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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May 12. 2024

아버님을 안을까 말까

딸과 며느리의 차이

어버이날을 맞아 모처럼 시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해드렸다. 그동안의 어버이날에는 시할머님 이하 모든 가족들이 식당에 모이곤 했었다. 그래서 어버이날은 설과 추석 사이에 있는 또 다른 명절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다른 가족들은 빼고 딱 우리 직 가족들만 모였다. 아마도 시할머님과 자녀분들이 이번에 어버이날을 맞아 여행을 가시니 식사대접은 생략한 모양이다.




그래서 평소보다 단출하게 모였다. 이런 조합은 결혼 7년 차인데도 자주 없던 일이었다. 랜만에 식당에서 버님과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했다. 평소에 많은 사람들 틈에 있을 때는 말씀을 아끼시거나 피곤해하시는 아버님이 오늘따라 유난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놓으신다.


예전에 가르쳤던 똑똑했던 제자 이야기, 건강관리 이야기, 어느 병원이 잘한다는 이야기, 나의 오른쪽 어깨 지방종 이야기, 아가씨 어깨가 아픈 이야기, 남편의 수술일정 이야기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가 내가 요즘 알레르기 때문인지 갑자기 눈두덩이가 부풀곤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늘도 회사에서 눈꺼풀이 부풀어 올랐는데 알레르기 약을 집에 두고 와서 부은 눈으로 일했다고 말씀드렸다. 아버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있어봐래이. 내 갖다 주꾸마.


아버님도 같은 증상이 있으신지 최근에 효과가 좋고 값이 싼 약으로 20통을 구비해 놓으셨다며 그중 한 통을 나에게 내미신다. 어떤 약이든 다 똑같은 성분이라 비싼 것을 살 필요가 없다며 이걸로 사 먹으라며 보여주시다가, 두고 먹으라며 약을 내미신다.


그러고 보니 아까 아버님 그릇에 덜어드렸던 전복도 나에게 내미셨었다. 어 생일이었던 우리 며느리 많이 먹으라며.  모르는 며느리는 감사하다며 제 그릇에 전복을 받아서 먹기 좋게 잘라 맛있게 먹어버렸더랬다.


가끔은 무뚝뚝한 아버님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아버님의 사랑이 느껴졌다. 몇 개 없는 전복 중 하나를 며느리 먹으라며 챙겨주시고 알레르기로 힘들다는 말에 바로 나가서 약을 갖다 주시는 마음. 아버님만의 애정표현.




식사 자리가 마무리되고 밖으로 나왔는데 살가운 아가씨가 아버님을 꼭 껴안았다. 딸은 아빠를 안는 것에 망설임이 다. 나도 정아버지에게 그듯이. 


그 옆에는 내가 서 있었다. 나도 왠지 아버님을 꼭 안아 드려야 할 것 같은 기류가 흘렀다. 내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아버님께서 먼저 어색한 기류를 깨셨다. 아버님은 가장 멀리에 있던 사위에게 악수를 청하셨고, 순서대로 며느리인 나,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만 또 가장 어색한 사이일지도 모르는) 아들과의 악수로 인사가 마무리되었다.


악수회를 마치시고 돌아서는 아버님의 뒷모습을 보니 그냥 안아드릴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순간은 왔을 때 잡아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눈앞에 다가오면 실천이 잘 안 된다.


결혼식 때 식순에 따라 안아드린 것 외에는 그동안 한 번도 안아드리지 못했이 생각났다. 벌써 7년이나 되었는데 말이다.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하다고 아버님을 탓할 게 아니었다. 경상도보다 더 무뚝뚝한 경기도 출신 며느리가 바로 나였다.


다음에도 또 이런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좀 더 용기를 내봐야겠다고 다짐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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