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식수술로 다시 태어난 눈을 뜨고, 강남의 인파 속에서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다행히 평일 낮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벌써 흐릿한 눈에 적응을 한 것인지, 아니면 눈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인지 점점 살만해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버스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뿌옇게 보이는 번호를 여러 번 확인하고,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얼른 차지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씩씩하게 혼자 수술을 마쳤지만 사실 많이 긴장했었나 보다. 자리에 앉자마자 긴장이 풀렸다. 추운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따뜻한 버스 안으로 들어오니 온몸이 노곤하게 풀리며 나른해졌다. 잠이 몰려왔지만, 혹시라도 잠이 들면 내릴 곳을 지나칠 수도 있으니 잠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하나의 감각이 닫히면 다른 감각이 깨어난다고 했던가.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니 눈 감고도 알 수 있는 익숙한 코스를 지나 드디어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얼른 하차벨을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이 열리는 타이밍에 잘 맞춰 일어나 내리지 않으면 기사님들은 문을 닫고 출발해 버린다. 중학생 때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어왔다. 나는 말하자면 프로 뚜벅이였다.
자연스럽게 눈을 한번 비비고 버스 뒷문 앞에 있는 봉을 잡고 섰다. 버스는 정거를 하기 위해 살짝 앞으로 쏠렸다가 내릴 곳에 위치를 잘 맞춰 멈췄고 나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아, 드디어 집이다. 무사히 버스에서 내렸으니 이제 10분만 더 걸어가면 집이 나온다.
아. 그런데 눈이 이상했다. 한쪽 눈에서 자꾸만 눈물이 나고, 그쪽은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때마침차가운 겨울바람이 눈을 공격했다. 모래알이라도 들어간 것일까? 그러나 단순히 '이물감'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아팠다. 분명 뭐가 크게 들어간 것 같았다.
눈물을 철철 흘리며 우스꽝스러운 윙크를 하고 집으로 계속 걸었다. 어쩔 수 없었다. 누가 날 돕겠는가. 엄마는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독서논술 선생님이셨고, 아빠는 자동차 영업으로 바쁘셨다. 동생은 간호대학을 진학해 집을 떠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나 혼자 이겨내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 집으로 가는 길은 수십 년간 걸었던 익숙한 길이었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데는 한쪽 눈이면 충분했다.
겨우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 눈인사로 집에 도착했음을 알리고 손을 씻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버렸다. 눈이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왼쪽 눈은 거의 뜰 수도 없는 상태였다. 너무 무서웠다.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한 타임 수업을 마친 엄마가 안부를 물어왔다. 나는 눈을 감고 침대에 누운 채 나의 상태를 전했다.
"나 왼쪽 눈이 너무 아파. 눈을 못 뜨겠어."
"아이고, 어떡해."
눈을 감고 있었지만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걱정이 잔뜩 묻은 얼굴이 보였다. 그러나 걱정이 되어도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음 타임 수업을 위해 엄마가 방을 나갔다. 다시 어둠 속에 홀로 남은 나.
나는 그날 저녁을 먹을 수도, 씻을 수도 없었다.눈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 왼쪽에서만 느껴지던 통증이 이제는 오른쪽에서도 느껴지는것 같았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는 것뿐이었다. 절망적이었다. 나는 끝없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침대에 누워 앞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 선교 겸 어학연수로 뉴질랜드에 있을 때, 인도인이었던 홈스테이 주인아주머니가 나더러 안마를 잘한다며 '혹시 앞이 안 보이게 되더라도 밥은 먹고살 수 있겠다.'며 농담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진짜 원 헌드레드 퍼센트 농담이었는데. 지금은 그 농담이 현실이 될 리가 없다고 원 헌드레드 퍼센트 장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눈을 감으니 다른 감각이 예민해졌다. 나는 소리로 해가 지고 밤이 왔음을 알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하루의 흐름이 느껴졌다. 엄마와 아빠가 나를 살피러 들어왔다. 나는 내일 병원에 다시 전화를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대로 그냥 자야겠으니 안녕히 주무시라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문이 닫혔다. 나는 다시 어둠 속에 홀로 남았다.
그날 밤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밤새도록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른다. 제발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아직 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고.모태신앙으로 태어났으면서 아직 성경통독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음을 회개했다. 급기야는 이 눈만 다시 뜨게 해 주신다면 성경통독부터 하겠다고 하나님과 딜을 하기까지 했다.
불편해도 그냥 안경 끼고 살 걸. 왜 그 타이밍에 전단지는 받아서, 또 기가 막히게 평소답지 않은 추진력이 발휘되기까지 해서, 앞이 다시 보일지말지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내일 다시 해가 뜨고 병원에 가면, 나는 다시 앞을 볼 수 있을까?
유치하지만 간절한 기도가 밤새도록 이어졌다. 천장을 바라보며 똑바로 누운 자세로, 나는 걱정과 간청에 파묻힌 밤을 '감은 눈'으로 지새웠다.라식수술 첫날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