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뭘 넣은 거니?】
엄마가 가지고 있던 필터, 분잡한 삶의 찌꺼기들을 걸러내는 마음의 필터가 조금 전의 변기처럼 턱턱 막힌 것 같았다. 꾹꾹 눌러도 자꾸만 새어나오는 울분의 소리는 변기가 꺼억 꺼억 하는 소리보다 더 참기 힘들었다.
- 차라리 속 시원하게 욕이라도 퍼붓지, 욕 한다고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나?
나는 속으로 말했다.
TV에서는 금지된 여자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세 남자가 자신들을 덮친 폭풍 같은 사랑을 토해내고 있었다. 클라이맥스였다. 그 어떤 금기도 막지 못하는 사랑의 열정이 물을 가득 넣은 풍선 터지듯 한꺼번에 펑!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산더미 같은 파도가 나를 향해 오는 것을 보았고 한 뼘 가슴속에 있던 것을 순식간에 휩쓸고 가는 것을 느꼈다. 몸이 뻥! 뚫린 듯 했다. 나는 전율했다. 세찬 파도가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간 뒤의 얼얼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 도대체 뭘 넣은 거니?
내가 묻자 동생은 고상한 우리 엄마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그랬다고 나중에 내게 고백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언니야, 내가 밥 먹다가 엄마가 식탁위에 둔 김칫국물 묻은 그 책을 무심결에 펼쳤더니 카드명세표 봉투가 책 사이에 있더라. 거기에 글자가 적혀 있더라고. 뭐라고 적혀있었는지 맞혀봐. 그러면 내가 변기에 뭘 넣었는지 말해 주께.
-글쎄, 변기에 뭘 넣었는지는 이제 궁금하지도 않고, 나 지금 나가야 돼. 뭐라고 적혔는지나 말해줘.
-띄어쓰기도 없이 빽빽하게 적혀있더라고.
-그러니깐 뭐라고 적혀 있었냐고?
동생은 눈웃음 쳤다. 그리고는 그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거기에는 빈곳이라고는 보이지 않을만큼 촘촘한 글자가 무언가를 간절히 염원하는 주문처럼 씌여 있었다.
개새끼씨발놈개새끼씨발놈...(끝)
**8화까지 이어지는 연재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