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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Apr 29. 2024

내 인성에 둘째는 무슨

둘째 기도를 했다 말았다

5살 된 우리 딸은 씻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참 이상하지. 조리원에서부터 지금까지 씻는 것으로 늘 애를 먹였었다. 각종 장난감부터 아용 입욕제까지 씻는 즐거움을 위한 도구들을 이것저것 준비해 봐도 썩 나아지지를 않았다.


그러니 매일 저녁 딸과 갈등이 생긴다. 간단한 손 씻기 조차 기쁨으로 하지 않는 아이의 온몸을 씻기고 양치까지 시키는 것은 하루일과 중 가장 고된 순서이다.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분명 좋아하는 활동을 충분히 하도록 하고, 약속한 순서와 시간이 되어 씻으러 가는 건데도 딸은 짜증부터 냈다.


양치 말고 씻는 것부터 한다고!!!!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네뷸라이저로 호흡기 치료를 한 뒤라서 입 안을 바로 헹구어야 했다. 충분히 양치질을 하거나 입을 헹구고 닦지 않으면 구내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치가 싫으면 나중에 하고 일단은 입을 헹구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니 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참 웃기지. 5살 짜리도 악에 받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를 수 있다는 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갈등상황이 또 반복됐다. 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자 몸을 아주 세게 긁는다. 오늘은 어찌나 세게 긁었는지 연약한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피까지 맺혔다. 그걸 보는 나도 마음이 무너지고 화를 참지 못했다.


상황은 종료되었는데, 오늘은 좀 달랐다. 평소 같으면 화를 냈더라도 상황을 마무리하고 아이를 보듬어주고 끝을 내는데, 오늘은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잘못된 생각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다 내 탓 같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었다. 내가 잘못 기른 탓.




럴 때면 감히 둘째를 소망했던 마음이 사라진다. 내 주제에 무슨 둘째야. 내 인성으론 첫째도 과분하다. 나 같은 엄마 밑에서 크는 딸이 불쌍서 또 눈물이 났다.


딸은 엄마 속도 모르고 형제 타령이다. 혼자라서 싫단다. 유치원에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운지 자기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단다. 그러면 다른 엄마가 낳은 언니를 데려와야 한다고 했더니 그렇게라도 언니가 생겼으면 좋겠단다.


*너무 귀한 일이라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딸아, 미안해, 엄마는 릇이 안 될 것 같아.


올해가 시작되며 기도제목으로 둘째에 대한 소망을 올렸었다. 교회에서 순모임을 할 때도 슬쩍 둘째 고민을 풀어놓으며 기도를 부탁했었다.


에휴. 오늘 같은 날이면 나는 마음속으로 여태껏 올린 기도들을 회수하고 만다. 받을 만한 자에게 주시기 때문인지 여태 임신이 잘 안 되기도 하거니와 내 감히 무슨 둘째인가 싶어서. 


낳아야 끝난다는 지긋지긋한 둘째 고민. 즉에 안 낳을 결심을 했다는 남편이 이제 보니 위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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