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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요 Feb 24. 2020

#2월 24일의 기분

코로나가 세상을 뒤덮던 날. 

난 영화에서 본 한 장면을 생각했다. 


좀비들이 세상에 득실득실거리는 영화의 한 장면 

물고 뜯으면 전파되는, 그런 모습 


코로나는 우리의 약한 부분에 침투하여 

우리를 잠식해나갔다. 


악수조차도 하기 힘든 세상을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세상.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느낀 건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것. 

그러면서 자꾸 외로워진다는 것. 

일 하는 것도 외로운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서도 외로웠다. 

그건 너의 감정이니, 

네가 처리해야 할 몫이라고 얘기하는 

사회의 언어들이 싫었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 얘기했지만, 

그리고 참으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그리 할 수 없었다. 


나의 자존심마저 포기할 수 없었다. 


자존심이 밥먹여주냐는 그 말이 

나에게 돌아왔을 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나는 내 의견을 말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말을 듣냐, 안듣냐가 중요했다. 

하나의 군대였다. 


그러면서 나는 망각의 숲에서 예전에 발견했던, 

꿈틀거리는 것을 꺼내올렸다. 

'분노'와 '짜증'을 원동력 삼아서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수많은 욕들을 먹어가며 견뎌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들 잘 견디고 있는데, 나만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래, 난 다른 사람이다. 

난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노력도 하고, 

열심히 살고 싶은 사람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난 '분노'와 '짜증'을 원동력 삼아 돌아가는 사회에서 

코로나의 뿌리가 숨어 들어가 있었다고 봤다.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 뿌리가 싹을 틔우고 잎을 틔어서 

지금의 모습을 나타낸 거겠지. 


저 사람만 없어지면, 이라는 생각 

저 사람때문에, 이라는 생각 


그런데 계속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된다면, 

행복하게 일할 수는 없을까. 

물론 일이 짜증나고 하기 싫긴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행복하게 일할 수 없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이왕 해야되는 일이라면, 

우리의 사회적 언어들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가 있으면 

반대로 유토피아적인 세계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늘도 역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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