아닌, 지나온 시간만큼 변화된 골목의 모습과 숨결,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압축된 시간의 숫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에는 10년이라는 기간의 영업권을 인정해주고 있지만, 사실 10년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실제는 10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다른 업종으로 전환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죠. (물론 잘 돼서 더 좋은 곳으로 확장해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영업자로 10년을 버틴다는 건, 동시에 누군가의 삶을 지켜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특히 공인중개사인 저는 변화의 중심에 있는 방배동에서 어떤 사람들과 새로운 만남을 주선할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앞으로의 시간, 더 많은 사람의 꿈이 새로운 공간에서 행복한 만남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