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이라도 끄적여본 이들은 안다.
얼마나 글쓰기가 귀찮은 일인가를.
그럼에도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일종의 자기표현이자 자기 고백일 것이다.
이런 것들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글쓰기에 장점은 뭐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기 힘든 것은
사실상 귀차니즘 때문이다.
귀찮기 때문에, 삶도 귀찮은 것이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더더욱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 귀차니즘을 이겨낸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그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기지개를 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써놓고 뭔 소리야 하고 외치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기지개를 켜는 것은 활동의 시작을 의미한다.
활동하고 싶다.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고, 사실상 조금 귀찮긴 하지만
이야기를 쓰고 싶기도 하고,
그것보다는 그냥 마냥 잠만 자고 싶다.
그러기엔 나의 젊음이 너무 아까워서, 예전에는 젊음이 아까워서 나돌아 다녔지만
그것조차도 의미 없게 느꼈기에 지금은 집돌이로 변했지만
이 공허함과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고
나선형처럼 빙빙 돌아서
나를 계속 비워내는 데 일조한다.
비워지고 채워지는 게 일상이라지만
계속 비워지는 인생이 서글퍼지는 것은,
비단 나의 일만은 아닐 터이다.
난 인생을 서글프게 생각하면서 살고 싶진 않지만
만나는 이는 줄어들고 그리운 이들은 늘어난다는 선우정아의 노래처럼
그리움이 커져갈수록 슬픔이 나를 얽매어
나를 깊은 심연으로 데려가지만,
예전처럼 더럽게 죽고 싶다거나 그렇게 되진 않기에
그저 우울함을 약간 가진 채로 살아갈 뿐이다.
서른이 넘고 나서는 삶에 대한 여유가 늘었다보단
그저 포기할 건 빨리 포기해버리는, 찍어먹어 봐야 된장인지 똥인지 아는 것만 늘어났다.
그럼에도 똥인지 된장인지도 몰라서 또 똥통에 빠져 허우적 되긴 하지만,
설명이 길었음에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다.
글을 써야겠다. 쓰겠다. 아우 귀찮아.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 조금씩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