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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언어는
언어지연의 원인이 아니다

이중언어를 둘러싼 다양한 소문과 진실

해외에서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한 언어치료사로 일하다 보면 종종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굳이 한국어-영어 가정이 아니더라도 내가 있는 캘리포니아라는 지역의 특성상 영어-스페인어, 영어-페르시아어 등 어떻게 보면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가정이 더 많은 건가 싶을 정도다. 언어와 상관없이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아이의 언어발달이 걱정되어 언어치료사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이중언어로 인해 아이의 발달에 악영향을 미쳤을까 걱정을 하시기도 한다. 이중언어에 대한 다양한 소문과 질문들, 현재까지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그 질문들에 대답을 해볼까 한다. 이 글에서는 영어-한국어 이중언어를 기준으로 설명하지만 언어에 상관없이 각각의 언어환경에 맞추어 이해하면 된다.


1. 이중언어환경은 아이들을 혼동시키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보다 인간은, 아기들은 똑똑하다. 영유아시기부터 아이들은 자신들이 듣는 다양한 말소리를 언어에 따라 구분 지을 수 있고, 노출된 각 언어의 체계에 맞는 각각의 음운, 어휘, 그리고 문법적 체계를 발달시킨다. 연구에 따르면 4개월령의 이중언어 아기도 운율이나 음운적으로 비슷한 두 언어(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를 구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한 가지 언어만 사용하는 아동과 이중언어 아동의 어휘발달을 비교해 보면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아이에 비해 느리기는커녕 같거나 오히려 높은 어휘발달 수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 언어에 동시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혼동되기는커녕 주어진 환경에 맞게 각각의 시스템을 발달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2. 이중언어아동은 무조건 단일언어아동보다 말이 느릴 것이다

이중언어아동은 단일언어아동에 비해 각 언어에 대해서 자극을 받는 경험과 빈도가 적기 때문에 속도가 비교적 느리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언어의 어느 면을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영어 이중언어아동의 한국어 어휘집과 한국어만 쓰는 아동의 어휘집을 비교해 보면 이중언어아동의 '한국어'어휘집은 한국어 단일언어아동에 비해 작을 수 있다. 하지만 음운적 지식과 서술력의 측면에서 보면 이중언어아동과 단일언어아동이 서로 비슷한 수행능력을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일언어아동의 발달에도 range of normal variation, 정상발달 범주가 있듯이 이중언어아동 또한 range of normal variation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일언어든 이중언어든, 언어자극의 양과 질에 따라 이 다양성의 범위가 커질 수 있으므로 언어지연과 범주 내의 다양성을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많은 연구들이 증명하듯, 이중언어아동이 단일언어아동에 비해 언어나 학습능력에 관련되어 장애 진단을 받을 확률 높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또한 다양한 연구들에서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언어지연아동과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언어지연아동의 언어능력 수준이 비슷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이중언어를 사용하기에 언어가 '더' 지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동이 언어지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중언어로 인하여 언어지연이 생기거나 심해질까 봐 우려할 필요는 없다.


3. 이중언어아동에게 꼭 각각의 언어를 분리해서 가르쳐야 할 필요는 없다

이중언어교육과 관련하여 많이 알려진 전략은 아마 One-parent, one-language 전략일 것이다. 약 100년 전에 제안되어 많이 알려진 전략이고 이 전략으로 성공적인 이중언어교육을 이뤄낸 경우도 많지만 충분히 연구가 뒷받침된 전략은 아니다. 또한 이 전략이 제안되었던 당시의 맥락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는 이중언어환경 자체가 아이를 혼동시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혼동을 최소화하는, 언어를 분리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생각해 보자. 많은 경우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님 또한 이중언어를 사용하며 code-switching, 즉 두 언어를 섞어서 쓰기 때문에 애초에 한 부모가 한 언어만 담당해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이지 못한 전략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우리는 이제 아이들이 영유아시기부터 두 언어를 각각 구분하여 습득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물론 one-person, one language전략으로 두 언어를 잘 습득했다는 연구도 많지만 동시에 두 언어의 동시에 두 언어를 쓰는 부모 아래서 두 언어를 동시에 잘 습득했다는 연구도 존재한다. 즉, 단일언어이건 이중언어이건 언어자극의 질과 양이 충분하다면 아이는 충분히 잘 습득한다는 것이다. 언어자극의 질과 양을 높이는 데에 구조적인 접근을 하기 위하여 장소, 사람, 시간 등의 환경에 따라 언어를 달리 할지 말지는 가족의 상황에 맞추어 부모와 보호자가 최선의 방향으로 결정하면 된다.


