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원차량 시간이 40분이나 늦어진다니요
"그거 들었어요? 차 시간 바뀐대요."
아침 등원길에 만난 은호엄마가 말했다. 은호엄마와 나는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등원버스에 아이를 가장 마지막으로 올려 보내는 사이다. 늦었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재촉하다가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은호엄마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오늘은 은호엄마가 늦었다. 나 아니면 은호엄마가 오면 버스는 바로 출발하기 마련이라 평소에는 대화를 나눌 새가 거의 없다.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아이에게 안녕, 엄마들에게 안녕히 가세요, 하면 우리의 아침은 마무리가 된다. 그런데 오늘따라 주하아빠가 늦는 바람에 은호엄마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래요? 몇 시로요?"
"9시 20분이래요."
"네? 9시 20분이요? 어,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 유치원 바꿔야 돼요!"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9시 20분이라니. 회사에 9시까지 출근하는 처지에 아파트로 9시 20분에 차가 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미 작년에도 나는 많이 양보했다. 원래는 8시까지 출근하고 17시에 퇴근하던 내가 유치원 등원차량 시간에 맞춰 근무시간을 한 시간씩 뒤로 미뤘다. 아침이 길어질 줄 알고 기대했는데 왜인지 저녁만 짧아졌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유치원에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나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당황한 은호엄마가 발을 살짝 뒤로 뺐다. 하원 담당인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유치원에 가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했다. 혹시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면 바뀔 여지가 있지 않겠느냐고.
아주 높은 확률로 이미 늦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월요일 아침부터 절망에 빠져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대책 없이 희망을 품기로 했다. 남편 말대로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가 된 것이 아니니까.
'까똑'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간 남편이 사진을 하나 보냈다. 퇴근길에 시린 손을 녹여가며 사진을 열어보니 3월부터 운행되는 등원차량 시간표다. 우리 아파트는 없고 인근 아파트 단지가 잔뜩 적혀있다. 시간은 거의 8시 30분 무렵이다. 지금보다 좀 더 서두르면 아이를 등원차량에 태워 보내고 빠듯하게나마 9시까지 출근할 수는 있어 보였다.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온 남편이 한 시간 늦게 퇴근한 나와 엇비슷하게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서둘러 저녁을 만들었다. 오늘의 메뉴는 토마토달걀볶음밥. 남편이 방울토마토와 계란을 손질하는 동안 나는 파를 손질하기로 했다. 냉장고에 시들어가는 파가 있었다. 죽어가는 파를 꺼내 살릴 수 있는 부분만 잘라내 송송 썰었다. 파의 알싸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괜스레 눈이 아렸다
"좀 더 일찍 우리 사정을 어필했어야 하나 봐."
"작년에 어필했으니까 기억할 줄 알았지."
"40분 이상 시간을 바꾸는데 괜찮은지 묻지도 않다니."
"그러게. 어련히 알아서 비슷하게 짤 거라고 생각했어."
유치원에 보낼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왠지 한숨이 났다. 그건 단지내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했던 지난 3년간 숱하게 했던 일이었다. 해봤던 일이니까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남편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아파트 단지에서 아이를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하는 삶의 편안함에 나는 깊이 취해있었다.
"그건 그렇고, 봄방학 때는 19일, 21일, 26일, 27일, 28일은 등원이 불가능하대."
"지난번에 들은 것에서 바뀐 건 없네."
남편은 병원 조리실에서 일하시는 어머님의 스케줄표를 들여다보며 어머님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살폈다. 일하시다가 모처럼 쉬는 날에 손녀딸을 봐달라며 부탁드리기가 죄송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SRT를 타고 2시간 정도를 와야 하는 친정 엄마한테는 이미 운을 띄워놓긴 했지만, 수요일에는 엄마도 일정이 있어서 어머님의 도움이 필요했다.
"엄마 20일 날 휴무다. 장모님 못 오시는 날이 언제랬지?"
"19일."
"25일도 쉰다."
"그날은 유치원 보내는 날이야."
"하나도 안 맞네."
파기름을 낼 만큼의 파만 남편에게 넘겨주고, 남은 파들을 지퍼백에 쓸어 담는데 평소에는 외면했던 생각이 불쑥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무튼 맞벌이는 힘들어.'
대출이자를 몇 백씩 내면서도 맛있는 것을 마음껏 사 먹으며 맞벌이가 얼마나 축복인지를 한껏 뿌듯해하던 어깨가 오늘은 축 늘어져 주방에 우두커니 서 있다. 원래 다 가질 수는 없다. 어떻게든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