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저녁에 집 근처를 달리면서, 문득 올해는 마라톤 대회를 다시 한 번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달리는 것이 익숙하지만 심심하기도 하고, 가끔은 자주 해오던 일이더라도 분명한 목적을 정해두고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5년 전에 처음으로 대회에 나가서는 10km를 43분 후반에 끊었는데, 이제는 언감생심이다. 지금은 5km 지점을 넘어가면 무릎 아래가 조금씩 무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발도 조금씩 땅에 끌리고, 호흡도 가빠온다. 이제는 적당히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으면 하프 마라톤은 고사하고 10km 완주도 아슬아슬할지 모른다.
달릴 때 켜놓는 나이키 러닝 앱에는 실시간으로 내 속도와 거리가 찍힌다. 매번 달리기가 끝날 때마다 오늘의 속도는 얼마나 빨랐는지, 그리고 얼마나 멀리 달렸는지를 살핀다. 5년 전에 한창 달릴 때에는 1km당 4분 30초 언저리가 내게는 '나름 잘 뛰었다고 생각하는 기준'이었다. 그 속도를 유지하면서 10km를 달리면 딱 45분이었으니.
그것보다 느리거나 멀리 못 달린 날들이 있을 때, 거기서 묘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전보다 약해진 것 같고, 앞으로 치고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싫었다. 어떻게든 기준치 언저리로는 달려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러다 무릎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점점 잘 뛰지 못하게 되니, 아예 흥미를 잃고 몇 년을 쉬어버렸다. 그냥 빠르게 달리려는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멀리 뛰어도 됐을 텐데, 그런 변화를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못한 거다.
그렇게 지난 몇 년을 뛰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제는 지난해가 되어버린 2020년부터 달리기를 천천히 다시 시작했다. 이제 내 페이스는 5년 전보다 30초가 늦어진 1km당 5분 언저리가 됐다. 달릴 수 있는 거리는 훨씬 줄었다. 올해 대회에 나가서 레이스를 하려면, 저 '1km당 5분'에서 조금 더 타협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10km를 40분대에 끊고/못 끊고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지만, 아쉬워도 어쩔 도리가 없다. 가볍고 날래던 5년 전의 나도 나고, 평균 속도가 30초 느려진 지금의 나도 나다. 이미 달라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달라질 나의 몸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비단 달리기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싶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 그리고 계속해서 나아가기. 머리로는 진작에 알았어도 매번 까맣게 잊고 마는 것들을, 달리면서 몸으로 다시 익힌다.
이제 올해의 레이스를 시작한다.