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학번 새내기가 되다
입사 6년 만에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10개월 후 난 대학생이 되었다. 고민도 많이 했다. 이런 회사를 더 다녀야 하나? 그만두고 싶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로 전국 곳곳에서는 민주화 열풍이 불었다.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 요구와 노조 결성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내가 다니던 증권회사에서도 노조가 결성되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이 노조 결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신생 노조 측은 노조원을 중심으로 '초록색 깃 달기' 시위를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리투쟁이나 업무 중단과 같은 방법이 아닌, 평소대로 근무는 하지만, 왼쪽 가슴에 작은 '초록 깃발'만을 다는 것이었다. 각 지점에선 초비상이었다. 어떻게 하던 이 시위를 막아야 했다. 그들의 주장은 '지점을 찾아 주는 고객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며, 그 깃발을 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노조원들의 시위는 계속되었고, 급기야 지점장이 각 노조원들을 하나씩 지점장실로 불러들여 설득을 했다. 말이 좋아 설득이지 지금생각해 보면, 협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들어갈 땐 달려있던 깃발이 나올 땐 없었다. 남자 선배들을 시작으로 여자 선배들 그리고 동료들, 모두 하나같이 깃발을 떼고 나왔다. 내 순서가 되었다. 지점장실로 들어가니, 지점장과 부지점장 그리고 바로 위의 상사가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요구했다. 그 깃발을 당장 눈앞에서 떼내라고.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이 깃발을 단 건 개인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노조에서 결정해 함께 이행하는 것이니, 만약 노조 측에서 떼는 걸 결정한다면 그때 하겠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그들의 표정은 험악해졌고, '어디 감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이 고집을 피우냐며, 다른 선배들도 다 뗐으니 너도 떼라'고 요구했다. '만약, 떼지 않으면 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장담 못 한다'라는 취지의 협박도 받았다. 하지만 난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깃발을 단 채로 지점장실을 나왔다. 나중에 보니 나와 지점노조대표, 이렇게 단 둘 만이 깃발을 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인사이동이 있던 시기에 나는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보통 여자 직원들은 다른 지점으로의 이동 발령이 잘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지점의 선택은 직원이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곳으로 배정을 해 주며, 업무효율의 지속성 때문에 보통은 퇴사하기 전까지 한 지점에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난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집에서부터 점점 더 먼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처음엔 그 이유를 몰랐다. 왜 자꾸 먼 곳으로만 인사이동이 나는지 궁금하고 답답했지만, 그 이유를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나중에 친했던 직장선배에게서 들었다. 그때 노조 시위 때의 일로 내가 윗사람들에게 단단히 밉보였다고, 그래서 자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스스로 그만 두기를 바라면서 집으로부터 더 먼 곳으로 발령을 냈다고. 정말 치사했다.
비록 쫓기듯 새로운 지점으로 발령이 났지만, 난 그곳에서 보란 듯이 잘 적응하며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다. 마음은 많이 아프고 속상했지만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더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한 번 박힌 '괘씸죄'는 그리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나이도 어린것이 당돌하게 자신들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은 것이 용서가 안 되었나 보다. 1년이 안 돼 또 다른 지점으로 발령이 났다. 이건 뭐 대놓고 회사 그만 두란 얘기였다. '너희가 우리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는 시범케이스였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론 정말 자존심 상하고 그 불합리에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이런 회사 때려치우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내 기분대로만 행동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커피 한 잔을 들고 습관처럼 창밖을 내다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아직 아침 출근시간이 남아 있어서 잠깐의 여유가 있었다. 새 지점으로 옮긴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다른 업무파트로 배정됐다. 창구에 앉아서 손님들을 상대하는 자리에서 뒤쪽 사무실에 위치한 외부사람들과는 접촉이 없는 전화 교환 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사실, 비정규직의 아르바이트생이 맡던 업무였다. 그런 일을 나한테 배정시킨 것이다. 아~ 이땐 정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요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 일 것이다. 당장에라도 노조에 알리고 나의 권리를 찾으려 노력은 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그러지 못했다.
커피를 마시며 내다본 바깥 날씨는 정말 화창했다. 갑자기 작은 사무실이 너무나 좁게 느껴졌다.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바뀐 업무가 그렇다고 다 나쁘진 않았다. 나 혼자 쓰는 곳이니 전화응대를 할 때만 제외하고는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퇴근 후 서점에 들러 책을 훑어보고 읽고 싶은 것을 사들고 와 실컷 읽었다. 지난 몇 년간 일한다는 핑계로 읽지 못했던 것을 만회라도 하듯, 그렇게 정신없이 읽었다. 그러다 내 손에 들어온 책 하나. 고흐의 일대기를 다룬 '빈센트 반 고흐'였다. 그의 삶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 당시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위로였다. 역설적으로 그의 불우했던 생전의 일상이 나에겐 큰 위로가 되었다. '고흐에 비하면 나의 이 상황은 별 것 아니야. 힘을 내자!' 마치 무슨 계시처럼 그때 라디오에서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고흐도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잖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아!' 아무런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우연히 듣게 된 노래 하나가 불씨가 되어 방아쇠를 당겨 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장전되어 있던 방아쇠는 불을 만나자마자 그동안 숨겨뒀던 모든 에너지를 한데 모아 뿜어 냈다.
Vincent
Don Mclean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e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회사를 당장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먼저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또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 준비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계산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아무런 미련 없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계획한 대로 대학입시 준비학원 종합반에 등록을 했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한 하루는, 종일 수업을 듣고 오후 6시 화실에 가서 그림 배우고, 밤 12시쯤 집에 도착해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다시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반복적인 생활이 계속됐다. 그리고 10개월 후 난 당당히 미술대학에 합격했다. 그렇게 93학번 새내기가 되었다. 어린 시절 장래를 놓고 고민할 때, 난 화가가 되고 싶었다. 가정형편상 이루지 못했던 어릴 적 꿈을 따라서, 나는 이제 그 길을 선택했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 상담을 받았는데, 미술학원 원장님이 회화과는 좀 힘들다고 했다. 나의 내신성적은 1등급이었지만, 실기 실력이 회화과를 가기엔 위험부담이 크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6개월 남짓 배운 그림 실력이니, 몇 년간 회화과를 목표로 그림을 그려온 아이들과는 상대 자체가 불가했다. 그런 위험부담까지 앉고 회화과를 지망할 수는 없었다. 난, 무조건 합격해야 했다. 그래서 전통회화가 아닌 디자인실기를 치는 공예과로 지망했고 다행히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성인이 되어서 만나 화가가 반고흐였다면 어릴 적 나의 영웅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보게 된 그의 전기영화는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많은 분야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보였던 다빈치는 그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때부터 다빈치는 나의 롤모델이었다. 학교의 생활기록부에도 존경하는 인물로 다빈치를 썼었다. 생경한 이름에 담임선생님이 묻기도 했었다. 누군지 아느냐? 왜 존경하는 인물로 썼느냐?
그의 작품들은 화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결심을 더 굳건하게 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나에게 사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술공부를 위해 대학에 갈 형편이 아니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대신 좋은 학교성적으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가 되었었다. 그렇게 포기했던 나의 꿈을 드디어 이루게 된 것이다. 비록 순수회화는 아니었지만 흙과 불로 빚어내는 도자기 또한 매력적이었다. 행복한 도예가가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