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a! 시간이 멈춘 도시 쿠바!
쿠바의 의료
Hola! 시간이 멈춘 도시 쿠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한다. 반대로 기대를 하지 않으면 실망 할 거리도 없기 때문에 감정 소모를 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 쿠바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나라였다.
오히려 멕시코 칸쿤을 기대하고 처음 남미 여행의 출발지로 선택했는데 그곳에서 전 세계 신혼 부부를 다 만난 것 같아 나 홀로 외로움 게이지만 차오른 채 빨리 다른 나라로 떠나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여행자들의 추천을 받아 계획에도 없었던 쿠바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인생 여행지가 뜻 밖의 행운으로 시작되었다.
쿠바는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추운 나라에 속해 있는 캐나다나 유럽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휴식처로 인기가 많은 나라이다.
정식 명칭으로는 쿠바 공화국인데 ‘공화국’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쿠바공산당이 통솔하는 일당체제이며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체계를 가지고 있다.
쿠바라는 도시를 알아보는 와중에 나에게 가장 큰 흥미를 안겨주었던 것이 있었다.
쿠바는 전 세계적으로 ‘의료’에서는 선진국 중 선진국으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실제로 북한에서도 많은 의대생이나 의사들이 수련을 받으러 온다고도 한다.
자칫 귀한 진주의 나라를 옆에 두고 멕시코에서 콜롬비아로 넘어갈 뻔 했다. 위기가 기회로 될 수 있듯이 좋은 타이밍으로 멕시코와 콜롬비아 사이에 위치 해 있는 쿠바로 향할 수 있었다.
멕시코 칸쿤에서 쿠바까지는 약 1시간정도 비행 시간이 걸린다. 쿠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나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두 발로 공산당 사회주의 국가로 들어가다니!’ ‘혹시라도 무슨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그곳은 인터넷도 안된다는데 길 잃고 헤매면 어떻게 하지?’ 모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번 모험은 뭔가 ‘무식한 모험’이 되는 것 같아 걱정이 먼저 앞섰다.
나라에서는 쿠바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보험 증서’를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 장기 여행자들이라면 해외 여행자보험을 들어 놓기는 하는데 꼭 영문으로 된 여행자 보험이 있어야한다. 실제로 여행자 보험이 없어서 입국 하지 못하고 되돌아간 여행자도 있다고 한다.
다행히 여행자 보험을 들어놨던 나는 무난하게 입국 사무소를 통과했다. 그동안 수 많은 공항들을 맞이 했지만 쿠바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은 분위기 하나로 나를 압도했다. 공화국이라 그런지 의자부터 벽, 천장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덮혀 있었고 그곳에 계속 서 있자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빨리 이곳을 나가야 겠다는 생각밖에 안했다.
공항에서 수도 아바나로 갈 수 있는 방법은 택시밖에 없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나오면 형형색색 올드카가 한 줄로 나란히 서있고 그 옆에는 기사들이 나를 보며 하나같이 손을 흔들며 “아미고 아미고!” 이러면서 다가오기 시작한다. ‘아미고’는 스페인어로 ‘친구’라는 뜻이다. 처음 보는데 친구라뇨.. 친화력 하나는 세상 ‘갑’이다. 올드카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나는 ‘택시는 역시 옐로우지!’ 하며 당당히 노란색 택시에 올라 아바나로 향했다.
답답한 마음에 택시 뒷 좌석에 앉자마자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며 크게 숨을 들이 마셨다. 그 순간 ‘쿠바의 냄새’가 내 코 속을 뚫어 머리에 떠다니며 진동을 했다. 좋았냐고? No! 절대 아니다!
정열과 낭만의 도시라 들었는데 올드카들이 즐비하는 공간 속에 그들이 내 뿜는 연기의 정열이 너무 과했다. 매연냄새가 너무 심해서 처음에는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고 이러다가 지쳐 쓰러져 눈을 뜨면 병원 응급실에 누워 있을 수 도 있겠구나 싶었다.
수도 아바나에 들어왔다.
아바나 한 가운데에 있자니 마치 내가 과거 1900년도 어느 여름날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았다. 도로와 차도의 구분이 잘 안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가는 차들은 다들 올드했다.
