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내 자아의 공통분모, 행복
지난 시간 오롯이 두 아이와 남편의 뒷바라지, 살림만 하며 나름 열심히 생활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유학생활을 했고 이젠 내 가정을 이뤄 이 세상에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 인생의 반, 적지 않은 세월을 독일에서 보내고 있다. 생각에 따라선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젠 두 아이 모두 성장해 첫아이는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되었고 둘째는 내년에 아비투어를 본다. 그러니 초등학교 때처럼 하나하나 다 챙겨주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알아서들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뒷바라지가 다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독일 속담 중에,
'kleine Kinder kleine Probleme, grosse Kinder grosse Probleme'
이란 말이 있다. 즉, 크던 작던 다 나름의 문제와 어려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또 다른 경험들을 하게 될 것이다. 지난 2~3년은 사춘기 아이들과 갱년기 엄마의 공생관계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아직 둘째가 있으니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요즘 자꾸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은 이렇게 컸는데,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지? 독일에 올 때 보다 20kg 가까이 늘어난 몸무게? 그 결과 얻은 당뇨병? 결혼과 육아와 맞바꾼 나의 꿈?
나에겐 아직 꿈이 있다. 나이 50이 넘어도 여전히 포기가 되지 않는 꿈. 이 꿈으로부터 멀어져만 가는 건 아닌지, 생각이 많다. 나를 잘 다독이어야 할 텐데, 오늘도 나 자신과 힘겨루기를 한다. 엄마와 아내로서의 일상생활에서 자유롭지 못 한 나와의 끝없는 갈등!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이 혼란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초심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지 싶다. '행복이란 방어벽'을 치고 그 속에서 다시 한번 치열하게 살아보자!
지난 시간,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만이 아닌 내 이름 석자를 가지고 세상과 만나기 위해 나는 계속 노력해 왔다. 포털사이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개인 홈피를 시작으로 2009년도부터는 Daum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송고하며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육아와 살림에 '찌들어가는' 나를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어서 같은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리워, 그렇게 시작을 했다. 비록 온라인상이라는 공간적인 제한은 있었지만, 한 해 한 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소식도 전하며 이전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즐거움을 맛보기도 했다. 블로그라는 공간에선, 나는 작가이고 기자이며 해외특파원이기도 했다. 또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생각날 때면, 마치 일기장을 펼치듯이,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볼 수 있고, 기억의 저 편으로 사라져 간 그 순간의 나의 감정들을 다시 꺼내 볼 수 있어서 좋다. 내 '개인 기록관'과 같은 존재이다. 나에게 있어서 블로그는 없어서는 안 될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냥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보낼 수 있는 그런 나에게 스스로 '일거리'를 만들에 주었다. 내가 아직 '나로서 살아있다'는 확인을 시켜주는 그런 과정이라고나 할까? 요즘 젊은 세대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내가 유학 왔던 90년대 중반엔 한국과의 연결방법이 없었다.
그 당시엔 아직 국제 편지를 쓰며 소식을 전하던 시대였다. 가난한 유학생이 국제전화를 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다. 유학 오고 몇 년 후 저렴한 가격으로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소위 '바나나 카드'라는 것이 생겼다. 카드에 바나나가 그려져 있어서, 유학생들 사이에선 그렇게 불렸다. 이 카드의 번호를 가지고 공중전화로 가족과 통화했었다. 지금의 인터넷 현실과 비교해 본다면,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어쩜 이 표현조차 낯선 젊은 세대도 많을 것 같다. 그런 시절을 보내다 인터넷이라는 관계망이 생기면서 '독일이라는 우물'에 갇혀있던 나는 드디어 세계로 나왔다. 그 세계에서 많은 경험들을 했다.
육아와 가사에만 빠져 사는 나의 생활에 조금의 변화를 주고 싶어서 시작했던 블로그. 가족들에게만 올인해서 살다 보니 세상과 담을 쌓은 기분이었다. 내 가족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면서도 왠지 채워지지 않는 그런 공허함이 있었다. 나 자신을 잃고 지내는 것 같아 종종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블로그 활동은 작은 빛이었고 일상생활의 활력소였다. 지금은 그 역할을 브런치가 해 주고 있지만. 당시 블로그 활동에 투자하는 시간이나 노력은 내가 '세상과 소통한다는 보답'으로 돌아왔다. 값진 보상이었다. 최근 다양한 콘텐츠를 가진 무한한 공간들이 인터넷의 세상에 펼쳐져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순기능을 믿고 응원한다. 특히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나와 같은 해외 거주자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삶의 정말 중요한 한 요소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고국의 사정도 실시간으로 알게 되고 한국에 있는 친구나 가족들과의 즉각적인 왕래도 온라인상으로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전 유학 초기를 생각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든다. 또 다른 보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제삼자로부터 '내가 한 일에 대해 일종의 인정'을 받는 거다. '내가 나름 이 일을 열심히 잘 해왔구나'하는 마음, 그래서 나 자신에게 스스로 칭찬을 해 줄 수 있는 그런 자긍심이 생긴다고나 할까?
