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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Aug 14. 2023

당신을 향한 빛은 이미 출발했어요

캄캄한 오늘 당신이 반드시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


별에 대한 나의 최초의 기억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나는 10살이 채 안 된 어린아이였다. 우리 가족은 며칠에 걸쳐 진행되는 <새벽기도 총진군>에 참석하기 위해 교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까만 밤하늘에는 항상 별이 떠 있었다. 다른 별자리는 안 보여도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은 항상 또렷하게 빛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난 그때가 참 좋았다. 새벽 공기도, 엄마 아빠 동생과 별자리를 찾으며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도, 까만 밤하늘에 퍼지는 하얀 입김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별을 볼 새도 없이 책상에 코를 박고 공부했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제 막 직장인이 되었을 때, 다시 하늘에 무수히 깔린 별을 만났다. 시골에서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는 친구의 집에서 교회 청년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며 오랜만에 올려다 본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있었다. 나는 옥상에 마련해 둔 평상에 누워 말없이 하늘을 응시했다. 같은 곳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별은 숨어있다가도 제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 속에도 별은 있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구나. 마음속에 고요한 울림이 퍼져나가는 밤이었다.


몇 년 후, 졸업생 선배의 신분으로 열 살 어린 고등학교 후배들의 봉사활동에 동참해 몽골에 갔다. 나흘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마지막 밤은 테를지 국립공원 안에 있는 게르에서 보냈다. 테를지의 밤하늘을 기대하며 앞선 일정들을 소화했는데, 아쉽게도 마지막 밤에도 비가 내렸다. 몽골에는 반가운 손님이 오면 비가 내린다는 속설이 있다. 여행객을 달래주기 위한 위로의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는 곳마다 그 이야기를 들었다. 비가 오니 별빛 카페트가 펼쳐진 밤하늘을 기대할 수는 없겠고, 고단함이 밀려와 잠이 쏟아져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photo by 이성일


백색소음처럼 게르를 감싸주던 빗소리가 잦아들어서인가,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눈이 번쩍 떠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한밤중이었다. 누운 채로 문을 살짝 열고 하늘을 쳐다보자마자 얕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열고 게르 밖으로 나왔다. 비 개인 하늘은 맑았고, 까만 하늘에는 쏟아질 듯 촘촘하게 보석같은 별이 깔려있었다. 모두가 잠든 밤, 광활한 대지 위에 홀로 서서 온 몸으로 별빛을 받고 있으니 거대한 스노우볼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광야에서는 사방이 별이었다. 별빛이 온몸을 휘감았던 그 날의 황홀한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늘, 다시 별을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낮에도 별은 있다. 다만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도시의 밤하늘에도 별은 무수히 많다. 나에게 와닿지 못했을 뿐이다. 아직 내게 오고 있는 별빛도 많다. 몇 만 광년 떨어진 곳에서 빛은 이미 출발했다. 내가 그 빛을 만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작년에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소설 <진주의 달>을 두고 김연수 작가가 쓴 작가노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미 결말을 아는 사람처럼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바로 희망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혹시 인생의 어두운 밤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테를지의 별빛처럼 그를 감싸 위로해주고 싶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다. 결말을 아는 사람처럼 희망을 갖자고. 당신을 향한 빛은 이미 출발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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