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사랑하는 우리 아가.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잠든 모습이 천사같네. 우리 아가 머리맡에서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오밤중에 노트북을 켰어.
오늘 엄마는 한 외교관 아저씨를 만났어. 이 분은 9.11 테러가 일어났던 2001년, 미국의 유엔 본부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분이야. 테러의 현장을 직접 지켜본 경험은 잊을 수 없다고 하더라. 110층짜리 무역센터 빌딩에 테러리스트들이 탈취한 여객기 두 대가 잇따라 들이받은 사상 초유의 사태. 상황이 끝난 뒤에도 파편과 분진이 며칠 동안 가라앉지 않았대.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검은 먼지 구름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고, 그걸 볼 때마다 공포가 엄습했다고 하더라.
출처 : wallpaper safari
뉴욕은 몇 달 동안 유령도시가 됐대. 추가 테러의 우려 때문에 집 밖에 나오는 없었거든. 그런데 어느 날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대. 적막한 도로를 지나가는데 유독 한 건물에만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는 거야. 병원이었대. 긴 줄은 헌혈을 하러 온 시민들이었고. 부상자가 많아 혈액이 모자라다는 소식을 듣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집을 나섰던 거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류애가 빛을 발한 순간을 코앞에서 접하니 눈물이 나왔다고 하더라.
2001년 9월 샌디에이고 혈액은행이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 단 며칠 만에 4000여 명의 주민들이 혈액을 기부했다고 한다. 미국 전역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얼마 전 엄마가 인천 국제공항에 취재 가서 퇴근이 늦었던 날, 기억날까 우리 애기는? 아저씨 얘기를 들으니 그 대 생각이 나더라. 8월 15일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했고, 우리 정부는 현지의 한국 병원 등에서 일해온 아프간인 400여 명을 구출하는 일명 ‘미라클 작전’을 계획했지. 그냥 두면 탈레반의 핍박을 받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어. 다행히 작전은 성공했단다.
엄마는 구출된 아프간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을 취재하러 공항에 갔어. 약속된 시간, 수십 명의 취재진이 숨죽인 채 입국장 자동문을 주시했어. 문이 열리고 처음 나온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6살 정도의 남자아이와 그의 부모였어. 이어서 곰인형을 꼭 껴안은 삼 남매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트를 타고 나왔어. 히잡을 쓴 엄마는 갓난쟁이를 안고 있었어.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가 터졌어. 아프간인들은 전반적으로 지쳐 보였지만 한편으로 안도하는 느낌도 있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번에 들어온 가족 중 절반 이상이 어린 아이들이었대. 태어난 지 한 살 도 안된 아가도 3명이나 있었다고 하더라.
인천 국제공항에 들어선 아프간 조력자 가족들.
엄마는 솔직히 이들이 한국에서 환영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 이들은 아프간에 있는 한국 병원이나 직업훈련소에서 수년 일해온 유능한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야.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 신분으로 공식 비자를 받고 한국에 머물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지. 하지만 구출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나 댓글에선 “극단주의자들을 왜 받아주느냐” 따위의 성토가 이어졌지.
다행히 엄마의 생각은 틀렸어. 우리 사는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더라. 충북 진천은 이들이 머물 공간을 기꺼이 내어 주었어.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곳곳에 붙이기도 했어. 이 소식에 감명받은 네티즌들이 “돈쭐 내주자”며 진천 온라인 쇼핑몰에 몰려가 농특산물을 완판 시키기도 했지. 선한 영향력은 댓글창까지 이어지더라.
"난민이 되고 싶어 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꼭 아프간이 탈레반으로부터 자유로워져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bmil****)
"애기야 잘 왔다~~ 여긴 평화의 나라 대한민국이다. 커서 너의 꿈을 활짝 펴기 바란다." (3443****)
아프간은 다시 암울했던 탈레반의 공포정치 시절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지구촌 곳곳에선 이렇게 편견과 이기심을 인류애로 극복하는 눈물겨운 장면들이 관찰되고 있단다.
엄마는 확신하게 됐어. 우리는 20년 전과 같지 않을 거야. 수십 년 간 더뎠지만 희망적이으로 이어졌던 아프간 재건은 공교롭게도 9.11 테러 20주년이 되는 해 물거품 되고 말았지.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온정을 베푸는 DNA는 여전하고, 여기에 성숙한 시민의식까지 보태졌으니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사랑하는 우리 아가. 누구나 모든 걸 잃는 상황에 닥칠 수 있어. 그게 내가 될 수도, 우리 이웃이 될 수도 있어. 그때마다 우리 용감하자. 희망을 잃지 말자. 피 한 방울을 십시일반 하기 위해 긴 줄을 섰던 20년 전 뉴욕 시민들처럼. 이슬람이라는 미지의 종교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아프간 사람들을 따스하게 맞아준 우리 국민들처럼. 모든 걸 잃고 낯선 땅에 발을 딛는 그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프간 아이들처럼.
P.S
엄마가 취재를 하면서 특히 가슴이 아팠던 대목이 있었어. 아프간 사람들의 옷차림이 이상할 정도로 깔끔했던 거야. 남자들은 정장에 넥타이까지 맨 경우가 많았어. 몇몇 아이들은 목이 긴 양말부터 재킷까지, 교복을 완벽하게 갖춰 입었더라.
이들은 탈레반이 장악한 도심을 목숨 걸고 탈출한 사람들이야. 긴박했던 상황들을 떠올리면 신발 한 짝 제대로 신을 여유도 없었을 것 같은데. 손가방 몇 개에 평생의 살림살이를 욱여넣고 보금자리를 황급히 떠나야 했을텐데. 그 와중에 옷차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이들이 대부분 의사, 교사, 개발자 등 엘리트 직업인이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어. 어쩌면 한국인들의 눈에 비칠 첫 모습을 의식했던 게 아닐까. 우리가 이슬람에 가져온 오랜 편견과 적대감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목이 메었어. 탈출을 앞두고 옷장에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는 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직까지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 서현이가 크면 같이 얘기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