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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도 Apr 24. 2024

어떻게 늙을 것인가

모르고 살았던 것들에 관하여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출근길에 나다. 바삐 걷지 않아도 사무실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켤 때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완벽한 직주근접의 삶. 살이를 벗어나 지방에서 살고 있지만, 아니 어쩌면 그 덕분에, 이토록 한 아침을 살고 있다.

 

봄이 되면 회사 앞 골목에서 달콤한 딸기향이 풍긴다. 아침 일찍부터 딸기를 다듬는 손길이 있어서다. 이 계절에 나는 주소대신 이곳을 내 마음대로 '딸기골목'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 계절에 풍기는 딸기 냄새가 너무 좋다.


냄새를 못 이겨 작업장 안을 들여다보니 꽤 이른 시간인데도 미 작업을 마친 딸기가 수북이 쌓여있다. 밖에서 봤을 때와 달리 자리가 꽤 많다. 열 자리 남짓한 작업장은 이른 아침에도 벌써 반 이상 차 있다. 최소 일흔은 넘어 보이는 손길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말없이 묵묵히 딸기를 손질한다.


저 딸기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아마 손질된 딸기가 필요한 곳으로 가게 되리라. 디저트에 올라가거나 딸기청을 만드는데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보는 풍경에 호기심이 생겨 슬쩍 말을 걸며 고 싶기도 했지만, 어릴 적 콜라 리필도 한 번 못해본 쑥스러움이 아직 남아있는지 한마디 묻지 못하고 작업철이 끝나버렸다.


딸기골목을 알게 된 후로 비슷한 종류의 작업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간판도 상호도 없는 작업장에는 계절을 따라 딸기, 마늘, 밤 따위를 다듬는 손길들이 오간다. 전부 모르고 살았던 것들이다. 작업장을 지날 때면 나는 갖가지 생각을 한다. 내가 소비하는 것들에는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담겨있는가 시작된 생각은 어느새 '나는 어떤 할머니로 늙고 싶은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곤 한다.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요즘에 가끔 되뇌는 말이다. 죽음을 기억하라.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너무 얽매이지 말고, 너무 애쓰지도 말고, 그렇다고 삶에 태만하지도 말고, 그저 사랑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나누며, 주어진 삶을 풍성하게 누려야겠다 다짐한다.


어제는 가서 없고, 내일은 오지 않아 아직 없으니, 오직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 오직 유일한 에 최선을 다해야지. 그렇게 소중히 가꿔온 들이 모인 것이 내 인생이니까. 


생각해 보니 그러면 되겠다. 삶을 진하게 사랑한 할머니. 때론 인생 참 잔인하다 싶게 힘든 순간에도 결코 삶을 내던지지는 않은 할머니. 끝까지 잘 살아낸 할머니. 죽음을 기억하며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 사랑했던 할머니.  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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