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라도 더 사는 것과 하루만이라도 내 의지대로 사는 것 그 사이 어딘가
병동에서 근무를 하는 병원 스태프들은 자연스럽게 환자의 삶의 저물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언어치료사 또한 마찬가지인데 특히 삼킴을 담당하며 영양과 수분 유지를 위한 경구식사 혹은 마지막 삶의 질을 위한 결정에 도움을 드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치매환자분들은 치매 말기가 되면 움직임이 부족하고 대사가 저하되면서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먹는 과정을 점점 잊으시고 식욕 또한 부진하다. 따라서 직접 식사하시는 것이 어려우시며 식사를 도와드려도 삼키는 것을 잊고 음식물을 내내 물고 있거나 아예 입을 꾹 닫고 고개를 저으며 식사를 거부하시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삼킴을 "안"하시다 보니 삼킴 근육이 약해지고 협응이 어려워지며 삼킴을 "못"하시게 되기도 하여 점점 드실 수 있는 음식물의 종류가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모든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이때 가족들은 위루관이나 콧줄 등을 통해서라도 영양을 유지하고자 하시지만 안타깝게도 치매환자에게 위루관과 같은 장기적인 tube feeding은 환자의 영양상태를 향상하거나, 기대 수명을 향상하거나, 폐렴의 위험을 낮추거나, 환자의 기능을 향상한다는 연구근거가 없다. 이미 대사속도가 느리고 에너지소모도 적으며 식사에 대한 의지가 없기 없는 상태에서 위루관으로 영양을 공급해도 그 영양이 제대로 흡수되고 사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병은 미국에서 9만여 명, 전 세계적으로 천만여 명이 앓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60세 이상 인구 10만 명 당 165.9명은 파킨슨 병을 앓고 있다. 주로 말운동과 음성의 어려움, 진전(tremor), 보행 이상 등 운동장애와 인지 저하뿐만 아니라 함께 삼킴 장애도 보이는데 질병 자체가 퇴행성이다 보니 삼킴치료 또한 어느 정도의 기능향상도 목표로 하지만 주로 보상책략 활용과 기능의 유지를 위한 치료에 집중한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경우 감각 저하, 소화기능 둔화, 그리고 빠른 근육의 피로를 동반하기 때문에 감각입력을 향상하고 조금씩 자주 먹는 등의 보상책략을 활용하기도 하고 현재 가진 근육의 기능의 향상과 유지를 위해 삼킴 운동도 병행한다. (단, 식사 직전에는 집중적인 삼킴 운동이나 다른 근육의 피로를 일으키는 활동을 자제하여 식사시간 중 기도 보호를 도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삼킴운동이나 책략들의 효과가 없고 식사로 영양의 유지가 어려워지는 순간이 오면 가족과의 상의 하에 대체영양과 경구영양 중 선택을 하셔야 하는 순간이 온다.
앞서 말한 환자분들 외에도 말기 암환자 등 생의 마지막을 앞둔 환자분들 또한 통증, 미각의 변화, 무기력, 인지 저하 등 다양한 이유로 삼킴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삼킴의 안전이 중요한 이유는 이미 약해지신 환자분들이 흡인성 폐렴으로 인하여 상태가 악화되시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하루라도 더 사는 것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루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자 하시는 분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오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식사를 맛있게 즐기고 싶으신 분들도 계신다. 그 순간에 의료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지기능이 있으신 분들은 그래서 당신의 마지막을 직접 결정하실 수 있다.
한 환자분이 계셨다. 종교활동, 북클럽, 봉사활동 등 사별 후 혼자 사시면서 남의 도움 없이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시며 지내시던 분인데 문득 숨이 좀 가쁜 것 같아 병원에 오셨다가 산소포화도가 낮아 입원하셨다. 삼킴 평가 의뢰를 받아서 병상에 갔을 때 본인의 증상과 이력들을 직접 다 설명해 주셨는데 병상 삼킴 평가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경과와 추가평가 필요유무를 지켜보기로 했는데 다음날 출근해 보니 밤새 호흡이 조금 더 악화되어 일반 nasal canula에서 high-flow nasal canula로 바뀌신 상태였다. 그러고 나서 의사에게 연락을 받았다. 환자분께서 본인이 갈 날이 온 것 같으니 가족들이 병원에 당도할 때까지만 버틸 수 있는 치료를 받고 인사를 하고 나면 추후에는 심폐소생술과 삽관 등의 치료를 거부하신다고 뜻을 전하셨다고 했다. 또한 본인에게 먹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에 폐렴의 위험성을 감수하고 일반식을 선택하셨다고 했다. 환자분은 그날 오후 가족분들과 인사를 하고 다음날 하늘로 가셨다.
