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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 숨쉬는 그녀 Sep 12. 2019

둔황의 아침 02

당신에게 가는 길, 실크로드 02

둔황의 아침 강을 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강을 품은 도시는 어머니처럼 아늑하거나, 사랑에 빠진 남녀의 아릿한 맛으로 다가옵니다. 이건 제 고향 진주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3년 동안 틈만 나면 남강가로, 촉석루로 산책을 다닌 덕분에 진주는 제게 저녁강으로 기억되는 곳이지요. 시인 박재삼에게는 생계의 고달픈 무게를 지닌 어머니로 기억되는 강이지만, 저에게는 여고 시절의 풋풋함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낯선 도시를 방문할 때면 우선 강부터 찾아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강으로 향하던 제 발걸음을 등교 중이던 꼬맹이들이 낚아채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여자애들이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모습이 어찌도 예쁘던지요. 그 애들 뒤를 따르면 초등학교 구경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학한 지 이틀째 되었다고 하더니 학교 앞은 아이를 배웅하러 온 부모님들, 그들이 타고 온 오토바이와 수레로 가득했습니다. 손을 꼭 잡고 걷거나, 오토바이와 전동 리어카에 태워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또 학교 앞 만두가게에서 서둘러 아침을 먹이거나, 오토바이에 태운 채 길에 서서 아침을 먹여서 배웅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따뜻해 보였습니다. 출근시간이 바빠서 혼자 아이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다 차에 갇혀 질식사하기도 하는 우리와는 다른 풍경이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교문 앞에서 꼭 껴안아주거나 등을 토닥이며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주는 부모가 있다면 그 애들은 든든한 응원의 힘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학교 밖에서는 경찰과 수위 아저씨, 선생님이 아이들을 맞아주고, 또 학교 안 운동장에서는 선생님들이 가벼운 아침운동으로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한 아이는 학교 안에 들어가기를 계속 망설여 아이의 엄마와 선생님, 고학년 누나까지 동원해서 아이를 다독이며 괜찮다고, 들어가자고 하는 모습이 익숙해 보였습니다. 어디든지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있으니까요.      


길을 걷다 또 다른 교복을 입은, 좀 더 어린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보여 발길을 돌렸습니다. 유치원이었습니다. 교문 앞에서 선생님과 지도위원인 듯한 꼬마애들이 등교하는 아이들과 배웅 온 부모님에게 일일이 깍듯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여간 의젓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참한 아이들이었답니다. 그걸 보는 순간 란저우의 공원에서 ‘자랑스러운 란저우 청소년들’로 뽑힌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을 공원에 전시해놓은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 애들도 자랑스러운 청소년들로 자랄 꿈을 가지고 이른 아침부터 교문 앞에 서있는 것일까요? 유치원과 초등학교 앞은 한국보다 중국의 교육열이 더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직 8시 전이었는데, 그렇게 어린아이들이 그 시간에 등교를 하다니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초등학교와 유치원 순례를 마친 후 이제는 강인가 싶었는데, 강보다 먼저 공원입니다. 이곳 역시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당신의 말처럼 중국에서는 아침의 공원 산책이 백미입니다. 단체복까지 맞춰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춤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참 신명 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공원에서 담소 중인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전혀 궁색하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 편안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서역을 개척한 장건의 동상이 입구에 버티고 선 그곳에서 사람들은 또 어떤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하는 걸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주머니와 아가씨들이 뒤섞여 춤추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산책하는 모습에서 노년의 여유로운 삶이 느껴졌습니다.      

공원 앞에서는 아침 시장이 열려 토마토, 포도, 사과, 복숭아 같은 과일과 가지, 콩, 제가 어릴 때 맛보았던 비름나물 같은 여러 채소들을 팔고 있습니다. 대량 재배한 작물이 아니라 시골 촌부들이 농사지은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도 사과와 복숭아를 샀는데, 한가득 담았는데도 8위안, 우리 돈 1500원 정도였습니다. 아 참, 양을 리어카에 싣고 팔러 온 할아버지도 만났습니다. 제 고향에서도 장날이면 우시장이 열리곤 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풍경을 이곳에서 만납니다.      



드디어 강입니다. 당하강입니다. “둔황에는 말이야. 강이 있어. 곤륜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흐르는 곳이야.” 당신이 말하던 강입니다. 이곳에서도 역시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중국사람들은 참으로 신명이 많은 사람들 같습니다. 수양버들이 멋들어지게 늘어지고, 강둑에는 막고굴의 주요 벽화들의 모조품을 전시해둔다든지, 효경, 덕행록 등의 글귀들을 한 벽면 가득 전시해 두었더랬습니다. 어딜 가나, ‘부국강병, 문화 효행....’ 등 계몽적인 글귀들이, 중국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도 합니다.           

아직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란저우에서 다녀온 황하 석림, 일주일 동안 내린 비로 불어난 황하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병령사 석불, 감숙성의 첫 도시 천수, 산 하나를 통째로 석불로 채운 ‘맥적산 석불’, 장예의 ‘칠채산’, 막고굴의 천불동, 베제크리크 석불, 명사산 월아천, 서역으로 통하던 옥문관과 양관, 그리고 둔황석굴까지. 역사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당신이 조곤조곤 말해주던 그곳들의 이야기를 새로이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만 꿈으로만 그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밤이면 저는 투루판으로 향할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던 지하수로 카레즈를 이용한 싱그러운 포도밭 그늘의 여유와 수박 냄새 가득한 그곳을 마음으로 그려봅니다. 제 여정은 우루무치를 지나 당신이 밟아보지 못한 곳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을 거쳐 코카서스, 이스탄불을 지나 아랍지역‥‥․ 제 여행이 언제까지, 어디까지 계속될지 알 수는 없으나 그 길에서는 당신을, 당신의 길을 벗어나 제 길을 찾고 싶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다시 이 길을 되짚어 온다면, 그때는 당신에게 가는 길이 아니라 저에게로 이르는, 저의 실크로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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