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건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서 공간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는 따뜻한 기운이
차가운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는 차가운 기운이,
하지만 때론 리더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도
그 공간에 대한 의미나 이미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리더가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그 조직의 분위기가,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위치하고 있는 공간에까지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동안 내가 있던 공간은 많은 사람들이 오고 떠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있던 공간에 오기가 두렵다고 했다.
리더가 그들을 어떻게 대했을지 짐작이 간다.
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리더의 역할과 분위기에 따라서
그 공간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 되기도 한다.
내가 리더에 대해서 어떠한 서운함과 떨떠름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 공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리더가 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목도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고 그들은 이 공간을 충분히 사랑했지만,
사랑 방식이 달랐을 뿐 리더는 그들의 사랑방식을 인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저 꿈꾸는 대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을 자꾸 방문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포장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만을 위할 수밖에 없고 본인도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 또한 그런 리더를 통해서 괴물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감정도 없고 무미건조한 사무실을 더욱더 건조하게 만드는 데 일조할 뿐이다.
이렇게 된 이상 답은 없다.
둘 중에 하나가 떠나는 수밖에.
그저 그 수밖에 없다.
내가 선이고 그 사람이 악이고,
내가 악이고 그 사람이 선이라는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생각하는 방향이 달랐을 뿐이고 철학이 달랐고 기본 이념이 달랐을 뿐이다.
리더가 살아온 세월이 지금의 리더를 만들었듯, 나도 내가 살아온 세월들이 나를 만들었을 뿐.
우리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고,
그저 나는 이 공간이 결국엔 사람의 이미지로 인해서 인식되고 각인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
이유는 그것이다.
그런데 그 공간의 이미지는 결국엔 리더라는 한 사람이 위치함으로써도 그 사람에 대한 인식 자체가 결국엔 공간에 대한 인식으로 자리잡음을 알았던 것뿐이다.
씁쓸하거나 그러진 않지만,
아예 아쉬움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그가 떠나고 난 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뿐이다.
사실은 그가 떠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이 공간을 그로 인식하기에,
더 이상 이 공간을 사랑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버리지 못하는,
나 자신의 한계에 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