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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Dec 21. 2023

눈을 폈다. 비로소 눈을 떴다.

내 시력의 역사 (4)

날이 밝았다. 어느 틈에 잠이 들긴 했던 모양이다. 잠에서 깨 눈을 떴다. 악.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오는 통증은 여전했다. 왼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 눈은 다행히 뜰 수 있었다. 왼쪽 눈을 일부러 손으로 눌러 닫고 오른쪽 눈을 뜨자 앞이 보였다.


핸드폰을 찾아들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네, 하늘안과의원입니다."

"제가 어제 라식수술을 했는데요."


통증이 너무 심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나의 상황을 담담히 전했다.


"내원하실 수 있으세요?"

"언제요?"

"가능한 한 빨리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행히 에 아빠가 계셨다. 이번에도 혼자 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아니, 애초부터 그 먼 길을 혼자서 오가로 한 것은 '무리한 용기'다. 아무리 간단하다고 해도, 수술 '수술'.


"아빠, 지금 당장 병원에 오래."

"그래? 그럼 어서 준비하고 출발하자."


나는 왜 '부탁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이렇게 문만 열면 부모님이 계시는데, 왜 나 스스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좌석에 기대고 누워 아빠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렸다. 어제 깊은 절망에 빠져 있었던 것보다는 한결 나았다. 어떤 방법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샘솟았다. 내 눈에 들어간 것이 무엇이든 빼내 줄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면 바로 잡을 방법이 있을 것이다.


"김딘도님."


내 이름이 호명되고 어제 누웠던 수술대에 누웠다. 어제와 같은 임무가 주어졌다. 눈을 크게 뜰 것. 절대 감지 말 것. 시선을 고정할 것.


별다른 설명 없이 수술도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보다 더 시리고, 직접적인 느낌이었다. 아는 고통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마취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프지만 않을 뿐 느낌이 살아있었다.


잘 모르지만 어제와는 수술도구가 달랐다. 오늘은 차갑고 딱딱한 도구를 이용해 각막을 슥슥 문지르며 펴는 느낌이 났다. 문지르는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해서 눈을 펴자, 통증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막이 접혀있었네요."


어제 라식수술을 하기 전에 수술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우선 각막을 얇게 벗겨내고 그 안의 수정체를 조금 깎아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각막을 덮을 것이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각막이 아무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혹시 눈을 비비시거나, 세게 건드리셨을까요?"


아무리 각막세포가 금방 재생다고 해도, 한 번 자른 것이 완전히 붙기까지는 조심했어야 했다. 그런데 못난 나의 손버릇 때문에 각막이 접혀버린 것이다. 불현듯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가 무심코 손으로 눈을 비볐던 것이 생각났다. 아, 그거구나. 무심결에 나온 의 손동작 하나 때문에 잘려있던 각막이 들려버린 것이다.


커다란 이물질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내 각막이었다. 그게 접혀서 눈에 들어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아팠을까. 오랫동안 방치했다면 그대로 붙어버렸겠지. 날이 밝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오길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부탁할 용기'를 내서 편하게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제처럼 약국에 가서 약을 받고,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날은 편안히 먹고, 편안히 잤다. 그리고 절대 손으로 눈을 만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눈에 무리가 갈 것 같으면 하지 않았다. 내 몸을 소중히 여기고, 회복에 집중했다. 다시는 어제와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시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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