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해서'는 사실 농담이고요. 차를 샀습니다. 그것도 무려 외제차를요.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차를 사고 싶어 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 타는 차도 참 멀쩡한데 남편은 늘 더 크고 좋은 차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시승도 참 많이 다녔습니다. 주로 연비가 좋다는 차에 관심을 두고, 국산차와 외제차를 가리지 않고 시승을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렉서스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는데, 일본 불매운동과 시기가 맞물려 속으로만 품고 있는 소망이 되기도 했지요.
그러다 몇 년 전, 남편이 테슬라 모델 Y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뜬금없는 말에 남편을 말렸습니다. 최대한 빚을 내서 집을 샀는데 또 갑자기 차를 산다고? 멀쩡한 차를 놔두고? 차는 집과 달라서 받자마자 감가상각이 되기에,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사실 남편의 차량 구매욕구에 대해서는 몇 년 간 가까이에서 지켜보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취미가 '차량 구매 고민하기'라고 놀렸을까요.남편은 차종을 가리지 않고 구매를 고민했습니다.
하도 오랫동안 고민을 한 터라 몇몇 모델은 이미 타 본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부지런히 고민하고 정보를 얻었습니다. 유튜버들의 후기 영상을 시청하고, 해당 차량 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수집하고, 중고차 매물이 나오면 마음속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더 고민하더니, 남편은 돌고 돌아 다시 저에게 '테슬라 모델 Y'가 어떤지물어왔습니다.지난번 구매시기를 놓쳐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몇 번 아쉬운 소리를 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의 취미생활을 그만 끝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사고 싶으면 사라는 저의 말에 남편은 계약금 300만 원을 시원하게 긁더군요.
새로운 차를계약하고 나니10년 넘게 잘 타고 다니던 싼타페가 갑자기'노후 경유차'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차해 있을 때 내뿜는 연기는 전보다 훨씬 매캐하게 느껴지고, 엔진이 가동하는 소리는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거기다 딸이 순수한 눈으로 보탠 한마디가 압권이었습니다.
"아빠 차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나!"
그렇게 몇 달을 기다려드디어 오늘 차가 도착했습니다. 오천만 원이 넘는 돈을 결제하고도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차가 눈앞에 나타나자 드디어 차를 새로 샀다는 현실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차를 데려다주는 현장
꼼꼼한 검수는커녕 흥분된 마음으로 차를 한 바퀴 둘러보고, 차량 인수 서류에 휘리릭 서명을 하고는 미리 준비한 번호판을 붙였습니다. 길거리에서의 현판식을 마치고 조심히 차를 몰아 아파트 주차장으로 데리고 오니 비로소 마음이 좀 진정되더군요.
남편은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캠핑을 할 꿈에 부풀어 있습니다. 테슬라가 차박을 하기에 좋은 차라고 하더군요. 시동을 꺼도 전기로 냉난방이 가능해 생활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합니다. 시큰둥하던 저도 막상 차를 보니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트렁크를 내가 원하는 대로 꾸며보고 싶어 졌으니까요.
남편은 '자율주행' 기능 때문에 테슬라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선택을 존중했을 뿐입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우리는 친환경 전기차를 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구에 좋은 일을 한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일본차를 마음에 품었지만 미국에서 개발하고 중국에서 제조한 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새 식구가 들어왔으니, 당분간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새 차와 함께 오래도록 무탈하게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