길을 걷다보면 길 한복판에서 차를 수리하는 모습의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의 차들이 올드 하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동차를 정비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
건물들은 낡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모습이고 스페인의 400년 식민지였던 곳 만큼 유럽풍 양식의 건물들도 많이 보였다.
아바나의 골목을 걷다보면 건물의 외벽들이 형형색색 으로 이어있어 마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부라노섬에 온 듯한 느낌을 물씬 받을 수 있다.
쿠바의 외벽은 하얀 도화지이고 그 위는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듯 순수한 쿠바 사람들의 마음과 스페인과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외벽으로 표현하는 듯 했다.
공화국이라는 단어만 듣고 걱정의 짐을 질질 끌고 왔던 이곳 쿠바.
나의 걱정은 길거리 어느 곳이나 가면 들리는 재즈 음악과 그 재즈 리듬에 몸을 맡겨 추는 살사의 자유로움과 함께 이미 날라가 버린지 오래였다.
단 하나의 걱정이 있다면 인터넷도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간판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이곳에서 ‘내가 보고싶은 병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였다.
하지만 이미 쿠바에 오면서 부터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무작정 쿠바로 날라온 그때부터 지금까지 역시 마찬가지로 내 두 다리를 믿어보기로 했다.
지도가 없다면 내 두 다리로 길을 개척하면 그만이었다. 길을 잃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여행도 내 소중한 여행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콜럼버스가 쿠바를 찾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나도 콜럼버스로 빙의되어 이 육지의 섬을 정복해보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러닝화 끈을 야무지게 묶은 뒤 박차게 쿠바의 문을 열었다.
시간이 멈춘 도시. 이렇게 낡은 도시 속에서 병원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밤 사이 천둥 번개가 쉴틈 없이 내리치고 어느 집 닭인지 눈치없이 우는 바람에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이 떠졌다. 숙소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하늘은 비온 뒤 맑음. 하지만 밤새 제우스 신이 노하시기로 했던지 건물들이 하나같이 번개에 맞은 듯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처음 마주하는 쿠바의 아침 모습이었다.
쿠바의 두째날 나의 일정은 명확하다. 쿠바의 병원을 찾기! 숙소에서 거실을 나가보니 이미 주인장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 제대로 뛰지 못할까봐 정중히 아침을 거르고 운동을 하고 오겠다고 하며 일찍 문 밖으로 나섰다.
다시 어제의 아쉬웠던 쿠바를 만난 나는 단 하루 만에 이곳의 냄새에 취해 있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보이는 올드카들이 너무 좋았고 엉덩이로 뿡뿡 뿜어내는 매연의 연기조차 매력적으로 취해버렸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쓰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같이 비유를 하자면 검은 연기는 싫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곳이다.
쿠바를 달리면서 올드카와 체게바라의 모습은 지겹도록 보이는데 도대체 병원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골목골목을 누비고, 왔던 길을 다시 만나기도 하면서 자유분방한 러닝이 슬슬 지쳐갈 때 쯤 눈 앞에는 말레꼰 해변이 펼쳐졌다. 평소 러닝을 좋아했던 나는 말레꼰 해변을 오른쪽에 두고 저 곡선 너머를 목표삼아 1km를 5분 페이스로 맞춰 다리기 시작했다.
카리브 해의 파도가 방파제에 거치게 부딪치면서 가끔 짠내 나는 물이 튀기도 했지만 이 카리브해를 바라보면서 글을 완성시켰던 헤밍웨이를 떠올리면서 또 그 순간에 취해 그 분위기에 집중하면서 달렸다.
10km 정도를 달렸을까 저 멀리 20층 이상으로 혼자 우뚝 서있는 건물이 보였다.
그쪽을 목표로 잡고 앞까지 갔는데 처음으로 병원이라는 간판을 보았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데 1등 이라고 적혀있는 종이를 보는 듯 했다.
이해할 수 없겠지만 쿠바를 의료의 선진국이라 믿고 왔는데 보이는 것은 낡은 건물들 뿐이니 눈뜨고 코 베인 격이라 생각했었다.
