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01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딸아이가 만난 과나후아토. 은광 노동자들의 고달픔을 파스텔빛으로 바꾼 아름다움처럼, 삶의 굽이굽이 즐기는 마리아치들의 여유처럼, 지하수로를 도로로 만든 지혜처럼, 딸아이가 자신의 인생길을 만들어가길
“참 특이하시네요. 왜 그런 이상한 곳으로 가세요? 거기는 뭐 볼 게 있지요?”
멕시코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그러게. 왜 하필이면 멕시코일까? 12년 동안의 의무교육을 마치고 ‘해도 되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것이고, 용서받지 못하는 일도 많아진다는 것’의 성인이 되는 길목에 있는 딸아이와 함께 가는 곳이 외진 멕시코라니! 가까운 아시아 지역이나,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아름다운 나라들이 즐비한 유럽을 제치고 왜 하필이면 가난하고 치안도 불안하고 낯설기만 한 멕시코여야만 했을까?
그렇지만 멕시코여야만 했다. 가깝게는 대한제국 말기에 '묵서가(墨西哥·멕시코) 드림'을 안고 유카탄 반도에 있는 에네켄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며 살았던, 지옥과도 같은 삶을 이겨내고 100년이 넘는 세월을 뿌리내린 ‘애니깽’의 슬픔이 어린 나라. 멀게는 ‘창조는 고통의 구원이자 삶에 대한 위로’라며 자신의 아픈 삶과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 프리다 칼로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그곳에서 새해를 함께 맞이하고 싶었다. 이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나갈,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선택과 책임’이 많아지는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딸아이와 함께 걸으며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비록 쉬운 여행은 아니지만 배낭을 짊어지고 두 발로 걸으면서 단순히 엄마와 딸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독립된 한 인격체로서 만나고 싶었다.
한 해의 끝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았던 도시 과나후아토(Guanajuato)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1988년) 도시다. 1500년대 주변의 은광을 배경으로 스페인 침략자들이 만든 도시라 골목마다 중세도시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이 매력적이다. 특히, 문화회관, 공공도서관, 대학들이 모두 도시 외곽으로 밀려가고 교통의 요지에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공공건물들 덕분에 시내 곳곳에서는 살아 숨 쉬는 문화를 호흡할 수 있다.
과나후아토 중심지에서는 길 위를 달리는 차를 보기 어렵다. 오래된 골목길에는 고풍스러운 건물과 가게들, 사람들의 발걸음이 가득하다. 옛 도시를 보존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은 오래전 만들어진 수로시설을 차도로 바꾸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리하여 전통과 현대가, 사람과 차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마을로 살려냈다. 그러니 그곳에선 마음의 빗장을 내려놓고 그저 느리고 느리게, 햇빛에 몸을 맡기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멕시코 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로와 그의 반쪽 프리다 칼로의 예술적 영감이 물씬한 디에고 박물관, 세르반테스가 머물렀던 것을 기념하여 만든 돈키호테 박물관, ‘국제 세르반테스 축제(Festival International Cervantino)’의 중심지인 후아레스 극장(Teatro Juarez) , 1732년에 세워진 지성인들의 산실 과나후아토 대학, 야외 공연이 자주 열리는 라빠스 광장과 성모성당(Plaza de la Paz , Basilica de Nuestra Senora do Guanajuato), 멕시코 혁명의 불꽃을 피운 이달고 신부를 기념하여 만든 이달고시장을 만날 수 있고, 유니온 정원(Jardin de la Union)에서 들려오는 마리아치들의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하루 종일 젖어들 수 있다.
유난히 축제를 즐기는 멕시코 사람들. 그들의 새해맞이는 특히 요란하다. 밤새 축포를 터뜨리고 모닥불 아래 도란도란 모여 술과 음식, 노래와 춤, 이야기를 즐기며 아침까지 축제를 즐긴다.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마당도 그러했다. 과나후아토에서의 새해맞이는 원래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야간 버스에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제 스물이 되는 딸아이의 새해를 그런 식으로 맞이할 수는 없어 생각을 바꾸었다. 예약을 하지 않아 우리가 묵을 방이 없었던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매기는 흔쾌히 그들 부부의 방을 내어주고, 축제의 한켠에 우리를 초대했다. 따뜻한 그네의 배려로 지구의 반대편, 따뜻한 집안에서 계피향이 진한 푹 끓인 커피 한 잔과 멕시코 전통 요리로 새해 아침을 맞는 행운을 누렸다.
과나후아토의 대표적인 명소 피빌라 언덕(Monumento al Pipila). 멕시코 독립전쟁 당시 선봉에 서서 횃불을 밝힌 광부 피빌라를 기념하여 만든 언덕이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과나후아토 시내는 황홀하도록 아름답다. 그 옛날 은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의 집. 하늘에 닿을 듯, 지상에서 아득히 먼 산비탈에 오밀조밀 자리 잡은 집들은 알록달록 크레파스 색깔로 빛났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 열악한 삶의 흔적을 예술로 바꾸고, 자신들의 삶 속에 침략자의 문화를 껴안고, 삶의 굽이굽이를 노래와 춤으로 넘는 그들의 모습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삶의 여유가 배어났다.
스페인 지배의 영향으로 독실한 가톨릭 국가인 그곳에선 곳곳에 큰 성당이다. 그뿐 아니라 마을 어귀마다 우리네 서낭당 같은 아주 작은 기도소가 있다. 서낭당에 돌 하나씩 던지며 간절한 소망을 빌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촛불마다 기원을 담는다. 과나후아토를 떠나오던 저녁, 며칠을 묵어 우리 동네처럼 친숙해진 마을 어귀에서 막 스물이 되는 딸아이와 나는 촛불을 밝혔다. 딸아이는 무엇을 빌었을까? 나는 무엇을 빌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