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변해도, 사람은 남는다.
동네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다 보면,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공동중개를 통해 알게 되어, 안부를 나누는 중개사무소는 있지만, 대부분은 경쟁 관계에 놓여 있어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게는 다행히도 그런 사람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저와 같은 해 이 골목에 문을 연 꽃집 사장님이었습니다.
그분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감이 느껴졌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저 잘해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이 인연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집에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꽃을 자주 사게 되었고, 그 횟수가 늘어갈수록 사장님 주변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어느새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가질 만큼 관계가 깊어졌습니다.
매주 꽃을 사 들고 올 때마다 사장님과 나누는 대화도 길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꽃은 핑계였고, 사장님께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꽃집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관계는 저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꽃집 사장님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귀 기울여 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한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꽃구경은 덤이었고요.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왔습니다.
건물주의 통보로 인해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한동안 고민하는 듯 보이던 사장님은 이내 방향을 정하셨고, 얼마 전 점포를 정리하셨습니다.
당사자인 사장님보다 오히려 제가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쉽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급작스러운 정리에 더 흔들린 쪽은 주변 사람들이었습니다.
같은 해 입주했던 옆 건물 사무소 대표님은 마지막 점심 자리에서 눈시울을 붉히셨고,
이사 가던 날 사장님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린 여행사 대표님,
문을 닫기 전 밥 한번 먹자며 하나둘 챙겨 오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사장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주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이 말하지 않아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충분히 전해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올 한 해, 이 골목의 상가들은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꽃집과는 대조적으로, 잔금일이 되자 새벽에 도망치듯 사라진 음식점 사장님도 있었습니다, 곧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참! 사람 일이란 모를 일입니다.
점포정리 이틀 전까지도 꽃 주문을 받는 모습을 보며 이별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비워진 가게를 마주하니 마음마저 텅 빈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애써 태연한 얼굴로 작별 인사를 건넸었지만, 이후 한동안은 빈 꽃집 앞을 지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꽃집 사장님과의 인연은 단순한 거래 관계를 넘어, 어느새 제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꽃집은 문을 닫았지만, 그분이 남긴 따뜻한 미소와 진심 어린 대화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상가는 늘 변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남는 인연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이 인연이 언젠가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