이 환자분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원하는 하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그런 행운을 갖고 있지는 않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픈 순간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하루라도 더 보고 싶은 가족들과 이미 의료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지기능을 상실하신 환자분들 사이에서 윤리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대화를 해야 할 때이다.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일이기에 의료진의 말이 더 아프다. 나는 보낼 수 없는 가족을 의료진이 치료하지는 않고 포기하려고 하는 것 같아 괘씸하다. 하지만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내가 가진 자격증의 무게로 환자에게 가장 옳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의사, 간호사, 치료사 등 모든 병원 스태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가 보호자에게 알려야 하는 말을 전해야 한다.
또 다른 환자분이 계셨다. 뇌졸중, 만성 폐쇄성 폐질환, 만성 심부전, 몸 곳곳의 궤양과 수차례의 요로감염 등 병원에서 자주 보는 이력은 웬만하면 다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지남력이 0이시고 간간히 그르렁거리는 발성이나 통증을 느끼실 때 "No!"라며 소리 지르시는 것 외에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미 의학적으로 더 이상 유의미한 치료는 없는 상태였으나 가족인 보호자께서는 환자분이 100살까지 살고자 하셨으니 어떻게든 100살까지 살게 하라며 담당의사의 계속된 Palliative care meeting 권고를 거부하셨다. 의뢰를 받아 환자분을 보러 갔을 때 환자분은 입술에 닿는 얼음이나 음식물의 감촉, 숟가락에 대한 인지 등도 어려우셨으며 슬프지만 당연하게도 구강식사는 어려우신 상태였다. 보호자께서는 환자분이 안전하게 식사를 하실 능력이 있으니 미음이라도 괜찮으니 식사를 제공하고 일반식을 하실 수 있을 때까지 치료를 하라고 화를 내셨다. 언어치료사로서 식사를 권고할 수는 없으나 환자분의 삶의 질에 식사가 중요하다면 폐렴위험과 상관없이 경구영양을 선택하실 수 있음을 안내드렸지만 보호자님은 치료사에게 환자분이 안전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말, 아니면 예후가 괜찮으니 일시적 혹은 영구적인 tube feeding을 권한다는 말을 들어야 의사에게 XYZ를 요구할 수 있다고 하시며 내가 담당의에게 환자가 안전하게 식사할 수 있다고 말하라며 막무가내셨다. 마음이 아픈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역할은 끝까지 정확한 평가 결과와 예후 등을 보호자와 나누고 보호자께 환자분에 대한 치료의 목적을 담당 의료팀과 상의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리는 것이었다. 이 슬픈 도돌이표는 완화의료의사가 환자의 차트기록을 속속들이 찾아서 환자가 수년 전 제출하신 Advanced Directives(사전의료의향서)를 발견해 내며 끝이 났다. 우리는 환자분의 의사를 따라 더 이상의 치료를 중단했다.
여러 경험들을 통해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의 마지막 모습을 고민했고 그 결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기 전에 내가 의료적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하여 한국에 방문했을 때 사전의료의향서를 보건소에 가서 제출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매우 당황스러웠다. 내가 고민한 많은 사안에 비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에서 이미 Advanced Directive를 사인한 동료나 그 결정을 돕는 Palliative care 의사 선생님들께 조언받은 대로 삽관의 단계, 비구강 영양의 방법과 기간, CPR의 기간, 유사시 나의 의료적 결정을 맡길 사람 등 다양한 고민들을 하고 갔는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한정적이라고 느꼈다. 나의 삶의 마지막에 콧줄로 몇 년씩 삶이 아닌 삶을 유지하기 싫다는 의향조차 기록할 수 없는 사전의료의향서라니.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2월에 관련 법이 제정되어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었다고 하니 채 10년도 안된 제도이다. 이제 걸음마를 떼고 시작하는 단계이니만큼 아직 발전해 나갈 여지가 많다. (많은 아시아 국가의 경우 문화상 가족과 자녀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사전연명의료 또한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결정이 아닌 나보다 가족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것 또한 아직은 연명의료결정의 폭이 좁은 이유라고도 들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글을 쓰는 날짜를 기준으로 약 270만 명이 사전의료의향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의지로 마지막을 결정하는 문화가 결정의 폭 또한 더 넓힐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하루를 날아내는 만큼 나의 마지막도 평화롭고 존엄하기를 바라는 모두가 한 번쯤은 연명의료에 대해 오롯이 나를 위한 고민을 해보셨으면 한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https://lst.go.kr/main/mai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