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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Nov 13. 2019

컵라면으로 허기채우다 헛구역질하는 밤도 오겠지(1)

슬퍼지는 새벽,  웃기지도 않은 소설을 썼지(6)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5년 전 중앙동으로 가는 지하철에서였다. 나는 마치 대학생이라도 되는 양 새초롬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 옴마야, 내가 읽고 있는 책하고 똑같네예. 영화고고학.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스팽글이 장식된 넓은 머리띠를 한 빨간 루주의 여사님이었다.     

-지금 김치만 씨 강의 들으러 가는 길이지예? 카페 천만년에서 하는.    


-......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자, 스팽글 여사님이 말을 이었다.    


- 같이 가입시더, 잘됐네. 딱 보니 내하고 동년배인 거 같은데 나이가 우째 되는공? 초면에 실례가 될랑가, 나는 잔나비띠 거든.    


스팽글 여사님은 말을 놓았다가 높였다가 했다. 어쩐지 밉지는 않았다.    


- 저도 잔나비 띠예요.    


- 거봐라, 거봐라, 이럴 줄 알았다카이, 내가 길바닥에 자리 깔아야 되는 기라, 고마 우리 말 트입시더. 동갑인데.    


나는 오른손으로 입 언저리를 살짝 가리면서 활짝 웃었다.     


- 옴마야, 이 아줌마가 입을 다 가리고 웃네. 희한한 캐릭털세.    


그녀는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처음 만난 나를 쥐락펴락 했지만 그런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 이년아, 내가 능력 될 때까지 당신 쌀은 대 줄 테니 질질 짜지 말그라, 짠다고 해결되는 일은 하나도 없드라.     


그녀가 이 말을 한지 이틀 뒤에 10kg짜리 쌀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 남자에게 전세금까지 몽땅 털린 뒤 그녀가 얻어준 원룸에서 생활할 무렵이었다.        


- 쌀 왔드라. 내가 밥 못 묵을까봐 그라나. 하여튼 오지랖은.   


- 어, 내가 쌀 대 준다 안 하드나.    


- 그래도 당신은 쌀 한 톨 입에 넣어도 따숩다이가. 나는 밥 한 그릇 다 먹어도 허기지네요. 숭늉 한 사발 다 마셔도 속은 만날 냉하고. 그라이 나는 당신한테 빌붙어도 되제.         




그녀의 남편은 잘 나가는 법무법인 대표였다.    


- 그래그래, 내한테 빌 붙으믄 뭐라도 나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그런 일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봐라봐라, 망미 도서관 앞에 기가 차게 재미난 책방이 하나 오픈 했드라. 책방 이름이 뭔지 아나? [카프카의 연인]이드라야, 죽이제?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 출입문에 카프카 읽기 모임 한다고 써 붙여 놨길래 들어가 봤다이가. 동네서점 치고 제대로 되었드라. 주인은 서글서글한 기 카프카 안 읽게 생깄드만, 말하는 폼세가 따악 내 스타일인기라. 거기 함 가보자. 카프카 읽는 모임.  

  

카프카 읽기 모임 첫날, 나는 우연에게 이끌려 그곳엘 갔다. 두 사람이 이미 와 있었다. 강단 있어 보이는 여성 한 명과 눈이 서글서글한 여성이었다.



-그럼,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시작하죠. 저는 여기 책방지기이고요. 모임 끝나면 문단속하시고 나가시면 돼요. 저는 아르바이트 갈 시간이라서요.    


이렇게 해서 카프카 읽기 모임이 시작되었다. 강단 있어 보이는 그 여성은 자신을 “여러 가지 활동가”라고 소개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3년 되었고 전액 대출을 받기는 했지만 비건 카페를 운영한다고도. 우연의 눈이 반짝했다. 나 또한 그녀에게 은근히 끌렸다.  


우리 셋은 동갑내기였다. 그날 이후 우리는 카프카는 읽지 않고 카프카보다 더 진지하게 서로를 읽어갔다. 카프카가 쓴 소설보다 더 부조리한 각자의 삶이 서로를 끌어당겼으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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