이렇게 쿠바에서 나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병원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 지방법원 건물을 보는 것 같이 외관은 갈색 벽돌로 둘러 쌓여 있었는데 창문들이 너무나 촘촘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정문 입구를 보면 HOSPITAL CLINICO QUIRURGICO HERMANOS AMEIJEIRAS 라고 흰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정확하게 써 있었다.
수도 아바나에는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진료를 보는 병원이 있다.
씨로 가르시아 중앙병원(Clinica Central Cira Garcia), 에르마노스 아메이헤이라스병원(Hospial Hermanos Ameijeiras) 이렇게 2개의 병원이 가장 큰 병원이고 간단한 진료는 호텔 안에도 메디컬 클리닉이 구비되어 있다.
먼저 에르마노스 아메이헤이라스병원을 외국인 전용병원 이라고 해서 좋은 서비스와 시설을 기대하고 방문 했는데 이 병원의 첫인상은 너무 강렬했다. 이번에는 너무 기대를 해서 실망감이 커버렸다. 문을 열었는데 알코올과 여러 약품들이 섞인 냄새들이 너무 독했다. 이 냄새를 통해 어렷을 적 단골로 다녔던 소아과가 생각났다. 병원 시설도 딱 그정도였다. 형광등이 켜져 있지만 어두운건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나무로 된 의자와 나무 ‘ㄱ’자 나무 스테이션에 앉아있는 접수원. 처음 인상이 너무 어두웠던 분위기라서 이 병원을 생각하면 어두운 느낌밖에 표현 할 방법이 없다.
그래도 입원병동을 보고 싶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올라갔다.
어둡다. 전기를 아끼는 건지 고장이 난건지 너무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했던 병동이었고 비어있는 병실도 많았다. 특히나 남미에서는 동양인을 마주치기가 힘들어서 내가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곤 한다.
이곳에서도 내가 복도에 보이자마자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마치 내가 길을 잃어서 갈 곳을 잃어버린 것 처럼 보였는지 조금만 움직이고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다니면 “도와줄까요?”, “어디 찾으세요?” 과한 친절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무작정 1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와 버렸다.
실망스럽다.
각 나라의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그 나라의 경제와 복지 그리고 의료 수준을 어느정도 생각하고 방문을 하기 때문에 편견 없이 다가가고자 했던게 나의 첫 번째 마음가짐 이었다.
쿠바는 방문하기 전부터 너무 남아메리카에서는 의료 1등이고 여러 나라에서 의료를 받기위해 방문하는 나라인데 왜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병원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걸까?
병원을 나오면서 가장 먼저 생각이 든 단어가 실망 뿐이었다.
이곳 쿠바라는 나라를 올때는 아무 기대가 없었기에 실망할 것도 없었던 것은 분명한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쿠바라는 나라 보다도 쿠바의 의료에 많은 기대를 했었기에 이렇게 실망감이 쓰나미처럼 내 가슴 깊이 밀려 왔나보다.
마라톤 42.195km를 완주한 두 다리 만큼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다.
쿠바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쿠바에서 운영하는 ETECSA 통신사에 아침 일찍 줄을 서서 인터넷 카드를 따로 구매해야 하고 그 카드에 나와있는 일련 번호를 와이파이에 등록해서 1시간, 2시간 단위로 허가를 받고 사용해야 했다.
그렇다고 모든 공간에서 인터넷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공원이나 특정한 구역에서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날 저녁 이곳 의료의 뿌리가 너무 궁금해서 숙소 앞 공원으로 나가 인터넷으로 쿠바의 의료 역사를 검색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쿠바의 의료
오랜만에 마주한 인터넷 세상 속에서 보여주고 있는 쿠바를 마주하는 순간 지난밤 새벽내내 울리던 번개가 지금 내 머리에 직격탄으로 내리 꽂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시간을 거슬러 저 옛날 쿠바를 알아보았더니 쿠바는 남아메리카에서 최초로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도입한 나라였다.