2011년, 2012년 다음 우수 블로그에 선정됐었다. 비록, 다른 인기 블로거들처럼 하루에 몇 백 명, 몇 천명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찾아와 읽어주고, 또 포스팅한 내용들이 독일과 독일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것 같아 좋았다. 이 것을 계기로 새로운 경험을 했다. 바로 스마트폰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을 한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얼마든지 혼자서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스마트폰 투어 www.smartpontour.com라는 여행 가이드 앱이다.
"여행지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처럼 ‘스마트폰 투어’ 내의 오디오 가이드를 다운로드하여서 여행지에서 플레이해 듣게 되는 ‘스마트폰 투어’는 현지인 가이드들이 참여해 여행정보, 관광지 투어 등을 재미있게 들려줄 뿐만 아니라 최근 유행하는 핫플레이스나 여행책에는 소개되지 않는 맛집, 여행 방법, 팁 등을 소개한다. "
(기사 인용-> 소성렬 기자, TV리포트 2013. 11. 16)
위의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외 현지인들로부터 한국말로 듣는 오디오 가이드이다. 나는 '독일'편에 참여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이 앱이 없어진 것이다. 카톡으로 업무도 했었고 소통도 했었는데, 몇 년 전부터 카톡도 되지 않고, 앱은 더 이상 이용할 수가 없는 상태다. 앱 거래 정지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받지 못했고, 창업을 했던 대표의 흔적은 인터넷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난, 아직까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른다. 원고를 작성하고 녹음해서 보낸 '나의 저작물'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받지 못했다. 황당한 경험이었다.
블로그에 내 전공과 관련된 글을 꾸준히 써 왔었다. 하지만, 독일의 생활에 대한 에피소드에 비해 읽는 사람들은 극히 미미했다. 내가 공부했던 것을 함께 나누고자 시작했던 블로그는 전공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독일에서 경험한 일상생활의 에피소드가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돼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법. 꾸준하게 조금씩 그림에 관한 글들을 올렸다. 그 결과 몇몇의 출판사와 컨택도 있었지만, 좋은 결과는 얻진 못 했다. 당시, 나는 많이 우울한 상태였다. 그 상태로 출판사에서 요구하는 것을 따를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바라던 기회가 왔는데, 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 2018년 7월쯤 브런치 작가에 '선택'되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글을 올리고 얼마 되지 않아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미 한 달 전에 받은 메일인데 한참이 지나서야 보게 된 것이다. 내용은 출판사에서 계획하는 콘텐츠와 내 글이 잘 맞는 것 같다며 출간을 제안했다. 그 메일을 읽는 순간 가슴이 떨리고 행복했다. 한 달 가까이나 지난 메일이라 혹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염려와 함께 바로 답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었다. 브런치에는 12편 정도가 발행되었지만, 이미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다 써 둔 상태였다. 그것도 17년 전에 말이다. 전공수업으로 들었던 내용을 정리하고 또 나 스스로를 더 연습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2002년 출간을 목적으로 원고를 썼었다. 그때만 해도, 그리스 신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렇게 많지 않을 때였고, 더욱이 '그림을 읽는다'는 표현은 한국대중들에겐 아주 낯선 것이었다. 나는 '그리스 신화 내용을 그림으로 읽는다'는 콘셉트로 글을 썼다. 그리고 한국의 대형 모 출판사와 컨택을 했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쓴 한글 문장이 너무 어색하다고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평가였다. 95년 독일로 온 이후 한글로 된 문장을 읽고 쓸만한 기회와 시간, 여우가 없었다. 수업과 독일에 더 빨리 적응하기 위해 오로지 독일어에만 열심이었기 때문에, 나의 한국어 문장이 그렇게 퇴보했는지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해외에서 오래 사신분들은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그 이후 초고의 문장들을 다듬으면서 계속적으로 인터넷상에 노출시키려고 노력했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발견해 주겠지'라는 희망을 갖고.
그해 연말부터 다음 해 3월 초까지 원고를 다듬어 다시 쓰고, 교정 과정을 거쳐 8월 30일 드디어 나의 첫 책이 출간되었다. 소중한 '내 셋째'가 태어난 것이다. 제일 먼저 가졌던 아이가 17년이 지나, 막내로 태어났다. 이 아이로 인해 내가 꿈꾸어 왔던 것 중의 하나가 이루어졌다.
아이가 태어나면 성장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든다. 나의 셋째도 역시나 그런 가 보다. 아직 많이 성장은 못 했지만 무럭무럭 자라 언젠가는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그런 아이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