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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Sep 12. 2019

밤의 도시 둔황 01

당신에게 가는 길, 실크로드 01


이곳이 둔황임을 실감하게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모래바람입니다. 사방이 온통 사막에서 불어오는 뿌연 모래바람입니다. 마치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야만 할 것 같은, 불안함과 음산함으로 인해 예기치 못할 일을 만날 듯도 합니다. 시안에서부터 시작된 감기 기운은 먼지 알레르기와 만나 지끈지끈한 두통으로 저를 밀어 넣더니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겨우 한나절 머물렀을 뿐인데도 둔황으로 온 저를 후회하게 합니다. 저는 이곳에 왜 왔을까요?      


호텔을 피난처 삼아 한낮의 뜨거운 햇살과 먼지 냄새를 피해 봅니다. 둔황 호텔. 제가 묵고 있는 곳입니다. 궁궐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화려한 외관입니다. 체크인을 할 때, 따뜻한 물수건과 함께 향긋한 쑥 냄새가 스민 차를 대접하던, 첫인상이 좋은 호텔입니다. 짐을 가득 실은 낙타 무리가 느릿느릿 사막의 모래바람을 가르며 걸어가고, 흰옷을 입은 상인들이 뒤를 따를 것만 같은 도시를 기대하던 제가 터무니없었음을 생각하며 허탈하게 웃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웅장한 규모와 달리 문제가 많은 내부는 이곳이 사막의 도시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샤워 도중에 불이 나간 탓에 어둠 속에서 간신이 비눗물을 씻어내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려야 했는데, 천장 등이 들어오지 않더니, 급기야 방 안의 전등불도 켜지지 않습니다.      



사막 위의 도시, 어찌 모든 것이 풍족할 수 있겠습니까. 서역을 넘나들던 상인들이 가끔씩 찾아들면 흥성거리다가 또 어느 땐 황량한 바람만이 도시를 지배했을 것 같은 이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건물들이 들어서고, 새로운 사람들의 무리가 들어오고, 또 건물이 생기면서 많은 것이 부족해졌을 테지요. 오늘만 해도 호텔 로비에 내려갈 때마다 새로 들어오는 여행자들의 무리가 줄을 잇고 있으니. 이 도시가 우리 같은 이방인들을 내치지 않고 받아주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듯합니다.      


더위가 한풀 꺾인 해거름에 밖으로 나가봅니다. 아, 파란 하늘입니다. 저녁 무렵부터 파래지는 하늘이라니요. 이곳은 보통의 도시와는 다른 색의 시간을 가진 곳입니다. 밤이 되면 겹겹의 옷을 걷어내는 여인네의 속살처럼 둔황은 밤이 되면 낮에는 보지 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둔황은 밤의 도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밤이 더 멋집니다. 열기와 먼지가 가라앉은 야시장에는 불이 켜집니다. 음악 소리, 손님을 부르는 소리, 사람들의 소리, 이국의 냄새와 색이 뒤섞여 예민한 감각을 부르는 이곳이 오랜 교역의 역사를 가진 도시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곳을 다녀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밤의 모습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신의 둔황은 어떠했나요? 당신 역시 밤의 둔황을 즐기셨나요?      



언젠가 읽었던, 이곳을 소재로 한 소설 속 위구르 여인들의 긴 속눈썹 사이로 묻어나던 사랑을 찾아보려 했으나 이곳은 흰 모자를 쓴 청진, 이슬람 남정네들의 도시 같기도 합니다. 간간이 야시장 한구석에서 양가죽으로 만든 전통 북소리에 애잔한 노랫소리를 들려주는 앳된 아가씨의 노랫가락 속에서나마 전설 같은 이야기, 오래전 이곳을 넘나들던 위라든가, 진이라든가, 서하, 흉노 따위 유목민의 빛바랜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덩달아 저보다 먼저 이곳을 다녀왔던 당신의 이야기도 떠올려 봅니다.      



“중국 여행을 가야 해. 유럽도 좋지만, 지금은 중국 여행을 가야 해. 그곳이 변하기 전에. 무섭게 변하고 있어. 정말 대단한 곳이야. 둔황은 말이야…‥․”     


그렇습니다. 어쩌다 보니 당신이 말하던 실크로드의 도시들, 당신의 여행길을 따라왔습니다. 당신처럼 칭다오에서 며칠 머물렀고, 그 옛날 주나라와 진나라의 본거지였고, 동서무역의 중계지로 당나라 때에 최고로 번성했던 시안을 지나 감숙성 하서주랑을 따라 란저우, 장예를 지나 둔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야 저는 당신의 말을 실감했고, 당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던 예전의 저를 나무라야 했습니다.      


이곳은 당신이 찾아왔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가이드를 동반하여 여행해야 했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여행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꼭 한 번, 당신보다 앞서 중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북경과 대련, 집안, 연길을 돌아보는 11일의 여행이었는데, 그때는 전체 가이드와 지역 가이드 두 명을 대동해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규정은 전설이 되었고, 개별여행이 가능합니다. 인터넷의 도움만 받을 수 있다면 참으로 쉽게 여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제가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이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마트폰은 제가 지나온 길을 기억하고 있으며, 언제,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도 지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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