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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Nov 15. 2023

990원에 시계를 새로 샀다

내가 하루종일 시계를 차기 시작한 것은 7월부터다. 새벽기상을 마음먹었는데, 딸과 함께 자는 터라 큰 소리로 울려대는 알람을 쓸 수는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인데, 딸까지 일어나 버린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불편하게 자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이 스마트워치를 차고 잠들기로 했다. 이른 새벽에 나를 무사히 깨워줄 수 있는 것은 손목에 조용히 진동을 주는 스마트워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심심하면 심박수 측정하고 낮에는 걸음수를 세어주던 녀석이 나와 24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요 녀석. 써보니 물건이다. 내가 몇 시에 잠들고 일어났는지, 자다가 언제 일어났었는지, 얼마나 깊고 얕게 자는지를 어떻게 알고 꼼꼼히 기록해 준다.

어제 오랜만에 잠이 안와서 뒤척인 흔적이 모두 담겨있다


적응이 되고 나니 시계를 차고 잠이 드는 것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다. 충전도 빠른 데다 한번 충전하면 며칠 동안 충전할 필요도 없다. 내가 사용하는 샤오미 미밴드는 가격대비 성능이 너무 좋아 '대륙의 실수'라고 불린다. (실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나는 매일 수혜를 입는다.


사랑하는 나의 시계를 24시간 내도록 차고 다녔더니, 산뜻하던 주황색 시곗줄이 어느새 거무튀튀해졌다. 열정을 다해 살았던 나의 여름과 참 잘 어울리는 색이었다. 여름햇살처럼 쨍했고, 내 열정만큼 강렬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짧았던 가을을 지나 손 끝이 시려오는 겨울의 문턱에서 나는 시계를 돌봐주기로 했다. 성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옷을 갈아입혀주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옷이 정말 쌌다. 하나에 990원. 색상별로 여섯 개를 전부 다 사도 배송비를 포함해서 8,440원 밖에 안 들었다. 배송은 또 어찌나 빠른지. 일요일 저녁에 주문한 제품이 화요일에 벌써 도착했다.

시계 여섯 개가 새로 생겼다. 단돈 8,440원에.

남편은 검은색이 좋다기에 검은색으로 시곗줄을 갈아주고, 옆에서 딸도 두색을 집어 들고 손목을 내밀기에 공갈시계이지만 정성껏 손목에 둘러주었다.


순식간에 시계 여섯 개가 새로 생겼다. 그것도 단돈 8,440원에. 나만의 간단한 월동 준비가 끝이 났다. 기분 좋은 날이었다.

올 겨울,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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