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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을 가다. 메밀꽃이, 글꽃이, 사람꽃이 있어!

작가와 함께 걷는 메밀꽃밭

by 살아 숨쉬는 그녀


“행사가 취소되면 어쩌지요?”

“태풍이 온다는데. 우리, 갈 수 있기나 할까요?”


예상치 못했던 초가을 태풍 소식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어렵게 마음을 내었는데, 행여 이 가을 여행이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하지만 네트워킹의 힘이 태풍을 몰아내었다. 부산에서 5시간 반이나 걸리는 평창. 직접 운전해서 가기로 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민 선생님의 배려 덕분에 차를 빌리고, 운전자를 구하고, 폭풍 뚫고 함께 갈 사람을 모으고 보니 비 오고 바람 분대도 걱정되지 않았다.



아닌 밤중에 일어나

실눈을 뜨고 논귀에 킁킁거리며

맴도는 개밥풀

떠도는 발끝을 물밑에 닿으려 하나

미풍에도 저희끼리 밀고 밀리며

논귀에서 맴도는 개밥풀

방게 물장군들이 지나가도

결코 스크럼을 푸는 일없이

오히려 그들의 등을 타고 앉아

휘파람 불며 불며 저어 가노라.

-이동순, ‘개밥풀’ 중에서



덜컹거리는 베란다 창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시를 떠올리며 ‘스크럼 짠 개밥풀처럼’ 신나게 바람 맞으며 평창으로 떠났다. 아침 6시. 비를 쫄딱 맞을지도 몰라 바지, 양말, 신발도 여분으로 준비해 약속장소로 갔다. 7시 10분. 일등으로 도착했다. 혹시라도 내가 늦으면 다른 사람 불편할까 봐 서둘렀는데, 다들 같은 마음이었던지 지각생이 아무도 없다. 첫 출발지 서면에서, 두 번째 출발지 교대 앞에서 100% 출석이라는 카톡이 연이어 오고, 내가 발 디딘 금정구청 앞에서도 100% 출석이었다.


13인의 아해가 아닌, 열세 분의 선생님은 날이 맑지 않아도 평창으로 가는 길이 좋다 하였다. 열 분이라던 애초의 계획보다 많아진 사람들. 바람이, 태풍이 우리를 엮어준 셈이어서 고맙기도 하였다. 학생 상담도 수시 원서도, 자소서도, 추천서도, 청문회도, 세상일도 소금처럼 흩뿌려질 메밀밭에서는 잠시 잊기로 하고 내리는 빗발 속에, 불어오는 바람 속에 길을 떠났다.


누군가는 달콤한 샌드위치로, 누군가는 구운 계란으로, 그리고 또 누군가는 달콤한 머핀으로 빈속을 달래주고 쌉쌀한 커피로 우리 몸도 깨어나게 했다. 세찬 바람에 때로는 차가 휘청거리고, 때로는 빗줄기가 차창을 때려 걱정도 했지만, 간간이 휴게소에 들러 구름과자, 김밥, 라면, 짬뽕으로 힘을 얻으며 평창으로 들어섰다. 잎은 잎대로 푸르고 꽃은 꽃대로 흰 메밀꽃, 연분홍 진분홍 빨간 백일홍, 메밀밭에서 추억을 남기는 사람들이 행사장으로 가는 발길을 더디게도 했다.



두 대통령을 보좌했던 글쓰기 전문가의 강의를 들으며 ‘그래, 질문의 힘인 거지, 매의 눈으로 관찰도 해야 하는 거야, 음, 공감이 필요하지, 적당한 비판력도 갖추어야 할 테고, 무엇보다 회복 탄력성이 필요하지.......’ 비법을 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글쓰기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겠지만 그 시간만큼은 고개 끄덕이며 다짐도 해보고 열 분의 작가들을 만나며 비를 뚫고 온 보람도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시 쓴다는 손택수 시인을 비롯하여 시를 쓰다 동시 쓰는 시인, 동화작가, 난민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 소설가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작가들이 인사를 하고 우리는 마음에 점 찍어둔 작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속한 5조는 열 분의 선생님, 한 분의 안내자와 안동에서 오신 시인. 비슷한 마음 풍경을 지닌 우리는 비가 흩뿌리면 흩뿌리는 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평창의 하늘을 이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선생님들, 각자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씩 낭독하고 시작하면 어떨까요?”


