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순례길

산들의 편지 05

by 살아 숨쉬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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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화장실 때문에 힘든 적이 없었어. 물을 계속 마셨는데도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화장실 가고 싶은 마음이 없더라고. 생장에서의 첫날, 아저씨가 탈수증 걸린다고 하도 위협하셔서 10분마다 한 번씩 물을 마셨거든. 물이 모두 땀으로 갔나 봐.


요즘은 길을 걷다 나오면 만나는 카페에 들르는 재미가 좋아. 처음에는 돈 쓰는 것이 아까워서 카페를 보아도 그냥 지나쳤거든. 그러다 언젠가부터 매일매일 카페에서 아침을 먹어. 새벽에 출발할 때에는 물만 마시거나, 과일 한 쪽을 먹고 출발해. 허기도 지지 않으니까. 새벽에는 걷는 속도도 나고. 하늘도 예뻐서 성큼성큼 걸어. 그러다가 동이 틀 때쯤 만나는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를 마셔. 카페에서 커피 맛도 알게 되었어.


타파스 문화가 발달한 스페인에서는 커피만 시켜도 가끔 오믈렛이나 작은 케이크 한 조각을 줘. 그러면 그걸 같이 먹기도 해. 카페라테가 보통 1.5유로 정도인데 진짜 맛있어. 카페에서 선크림도 바르고, 화장실도 들르고 천천히 준비해서 다시 걷는 거지. 그리고 숙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는 거야. 걷는 도중에는 점심은 잘 안 먹게 돼. 크게 쉬면 너무 지치더라고. 흐름이 끊겨. 나는 걷고 나중에 먹는 게 속이 편했어.


길을 걷다가 낚시하는 애, 아빠랑 함께 걷는 애도 보았는데, 아빠랑 나란히 걷는 모습이 참으로 좋았어. 도중에 큰 마을을 지났는데, 마을 축제를 하더라고. 그래서 40분 정도 쉬면서 마을을 구경했어. 마을 명물도 팔고, 옷도 팔고, 공예품, 와인 등을 파는데, 너무 이쁘더라. 담배 가게에서 배지도 샀어. 너무 예뻐서 가방에 달고 다녀. 한적한 일요일이었어.


쉬고 가니까 팜플로나까지 너무 힘든 거야. 땡볕에 걸었어. 보통 때는 산길을 걷는데, 평범한 마을 길을 걸어야 했어. 정말 힘들었어. 그런데 숙소에 수영장이 있는 거야. 그래서 정말 즐겁게 피로를 풀 수 있었어. 오늘은 여행을 즐긴 기분이야. 마을도 구경하고, 수영도 즐기고. 어쩌다 만나는 이런 작은 즐거움이 큰 행복을 준다는 걸 알아챈 날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