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자궁을 빠져나갔다.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졌다.
의사가 피와 태지로 미끈거리는 아기의 발목을 잡고 거꾸로 들었다. 간호사가 말했다.
"어머, 아가 눈이 웃네"
의사가 아기를 들어 인큐베이터로 옮기던 순간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예쁜 반달눈. 황홀했다. 가슴에서 온천수가 솟는 듯한 느낌. 탯줄을 대롱대롱 단 아기는 비현실적으로 사랑스러웠다.
남편이 분만실로 들어왔다. 아기가 첫 울음을 터뜨렸다.
"토리야, 고생했어"
여간해서 흥분하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가 격양돼 있었다.
의료진이 후처치를 마친 아기를 강보에 싸 가슴에 안겨주었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남편은 땀으로 젖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눈을 꼭 감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여전히 싱긋 웃는 반달눈. 정신이 아득해졌던 것 같다.
'안녕, 드디어 만났네. 초면이지만 말이야, 정말 너무 사랑해...'
아기는 금방 신생아실로 옮겨졌다. 들것에 실려 분만실을 떠나는 아기를 남편이 뒤따랐다. 아쉬웠다.
"자기야, 아기 잘 데려다 줘."
찢어진 내 몸을 꿰매던 의사가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이고, 지금 당신 몸이 엉망인데"
그러게요, 그게 엄만가 봅니다. 너무 좋아서 아픈 것도 몰랐어요.
출산을 하면 감격에 차 울거나 너무 힘들어서 아무 말도 못 할 줄 알았다. 제왕절개를 염두한 16시간 공복,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며 진통을 견뎠으니 탈진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런데 아기를 만나니 막 연애를 시작한 사람처럼 들뜨고 설렜다. 피범벅이 된 차가운 분만대에 누워 연신 방글방글 웃었던 것 같다.
"자기야 분만실 들어왔을 때 나 어떻게 하고 있었어?"
"아기 보면서 '아이 예뻐, 아이 예뻐' 하고 있더라."
나도 몰랐지. 출산이 연애같을 줄.
회복실로 옮겨진 뒤 들은 노래가 A lover's concerto 다.
"now I belong to you from this day until forever"
사랑해 취해 섣불리 영원함을 약속하는 연인들처럼 맹세해버렸다.
엄마가 지구 끝까지 지켜줄게. 사랑해!
2019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