오랫동안 인문학 특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시는, 솜씨 노련한 선생님 제안에 마음을 울린 시 한 편씩을 낭독했다. 자식 가진 부모라면 한 번쯤 느꼈을 법한, 자식을 향한 안쓰러운 아비의 마음이 담긴 ‘겨울 무지개’라든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이 묻어나는 ‘아버지의 수레바퀴’라든가, 좀더 깊어진 가을이면 머리 풀 갈대밭에 불어올 바람을 읽어냈을 시인의 마음이 떠오르는 ‘선어대 갈대밭’이라든가 한 편씩 낭독했다. “저는 초등학교교사거든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동시를 공부하고 있어요.” 라던 마음 고운 선생님은 동시를 낭독하다 울컥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의 시 낭송에 시인은 고향 안동 이야기, 시인의 마음결에 살아있는 백석이며 이육사, 시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우리 세대가 살아낸 IMF며, 자식들을 도회지로 보내고 손주들과 살아가는 조손가정의 쓸쓸함이며 이 시대의 애잔한 삶을 이야기하다 보니 메밀꽃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서로의 발밑을 동시에 밟을 수는 없다.’라던 시인의 시처럼 발 딛고 사는 우리네 삶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와 앉았다. 트로이의 목마 같은 ‘평창의 당나귀’도 우리 이야기를 가슴으로 들었던지 비도 바람도 잠시 멈추게 했고, 평창의 당나귀가 지쳐 더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때쯤에는 우산을 받치고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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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엉겅퀴라는 곤드레. 꽃을 피우지 못하고 곤드레밥이 된 엉겅퀴 이야기에 연민하다가도, 그게 또 엉겅퀴의 운명이거니 생각하고,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곤드레가 내 몸속에 살아 꽃을 피우겠거니, 엉겅퀴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 시인은 시꽃으로, 소설가는 소설꽃으로 피우겠거니 생각했다. 밤이 깊어서야 달밤에 소금을 뿌린 듯 빛난다던 메밀꽃밭으로 우산을 들고 나섰다. 비 내리는 까만 밤에 메밀꽃들과 쓸쓸히 시를 나누던 시인도 있었다. 때마침 나타난 우리 덕분에 주거니 받거니 시를 낭송하며 다시 못 올, 사라지는 찰나의 한순간을 즐기기도 했다.


“빗속에서 시 낭송이라니요. 황홀한 시간이었어요.”


누군가의 말처럼 시 낭송의 여운을 가슴에 담고 불빛에 부서지는 빗살이 소금 대신 메밀밭을 수런거리게 한 밤, 메밀꽃은 우리 이야기를 가슴에 담았을까? 그래서는 알알이 익어 터질듯할 즈음에는 저희끼리 품은 이야기를 국수로, 전병으로, 묵으로 사람들의 피와 가슴을 덮일까? 메밀꽃이 품은 시의 마음이 사람에게 전해져 이 세상도 하얀 메밀꽃처럼 물들일까? 거짓 이야기 말고 참 이야기로 세상이 물결칠까?


숙소로 돌아온 밤, 지난해 메밀이 품었던 사연들이 전병으로, 막걸리로 우리 앞에 펼쳐졌다. 평창의 봄 햇살과 여름 볕과 비, 가을 서리를 온몸으로 받으며 여물었을 그것들을 맛보니 메밀을 가꾸었을 농부도, 지난해 이곳을 다녀간 나같이나 문학을 좋아했을 것 같은 사람들도 햇살과 비와 바람을 따라 들어와 우리 속을 수런거렸다. 이 수런거림이 또 부산으로, 서울로 전라도로, 곳곳으로 퍼져나갈 것을 생각하니 이것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한밤에, 을축이며 신금이며 갑술이며 난데없는 사주이야기로 운명을 짚어보기도 했다.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이에게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던 이에게도 어김없이 아침은 찾아와서 어떤 이는 들깻가루 구수한 황태콩나물해장국에 속을 풀고, 어떤 이는 쓴 커피로 몸을 깨우며 이별의 정을 나누었다. 함께한 사람끼리, 고생한 사람끼리 수인사를 나누고 어떤 이는 곤돌라로 평창을, 어떤 이는 메밀밭을, 어떤 이는 해든 봉평장을 거닐며 평창을 품어 가고, 또 어떤 이는 옆 동네 상원사 전나무 숲을 가슴에 품고 길을 떠났다.




대화장으로 가던 허 생원이 달빛에 홀려 동이에게 오래 묵은 이야기를 풀어내듯, 평창이나 평창 옆 동네를 품고 떠난 이들은 언젠가 비 내리는 초가을밤에 홀리어 소금처럼 뿌려지던 빗속의 메밀꽃을, 메밀밭을 걸었던 사람을, 가슴을 울리던 시를, 소설을, 시인을, 소설가를 이야기할지도 모를 일이다. 태풍도 물러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수시 원서에, 자기소개서에, 추천서에 수업에 바쁘게 지내다 보면 메밀밭도, 평창도, 사람들도, 그 순간도 잊히겠지만 몸속에 새겨진 평창의 맛은 가끔씩 엉겅퀴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라는 구절에 홀리고 꽃에 홀리고 사람에 홀리도록 ‘작가와 함께 걷는 메밀꽃밭’ 행사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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