4. 영어를 미리 교육하지 않는다고 해서 학업성적이 뒤처지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학부모님들은 집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다 보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영어를 미리 교육받지 않아서 추후 영어, 수학, 과학 등의 학업성적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시는 경우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kindergarten 아이들의 수학실력을 5학년때의 수학점수 비교해 보았을 때 Kindergarten때의 격차가 5학년때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연구들에서 이중언어환경이 학업에 유의미한 악영향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이 증명되고 있다.


5. 집에서 보여주는 영어교육자료나 영어로 놀아주기가 영어발달을 촉진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의 연구에서도 그랬듯 아무래도 학교를 입학할 때 학교에서 하는 언어가 유창하지 않으니 처음에는 학업에 참여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이의 학교생활을 위해 영어로 언어자극을 주는 것은 어떨까? 이 질문은 언어자극의 질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자. 아마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부분은 미디어를 통한 언어교육일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은 상호작용이 없는 미디어를 통해서는 음운습득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부모가 제공하는 영어환경은 어떨까. 몇몇 연구에 따르면 아이들의 영어노출빈도보다 원어민 화자로부터 제공된 영어노출비율이 아이들의 영어능력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화자보다 영어가 모국어인 화자로부터 온 영어자극이 영어발달을 촉진했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이를 언어자극의 '질'측면에서 해석했는데 영어가 모국어인 화자가 더 다양한 단어나 주제를 활용했고, 또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부모가 '영어'에는 유창했으나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쓰게 되는(장난감 이름, 동물 소리 등) 영어단어나 표현이 부족했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즉, 화자가 원어민이어서가 아니라, 원어민인 화자가 제공하는 높은 질과 양의 언어자극이 언어발달을 촉진한 것이다.


6. 언어는 수단일 뿐이다- 아이와 나의 소통창구인 모국어 사용을 주저하지 말자

제스처로, 수화로, 몸짓으로, 눈빛으로 소통하듯 영어도 한국어도 결국은 소통의 수단일 뿐이다. 내가 아이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소통의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자. 당연하게도 부모의 모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아이들이 더욱 긍정적인 가족관계와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학업성취도 등의 결과도 더 긍정적이다. 부모 또한 본인의 모국어로 소통할 때 다양한 인지적 자극을 더욱 잘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원어민 부모에 비해 "영어가 유창한" 부모가 놀이를 통해 제공하는 언어자극의 양과 질이 부족했던 예를 떠올려보자.) 또한 문해력 등 상위의 언어기술은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능력이 전파되기도 한다. 즉, 아동이 A언어에 강한 문해력을 보인다면 B언어에서도 높은 문해력을 보이거나, 곧 습득할 확률이 높다.


7. 이중언어의 장점이 많지만, 일부러 이중언어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다양한 연구들이 언어적, 인지적, 사회적 측면에서의 이중언어사용의 장점을 증명하고 있다. 이중언어사용자가 메타인지능력, 발산적 사고력, 어휘습득력, 인지조절능력 등이 단일언어사용자에 비해 뛰어나며 평균 치매발병시기가 단일언어사용자에 비해 늦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연구를 위해 다른 변인들이 통제된 경우가 많으므로 매일의 일상에서 이득을 볼만큼 현저히 능력이 뛰어날지는 모를 일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발달을 위해 일부러 이중언어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8. 결국은 언어자극의 양과 질이다.

이중언어건 단일언어건, 언어발달에서 중요한 점은 결국 좋은 언어자극이다. 좋은 언어자극은 양과 질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연구들이 꾸준히 증명하듯 아이들은 더 많이 듣는 언어를 더 빨리 발달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양뿐만이 아니다.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단어, 문법, 그리고 다양한 상황 및 자연스러운 탈문맥화된 환경(예를 들자면 정해진 시간 동안 보는 낱말카드대신 대화나 경험, 이야기 속에서 단어를 듣는 것)에서의 언어자극, 또한 같은 다양한 사람들의 언어자극 듣는 것이 아이의 언어발달을 촉진한다고 한다. 즉, 다양한 종류, 다양한 대화 상대, 그리고 다양한 상황 등으로 언어자극이 제공되는 방식을 다양화하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상대방과의 언어 경험, 많은 양의 언어경험은 아이가 주도하는 언어경험의 기회 또한 늘려준다. 종종 티비를 통한 언어교육에 대해 부모님들이 문의를 주시는데 연구에 따르면 티비를 통한 언어노출은 유의미하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시각발달, 소근육 발달 등 다른 발달영역에 또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WHO는 영유아의 미디어노출을 지양할 것을 권하고 있다.) 언어발달측면에서 보자면 미디어는 주로 일방향적인 소통과 제한된 종류의 언어자극이기에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제공되는 언어자극보다 질이 낮고 깨어있는 시간 내내 제공되는 언어자극에 비해 양도 적기 때문에 일상과 놀이시간에서 제공하는 언어자극보다 질과 양이 낮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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