1969년 쿠바 사람들 대부분이 사탕수수를 경작했는데, 당시 총리였던 피델 카스트로는 경작으로 번 돈의 대부분을 군용비에 투자했으며 그 외의 남은 돈으로는 무상교육과 의료에 투자했다. 한 나라의 총리가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의료정책은 피델의 생명을 연장할 의술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배움을 익히는 것에는 아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이 쿠바 의료의 뿌리가 되어 꾸준히 그 정신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무상의료의 핵심은 1980년대에 확립된 가정주치의 제도다. 의사 한명과 간호사 한명이 하나의 팀이 되어 약 1500명 정도의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많은 환자들 중에 중증도가 심한 환자들은 다시 상급 종합병원으로 이송되어 집중적인 의료를 받게 된다.
쿠바의 가정주치의 제도는 코로나19 대응에도 큰 역할을 했다.
쿠바의 의사와 간호사들은 매일 아침 그들이 담당하는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직접 방문해서 확인했고 코로나19가 지역적으로 퍼지지 않도록 완벽한 대응을 했다.
세계보건기구 WHO에서 Pandemic(전 세계적인 질병)을 선언 했을 때 쿠바는 이미 기본에 충실하며 전통적인 의료 문화를 이어와 자국의 국민들을 지켰고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 했을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 할 때도 남아메리카에서 주도적으로 의료를 자원해서 타국으로 의료봉사를 나갔다.
하지만 내가 궁긍적으로 궁금했던 것은 외관상 보이는 의료는 마치 전쟁 간호를 치르는 듯 한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과연 어떤 의료를 행하고 있으며 어떻게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지 였다. 진실과 마주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뒷 목을 잡고 내가 들었던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쿠바에서 의사의 월급이 20만원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관광객들을 상대로 택시를 하는 기사들이 의사, 간호사 보다도 월급을 더 많이 벌고 있다.
의료분야에서는 우리나라의 압구정에 성형외과가 즐비하는 것과 같이 의료관광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또한 베네수엘라와 에너지협력협정을 맺으면서 베네수엘라가 공급하는 석유의 대금 일부를 베네수엘라의 빈민 국민들의 의료에 사용함으로써 이곳에 의료진을 보내고 있다.
호텔 안에도 메디컬 서비스가 있긴 한데 종합병원 처럼 자세히 진료를 봐주지 않고 기본적인 진단과 약 처방정도를 해주는 정도이다.
물론 가격대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싸다. 여행자 중에 배드버그에 물려서 한 줄로 이어지는 두드러기 양상의 피부염이 생겨서 호텔안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왔는데 진단으로만 4만원, 약 값으로만 10만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과연 쿠바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이 나라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정답은 길거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내가 아는 나라 중 삶의 질은 단연 1등이다.
걸을마다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 재즈 노래와 그 리듬에 맞춰 살사를 추는 사람들, 헤밍웨이가 사랑한 술 다이퀴리(Daiquiri)을 마시러 Bar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라이브로 들려오는 노래들이 이 나라사람들의 하루 그 중에서도 그 순간 순간들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더 없이 행복해 보였다.
20만원을 벌든 200만원을 벌든 2000만원을 벌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조국 쿠바에서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구어 나가고 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하루를 즐거움으로 보낼 수 있는 것. 부유했던 적은 없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적은 없는 것. 대부분의 쿠바 사람들이 하루를 빠듯하게 살아나가지만 전반적인 영양 및 건강상태가 남아메리카 어느 곳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치에 속해 있으며 교육적인 면에서도 문맹률은 세계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쿠바인들을 생각하면 정말 친절하다. 그들도 사회적인 안락함이나 삶의 질을 추구하긴 하지만 사회적 지위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외국인을 보면 호기심에 여긴 눈으로 보고 따뜻하게 먼저 다가와 준다. 올라! 아미고!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는데 오히려 나 혼자 경계를 했던 것이다.
내가 처음 쿠바에 들어올 때 너무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쿠바를 여행하면서도 가슴 한편으로는 의심과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메리카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 쿠바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웠다.
일상에 치이기 바쁜 우리와는 다르게 일상이 여유이고 여유 안에 낭만이 물들어있다.
이제는 쿠바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